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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e-mail 보낼까요?” 감정도 조절해주는 세상

정재승 | 35호 (2009년 6월 Issue 2)
직장 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이 요즘 하루에 받는 e메일은 평균 30여 통. 쓸데없는 스팸이나 정기적으로 오는 대량 발송 메일은 빼더라도, 보통 직장인이라면 하루 10통 내외의 e메일에 답장을 써야 한다. e메일에 답장을 하다 보면, 괜히 화가 나서 분노로 가득 찬 메일을 보냈다가 ‘엔터(Enter)’ 키를 치자마자 곧바로 후회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특히나 밤에 이런 메시지를 보내고 나면, 다음 날 아침 후회하기 일쑤다(‘인간은 밤에 왜 더 감정적일까?’ 이것은 신경과학자들에게 주어진 오랜 숙제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생의 교훈들이 나왔다.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말라!” “분노의 메시지가 담긴 e메일은 그 순간에 발송하지 말고, 하루 정도 숙고한 후에 보내라!”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 날 마음이 진정된 상태에서 내가 쓴 답장을 읽어보면 ‘안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메일을 보자마자 써 내려간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인생의 교훈’을 잘 모르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해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리처드 탈러 시카고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e메일 시스템에 새로운 기능을 덧붙이자고 제안했다. 이른바 ‘e메일 숙고 시스템’이다. 네이버나 구글, 다음 등 포털 사이트의 e메일 시스템이 우리가 작성한 e메일 텍스트를 분석해 ‘메일 내용 안에 분노가 담겼는지’ 여부를 판단한 다음, 만약 담겨 있다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경고: 이 e메일은 수신자에게 무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정말 메일을 전송하시겠습니까?”
 
일종의 ‘교양 검사’를 도입한다고나 할까? 현재 텍스트 안의 ‘욕설’을 인식해 경고해주는 시스템은 이미 있지만, 위의 e메일 숙고 시스템은 좀더 정교하다. 혹은 더 강력하게 ‘24시간 이후에 재전송 버튼을 눌러야만 비로소 전송되는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도 가능하다.
 
물론 이런 시스템에 문제가 없지는 않다. 요즘 시스템들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나 오류 방지라는 명목으로 너무 많은 간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스팸 필터’ 시스템.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는 스팸들을 e메일 시스템이 알아서 걸러내준다. 워낙 많은 스팸들이 수신되다 보니, 스팸이 모아져 있는 편지함을 제대로 검토도 안 하고 비우기 일쑤다. 그러나 “우편배달부는 편지를 알아서 버리지 않는다.” 상상해보라. 우편배달부가 당신 집에 온 우편물들을 살펴본 후에 상업적인 광고 전단지나 우편물을 자신이 알아서 버린다면, 당신은 그 서비스를 이용할 것인가? 아무리 쌓이는 광고 전단지에 시달리더라도 우편물에 대한 판단은 내가 하고 싶지 않은가?
 
분노에 찬 e메일도 마찬가지다. 우편배달부가 내게 “이 편지는 밤에 쓴 편지이므로 하루 정도 더 생각해보시고, 정말로 보내고 싶으면 그때 다시 얘기하세요. 그때 제가 배달해 드릴게요”라고 말하면, 당신은 기분이 어떨까? e메일 시스템이 더 똑똑해진다는 얘기는, 배달부가 내 편지를 읽어보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원래 우리는 컴퓨터가 해준다고 하면 편하게 받아들이는데, 인간이 그 일을 대신한다고 가정하면 저항감을 갖게 된다.
 
현대인들의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시스템이 점점 더 똑똑해지면서 인간이 더욱 이성적으로 행동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는 기존 경제학자들이 오래전부터 가정해온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것과 전혀 다른 입장이다. 그러나 인간의 선택을 다루는 미시경제학이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선택하는 존재인가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중간 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는 이런 상황을 “빼어난 구두 수선공이 되려면 이제 구두를 잘 만드는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라고 비유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경제학을 제대로 하려면,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행동경제학이 21세기 초 다시 대두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존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 즉 ‘주어진 정보가 충분하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극히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이익을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적절히 조절할 줄 알며, 단기적·장기적으로 두루 자신에게 불이익이 될 행동은 하지 않는 존재’로 가정해왔다. 하지만 이제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만으로 묘사한 20세기 경제학의 틀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들의 말대로 우리가 합리적인 고객이라면, 쇼핑을 하는 동안 우리는 ‘제품을 소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용’을 계산해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의 가정대로 우리가 소비한다면, 인간을 초고성능 컴퓨터라고 가정해도 (상품 수가 10가지일 때 0.001초, 30가지면 17.9분에 결정이 끝나지만) 상품 수가 40가지면 12.7일, 50가지면 35.7년이 지나야 계산을 끝내고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면 블랙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녹차를 마셔야겠다는 결정을 할 수가 없고, 담배나 설탕이 몸에 좋지 않기 때문에 금연이나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일 또한 있을 수 없다. 또 경제적 인간에게는 이타적 행동이나 윤리, 도덕을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희망소비자 가격’과 ‘할인 가격’을 동시에 써놓는 얄팍한 상술에 넘어가지도 않을 것이며, 미끼 상품을 걸어 일단 손님을 끌어모으는 행위에 속지도 않을 것이다. 계산대 옆, 초콜릿이나 면도기 등을 진열해놓은 곳에 쉽게 손이 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경제학자들이 가정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자가 아니라, 때로는 감정적이고(그것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때로는 수학적으로 꼼꼼히 따지지 않으며(그것이 어리석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때로는 내 이익만이 아니라 남의 이익을 먼저 챙기기도 한다. 이런 인간들을 유혹하기 위해 마케팅은 일찌감치 ‘합리적 인간’이라는 가정을 포기하고 현실에 적응했다. 하지만 아직 주류 경제학은 아름다운 수학적 이론에 매달려 이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물리학자들이 복잡한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기를 포기한 채, 지난 400년간 ‘풀 수 있는’ 간단한 시스템에 몰두해온 것처럼 말이다. 설마 인간의 마음을 경제학자들의 수식에 집어넣기 위해 300년의 시간이 더 필요한 건 아니겠지?
 
편집자주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 구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재승 교수가 인간의 뇌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 및 경제적 의미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보기 바랍니다.
 
필자는 KAIST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미국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를 거쳐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도전, 무한지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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