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대할 때 인간은 그 자체만 놓고 판단하기보다는 그와 높은 연관성을 갖는 특정 범주(category)로 구분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선 이를 ‘범주적 사고(categorical thinking)’라고 말한다. 범주화는 정보 처리의 효율성을 높여준다. 새로운 정보를 이미 알고 있는 특정 범주 안에 집어넣고 해석하면 어느 정도 정립된 가이드라인에 따라 미지의 정보를 해석함으로써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줄여나갈 수 있다.
하지만 범주적 사고는 스테레오타입과 편견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 본능적으로 세상을 둘로 나눠 생각하는 걸 편하게 생각하는 인간의 인지적 특성과 맞물릴 때 이런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들, 특히 관리자들이 부하 직원들을 바라볼 때에도 이런 범주적 사고와 이분법적 시각이 작동한다. 상사들은 아랫사람들을 그들의 업무 태도나 가치관, 성향 등에 비추어 ‘인그룹(in-group·나와 공통의 코드를 가진 집단)’과 ‘아웃그룹(out-group·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집단)’으로 나누어 보곤 한다. 이런 인그룹, 아웃그룹 분류 작업은 상사가 직원들을 대한 지 단 5일 만에 끝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매우 빨리 결정된다. 이처럼 섣부른 범주화에 따라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바로 ‘필패 신드롬(set-up-to-fail syndrome)’이다.
스위스 IMD 교수인 장 프랑수아 만조니(Jean-Francois Manzoni)와 장 루이 바루수(Jean-Louis Barsoux)가 주장한 필패 신드롬은 성과가 저조하다고 생각되는 직원들에 대해 관리자가 ‘꼼꼼하게’ 관리할수록 그 직원들의 성과가 계속 ‘악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필패 신드롬에 따르면 관리자들은 ‘싹수가 보이는’ 인그룹과 ‘눈 밖에 난’ 아웃그룹을 대할 때 판이하게 다른 태도를 보인다. 인그룹 구성원들에게는 최대한 많은 자율권을 주고 무한한 신뢰를 표현하지만 아웃그룹 사람들에게는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간섭(micro-managing)하며 통제한다. 나와 같은 인그룹에 대해서는 호의를 갖지만 나와 다른 아웃그룹은 배척하는 ‘인그룹 편향(in-group bias)’의 전형적 예다.
아웃그룹으로 찍힌 직원은 계속되는 상사의 감시와 통제에 따라 자신감을 잃게 된다. 심지어 스스로도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상사의 기대 수준이 부하 직원의 수행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자기충족(self-fulfilling)’ 현상에 따라 부하 직원은 업무를 주도적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위에서 떨어지는 지시에 대응하는 데 급급해 한다. 부하 직원의 기계적 대응에 상사는 그 직원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모르는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기존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다. 이런 ‘자기강화(self-reinforcing)’적 판단에 따라 상사는 더욱 심한 간섭에 나서며 부하 직원을 죄어 온다. 그 결과 해당 직원의 성과는 더욱 나빠진다.
필패 신드롬은 성과가 나쁜 직원들을 무조건 정당화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다. 만조니 교수가 지적했듯이 직원들의 저조한 성과는 그 직원의 잘못이고 책임일 때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상사의 눈에 부하 직원들의 업무 성과가 형편없어 보일 때, 때로는 정말 그 직원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사가 그 문제를 조장했을 수도 있다는 게 필패 신드롬이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다.
흔히 조직에서 아랫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못하면 자신을 돌아보려는 노력에 앞서 무조건 해당 직원을 탓하는 상사들이 많다. 이럴 때 한번쯤은 자신이 필패 신드롬의 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범주적 사고에 사로잡혀 부지불식간에 색안경을 끼고 사람들을 섣불리 재단해 능력 있는 직원의 역량 계발을 막은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부하 직원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도 기실은 내가 조장했을지 모른다는 의식적인 성찰 과정을 거칠 때 필연적인 실패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