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해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한 후 충동적으로 술을 마시다 결국 만취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다. 건강을 위해 기껏 어렵게 목표를 달성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는 선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문적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게 ‘라이선싱 효과(licensing effect)’다. 특정 목표(예를 들어, 건강)를 달성하기 위해 과거에 상당한 노력(등산, 운동)을 했다면, 해당 목표에서 벗어나는 일탈행위(음주가무나 폭식)를 할 ‘허가권(license)’을 주는 게 인지상정이라는 이론이다. 실제 행동하지 않고 말을 했거나 특정 의도만 가졌다 하더라도 그와 반대되는 일탈행위를 더 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던 사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성차별적 행동을 더 하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 라이선싱 효과와 관련한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소비자 조사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최신호(Vol. 36, No.3 380∼393)에 실린 미국 뉴욕시티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그것이다.
연구팀은 한 그룹의 대학생에게 가장 몸에 안 좋은 음식(감자튀김)과 상대적으로 건강에 좋은 음식(치킨 너깃, 구운 감자)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다른 그룹의 대학생은 위 3가지 음식 모두에 사이드메뉴로 샐러드만 추가하고서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놀랍게도 첫 번째 그룹에서 가장 몸에 안 좋은 감자튀김을 선택한 비율은 10%였지만, 사이드 메뉴로 샐러드를 제공했을 때 이 비율은 33%로 높아졌다. 특히 자기 통제력이 강하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건강에 좋은 옵션이 추가됐을 때 최악의 선택을 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연구팀은 또 베이컨 치즈버거(가장 건강에 안 좋은 메뉴), 치킨 샌드위치와 생선 샌드위치(중립적인 메뉴), 야채버거(가장 건강에 좋은 메뉴)를 놓고 같은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단지 야채버거라는 대안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사실만으로 몸에 가장 안 좋은 치즈버거를 선택한 비율이 훨씬 높아졌다. 마찬가지로 통제력이 강하다고 응답한 학생이 라이선싱 효과가 예측한 방향대로 행동했다.
이 연구 결과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건강에 좋지 않다고 알려진 다른 메뉴 판매를 촉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소비자들은 건강에 좋은 메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탈행위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맥도날드는 샐러드나 과일 메뉴를 추가했는데, 오히려 버거와 감자튀김의 매출이 증가해 실적이 개선됐다고 한다.
인간의 비합리성을 활용하는 것은 마케터의 몫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백화점에서 재무나 건강 상담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간을 낭비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하루 종일 쇼핑을 즐길 수도 있다. 복합 쇼핑몰에 서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은 일탈행위에 대한 심리적 면죄부를 받고 편안하게 놀 수도 있다. 물론 자기계발 측면에서는 라이선싱 효과의 본질을 파악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