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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 첨단’ 사진도시 아를의 점프

김민주 | 44호 (2009년 11월 Issue 1)

프랑스 아를(Arles)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퐁스 도데의 희곡 <아를의 여인>을 떠올릴 것이다. 음악 애호가들은 조르주 비제가 작곡한 ‘아를의 여인’을 생각할 것이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를에서 1년 넘게 지내면서 불후의 명작들을 열정적으로 쏟아낸 고흐를 기억해낼 것이다. 역사나 문화유적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 세력을 확장한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7개의 로마 유적지를 주목할 것이다.
 
아를은 프랑스 동남부의 알프-코트다쥐르 지방에 위치한 인구 5만5000여 명의 소도시다. 알프-코트다쥐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알프스 산맥과 푸른 지중해 연안 지역을 아우르는 곳이다. 아를과 깐느, 니스, 마르세유 등이 이 지역의 대표 도시다.


아를이 가진 매력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고흐와 로마 유적을 꼽을 수 있다. 동양인은 고흐를 찾아 이곳으로 오고, 서양인들은 로마 유적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는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세 사람의 삼두정치 시대였다. 이들 세 사람은 사이가 멀어져 크게 싸웠다. 이때 아를은 카이사르를 지지했고, 마르세유는 폼페이우스의 손을 들어줬다. 끈질긴 싸움 끝에 카이사르가 승리하자 이 갈리아의 두 도시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무역항 마르세유는 패전 도시가 됐고, 아를은 평범한 점령지 도시에서 로마의 속지로 위상이 높아졌다. 카이사르는 아를을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싸운 전역 군인들을 위한 도시로 집중 개발한다. 아를에는 원형 경기장, 고대 극장, 사원 등이 건설되고 로마식 포장도로가 속속 생겨났다.

고흐의 도시로 재부상
 
하지만 로마 몰락 이후 아를은 다시 마르세유에 밀려 조용한 시골 도시로 전락하고 만다. 마르세유가 프랑스 제2도시로 급성장을 하는 동안 아를은 인구 5만여 명이 사는 지중해의 작은 도시로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조용히 잠을 자고 있는 아를을 다시 깨운 이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였다.
 
고흐를 찾아 아를에 온 관광객들은 이곳 미술관에 고흐의 그림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고흐의 그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고흐미술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 등 세계 유명 미술관이나 미술품을 전문 수집하는 부자의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실망은 금세 사라지고 관광객들은 고흐의 그림 세상에 푹 빠진다. 아를에는 고흐 원작이 없는 대신 명작 속의 풍경이 그대로 살아 있다. 아를 시 당국이 고흐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축소한 원작을 비치해 그림 속 풍경과 실제 경치를 비교할 수 있도록 조성해놨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고흐 그림 안내 코스를 따라 시를 한 바퀴 돈다. 고흐의 자취와 그림 속 풍경이 남아 있는 지역만을 안내하는 단체관광 코스도 따로 마련돼 있다. 관광객들은 그림 속 풍경을 찾아 사진을 찍거나 ‘밤의 카페테라스’ 작품에 나오는 라마르틴 광장의 카페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그림 속 도개교, 알리스캉, 올리브나무가 늘어선 언덕도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로마 유적지와 고흐의 이미지는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아를의 미래 발전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아를 시 당국은 생각했다. 시 당국은 과거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첨단 이미지를 가진 현대적 도시로 변모할 방법을 찾았다. 해답은 아를국제사진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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