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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종합

하기 싫은 ‘녹색 경영’ 스스로 하게 한다!

최선 | 42호 (2009년 10월 Issue 1)
인류는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 ·1972년 발간된 로마클럽의 보고서)’를 화두로 제시한 지 무려 20년이 지나서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인류에게 ‘탄소 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후 또 다른 20년이 지나는 2012년 한국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정부는 2008년 ‘저탄소 녹색 성장’이란 비전을 선포하고 각종 후속 조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녹색 기술 개발이나 친환경 산업 구조 구축만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 전체 온실가스의 43%를 배출하는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즉 녹색 생산과 녹색 소비 또는 녹색 생활이 함께 이루어져야 진정한 녹색 혁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부의 계몽 위주 활동만으로 소비자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는 어렵다. 소비자의 선택권에 제약을 주지 않으면서 녹색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가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서비사이징(servicizing)’이다.
 

 
서비사이징의 개념
서비사이징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융합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는 기업이 제품을 판매하던 전통적 비즈니스 방식에서 벗어나 제품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판매로 전환하는 현상을 말한다. 서비사이징을 도입하면 기업들은 제품만 판매하던 모델에서 벗어나, 기능이나 (파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사업 모델을 전환할 수 있다.
 
서비사이징이 강조되는 이유는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자원 고갈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기업의 가치 창출 구조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 부문이 가치 창출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연구개발(R&D), 디자인, 마케팅, 사후 서비스 등 서비스 관련 영역이 상대적으로 훨씬 큰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 GE는 1980년 전체 매출의 85%를 제품 매출이 차지하는 전형적 제조기업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전체 매출의 75%가 서비스에서 이뤄지고 있다.
 
서비사이징은 친환경성 측면에서 큰 장점을 가진다. 제품과 서비스를 통합하면 기업에 대한 고객의 의존도가 강화된다. 이는 기업의 지속적 경쟁 우위를 가져오는 요인이 된다. 또 제품의 수명 주기 동안 이를 관리해주는 서비스가 이뤄지기 때문에 친환경성이 높아진다. 제품의 사용 과정에서 자원을 절약하고, 또 제품 사용 후 발생하는 폐기 자원을 기업이 회수·재활용함으로써 환경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농기계 제작사인 존디어는 전통적인 농기계에 ‘위치 기반 비료 살포 시스템’을 장착하고, 농기계가 작동할 때 지역별로 일정한 양의 비료를 뿌릴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고객들은 비료 사용량을 절감할 수 있었으며, 회사 측은 농기계 수명 주기 동안 부가적인 수익도 창출할 수 있었다. 가정용 세제를 판매하는 카사 퀵은 세제를 보충하는 차량을 운영해 가정까지 가서 직접 세제를 리필해줬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세제 용기의 낭비를 줄이고, 소비자의 구매를 계속 유도했다.
 
이처럼 소비자와 공급업체 간 상호 이익을 추구하고 친환경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다수의 외국 기업들은 서비사이징을 적극 실행하고 있다.
 

 
 
듀폰의 화학물질 관리 서비스 사례
서비사이징은 화학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듀폰이다. 과거 듀폰은 자동차 회사에 도장용 페인트를 판매해왔다. 하지만 서비사이징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포드자동차의 영국 공장에서 도장 공정을 운영했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함에 따라 듀폰의 매출과 수익은 페인트 판매량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자동차에 페인트칠을 하느냐로 좌우됐다. 따라서 듀폰은 페인트 사용량을 최소화하면서 많은 자동차에 도색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자사 페인트의 특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높은 전문성을 보유한 덕분에 포드가 자체적으로 도정 공정을 운용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설계할 수 있었다.
 
듀폰은 또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구매자의 페인트 수요를 측정해주고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도와주는 ‘페인팅 유지 보수 ECS(Engineered Consulting Service)’라는 컨설팅 서비스도 시작했다. ECS는 연간 공정 계획, 품질 보증과 생산성 향상,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프로그램, 안전성 향상 프로그램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듀폰은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해 추가 매출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컨설팅 과정에서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파악해 자사 제품 개발 역량도 키워나갔다.
 
또 카펫과 카펫 원료를 생산하고 있는 듀폰은 제품 선택을 도와주는 디자인 컨설팅뿐만 아니라 카펫의 설치와 보존, 보수 등 구매 후 서비스까지 포괄적으로 담당하는 ‘Dupont Flooring Systems’ 서비스도 선보였다. 또 2년에서 5년까지 바닥재를 임대해주는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카펫 업계 최초로 미국 주요 도시에 재활용 센터를 설치해 카펫 폐기물에서 재생한 섬유를 자동차 부품이나 방음제 생산에 활용하고 있다. 듀폰은 이 같은 일련의 서비사이징 활동을 통해 소비자에게 ‘바닥 장식’이라는 부가적 가치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바닥재 임대와 재활용 서비스로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도 최소화했다.
 
듀폰이 이런 전략을 취한 것은 기술력 우위만으론 장기적 생존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1990년대 초반 전 세계 화학업체들은 합종연횡을 지속했고 아시아 및 중동의 혁신적 화학업체들의 부상으로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에너지 집약적인 전통 비즈니스 모델만으론 지속 성장이 어렵다고 판단한 듀폰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적극 개발했다. 하지만 일시에 사업 모델 전환을 꾀하지는 않았다. 다음 세 단계로 성장 전략을 구사했다.
 
①첫 단계로, 2년 정도의 시간을 갖고 좁은 의미의 ‘생태 효율성(eco-efficiency)’과 ‘생산성 향상’에 집중한다.
 
②두 번째 단계로, 2∼6년 정도 시차를 두고 ‘제품의 지식 집약(knowledge intensity)’에 집중한다. 지식 집약이란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사용자에게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 제품 하자를 예견하며, 이런 문제를 미리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③세 번째 단계로, 6년 이상의 기간을 두고 산업 자체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과거와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기업으로 변신해 새로운 역량과 시장을 창출한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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