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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Innovation - 영국 글래스고

대영제국 공장에서 문화 도시 불꽃을 피우다

김민주 | 72호 (2011년 1월 Issue 1)
 
 

편집자주 한국 최고의 마케팅 사례 연구 전문가로 꼽히는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가 전 세계 도시의 혁신 사례를 분석한 ‘City Innovation’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와 거센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도시를 운영한 사례는 행정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전략과 조직 운영, 리더십 등과 관련해 좋은 교훈을 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영국 글래스고(Glasgow)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팝 컬처(Pop Culture)의 중심도시다. 영국 내에서 런던과 버밍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며, 스코틀랜드 지역의 경제 중심지다. 연간 약 300만 명의 관광객이 글래스고를 찾는다. 영국 도시 중 런던과 에딘버러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다.
 
현재, 가장 모던하고 젊은 도시로 부상하고 있는 글래스고는 불과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급락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 중 한곳이었다. 글래스고는 어떻게 과거의 굴뚝 이미지를 벗고, 현대적인 문화 이미지의 도시 브랜드를 입힐 수 있었을까. 글래스고의 리브랜딩 전략을 소개한다.
 
‘대영제국 공장’의 몰락
글래스고는 1136년 대성당이 지어지고, 1451년 글래스고대학이 들어서면서 스코틀랜드의 학문 및 종교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글래스고대학은 근대경제학의 태두인 애덤 스미스가 윤리학을 가르쳤던 곳이기도 하다. 산업 혁명기에는 철강과 조선업을 중심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해 ‘대영제국의 공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글래스고는 20세기 초까지 조선 및 중공업을 육성시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멋진 도시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글래스고의 성공 신화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도시를 먹여 살리던 중공업은 값싼 노동력을 가진 해외 업체의 추격에 설 자리를 잃었다. 사람들은 일거리가 줄어든 도시를 떠났다. 글래스고 인구는 1961년에 110만 명에서 1990년 70만 명으로 감소했다. 1960∼1980년 20년간 14만 개의 일자리가 줄었다. 글래스고에 남은 건 오래된 도시, 낡은 공업 도시라는 고루한 이미지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도시 리브랜딩 착수
제조업이 쇠퇴하자 글래스고는 기존의 낡은 이미지와 산업 구조로는 도시 기능을 더는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쟁력이 떨어진 제조업에서 도시에 적합한 서비스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도시 개발 사업을 통한 도시 리브랜딩 작업에도 착수했다. 글래스고 전 지역을 대상으로 침체되고 쇠퇴한 사회, 경제적 도시 환경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고 문화 예술을 육성했다. 이 결과 글래스고는 한물 간 도시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었다. 글래스고의 도시 리브랜딩 프로젝트는 크게 2단계로 나눠 체계적으로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초기에는 글래스고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털어내는 데 주력했고, 도약기에는 도시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히는 작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①글래스고 마일스 베터(Glasgow’s Miles Better) 프로젝트 글래스고의 도시마케팅은 1983년 글래스고 마일스 베터 캠페인에서 출발한다. 이 캠페인은 글래스고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관광객들이 글래스고를 방문하도록 하는 목적에서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로저 하그리브스(Roger Hargreaves)의 만화인 미스터 해피(Mr. happy)라는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았다. ‘마일스 베터(miles better)’는 ‘외곽 도시인 글래스고가 가까운 곳보다 더 좋다’는 의미와 ‘더 웃을 수 있다(smiles better)’라는 뜻을 담고 있다.
 
글래스고는 중공업을 대신해 문화산업과 서비스업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쇠퇴한 공업도시’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도시를 되살리기 위해 이벤트와 예술, 관광 및 서비스업을 도시 경제의 새로운 동력으로 육성하고 마케팅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는 주민과 지역 경제의 활력을 재충전하고 외부 소비자에게 새로운 도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작업이었다. 이 새로운 도시 마케팅 프로젝트에는 민간 광고 전문가 외에도 시의회 의원, 시의 경제개발 부처의 공무원, 글래스고 개발기구, 지역 사업 대표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어 새로운 이미지를 담은 슬로건을 지역 주민과 국내외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주요 공략 대상은 경제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고소득 사무직 근로자였다.
 
글래스고는 1980년대 도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도심 활성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80년 도시 경제개발 계획을 제시하고, 1982년부터 도심 내에 주거기능을 본격적으로 확충하기 시작했다. 스코티시 컨벤션센터, 프린스스퀘어쇼핑센터, 이노크센터, 교통박물관을 새로 지었다. 1983년에는 5월 축제를 열기 시작했다. 1985년에는 도시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글래스고 액션(Glasgow Action)’이라는 민관 합작기관을 설립했다. 새로 문을 연 전시관 및 컨벤션센터는 합창 축제, 재즈음악축제, 무용제 등의 다양한 이벤트를 열었다.
 
도시 이미지 쇄신 작업에 자신감을 얻은 글래스고는 1980년대 후반 도심 내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보다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1987년 글래스고 시 정부는 축제 담당부서를 설치하고 지역 축제를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 결과 1988년 가든축제(Garden Festival)가 열렸다. 글래스고의 랜드마크를 도심으로 옮겨 도시 관광의 요소를 강화했다. 이 결과 1990년 글래스고는 유럽의 문화도시로 지정되면서 도시 홍보에 탄력을 받게 됐다. 이는 글래스고가 그간 준비했던 연중 도시 이벤트 및 축제와 박물관, 미술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1990년 글래스고는 659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했는데, 이중 74%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했다. 관광객의 26%는 음악 공연장을 찾았다.
 
초기 성공을 발판으로 글래스고는 1990년대에 들어서 지역개발기구를 확대했다. 1991년에는 글래스고 개발청을 설립하고 ‘글래스고 어라이브(Glasgow’s Alive)’ 캠페인 등을 진행했다. 이어 글래스고 콘서트홀, 뷰캐넌쇼핑센터를 건설해 문화 도시의 위상을 굳히기 시작했다.
 
②‘품격있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 Scotland With Style)’ 캠페인 글래스고는 1990년대 ‘글래스고 마일스 베터’ 캠페인과 ‘유럽문화도시의 해’ 사업의 성공을 토대로 도시의 묵은 때를 벗을 수 있었다. 글래스고는 더 나아가 문화도시의 이미지를 굳히기 위해 2004년 새로운 도시 마케팅을 시작했다. ‘품격있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글래스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브랜드 이미지화해 전 세계에 심고 있다. 글래스고의 지역성, 산업적 잠재력, 관광 및 여가산업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슬로건으로 만든 것이다. 글래스고 시는 세계적인 건축가 찰스 매킨토시를 비롯해 건축, 디자인, 패션, 음악, 예술 분야에서 독특한 글래스고 스타일이 있고, 공업 도시가 아닌 서비스업 중심의 문화 도시라는 점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펼쳐나갔다. 이 결과 18만1000명의 관광객이 증가하고, 2100만 파운드의 지역경제 유발효과가 발생했다.
 
1단계 캠페인이 과거 공업도시 이미지 탈피하기 위해 글래스고가 더 좋은 곳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웠다면, 새 캠페인은 ‘글래스고 스타일’이라는 명확한 지향점을 제시했다. 또한, 글래스고를 창의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현대적인 도시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이는 글래스고의 패션과 쇼핑, 문화산업을 중심으로 도시 전체를 발전시키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글래스고는 2005년 본격적인 도시 마케팅을 위해 시티마케팅국을 설립했다. 글래스고의 도시마케팅 예산은 약 1억8300만 파운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창조자산 개발
글래스고는 도시 브랜드를 쇄신하는 과정에서 도심 재개발과 부족한 창조 문화 콘텐츠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활력을 잃은 부둣가와 조선소는 도심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문화 창조도시라는 새로운 도시 브랜드에 걸맞은 문화 창조 자산도 필요했다. 글래스고는 이 한계를 극복하며 독특한 도시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었다.
 
글래스고 도심 남쪽에는 퍼시픽 부두가 있다. 7만6000여 평 규모의 부둣가에는 과거의 영화를 일군 조선소가 들어서 있다. 도심 재개발을 위해서는 제 역할을 잃어버린 부두 지역의 재생이 필수적이었다. 개인 소유지였던 이 지역은 주택지로 개발될 예정이었으나, 도시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면서 개발도 지연되고 있었다. 주거단지를 지어도 수요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도심 재개발을 위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글래스고 시의회는 생각을 바꿨다. 이 부지를 문화 예술 서비스업 중심의 새로운 도시 경제에 필요한 인력과 기술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스코틀랜드개발청 글래스고 지부가 땅을 매입해 현재 공사를 하고 있다.
 
과거 공업도시 글래스고에는 없던 지역 자산이 바로 문화 예술 축제다. 글래스고는 다양한 축제를 개발해 문화 예술 도시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가장 유명한 축제는 바로 5월에 열리는 메이페스트다. 해마다 5월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다채로운 음악, 연극, 민속 행사로 유명하며 에딘버러 축제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축제 중 하나로 꼽힌다. 글래스고의 다양한 축제에는 모두 음악이라는 공통 요소가 들어 있다. 글래스고는 유네스코가 음악의 중심도시로 선정했을 정도로 음악을 통한 도시 브랜드 개발에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글래스고의 건축도 글래스고 스타일을 빚는 중요한 자산이다. 글래스고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찰스 매킨토시의 대표적 건축물이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글래스고 예술학교와 라이트하우스가 매킨토시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글래스고의 현대식 건축은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고딕양식의 건축물인 글래스고 대성당, 종교예술이라는 테마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박물관인 세인트 뭉고 종교예술 박물관 등의 역사적 건축물과 조화를 이룬다.
 
글래스고 리브랜딩의 성공요인
글래스고는 체계적인 도시 리브랜딩 전략으로 ‘새로운 글래스고’를 만들었다. 글래스고 리브랜딩 전략의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스코틀랜드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이용해 도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스코틀랜드는 세계적으로 독특한 역사와 전통, 문화를 토대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의 후광효과를 이용해 칙칙한 공업도시의 이미지를 상쇄시킬 수 있었다. 기존에 잘 알고 있는 이미지를 덧입혀 사람들이 새로운 도시 브랜드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둘째, 인접 지역과의 차별화가 글래스고 리브랜딩 전략의 또 다른 성공 포인트다.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문화 예술 도시인 에딘버러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강조했다. 에딘버러가 고전적 매력의 도시라면 글래스고는 현대적이고 젊은 감각의 도시로 포지셔닝을 한 것이다. 스코틀랜드를 찾는 관광객은 두 도시가 뿜어내는 서로 다른 매력에 빠져들었다. 두 도시가 비슷한 방식으로 파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면 얻을 수 없는 시너지를 얻게 된 것이다.
 
셋째, 새로운 글래스고를 만들기 위한 민관 합동의 창의 혁신 전략이다. 지자체와 지역주민, 기업이 합심해 새로운 도시 이미지를 만들어 이를 집중 홍보했다. 글래스고는 지역 주민의 공감대를 발판으로 새롭고 창의적인 프로젝트들을 시도했다. 특히, 글래스고의 조명 축제는 현대적 글래스고를 만든 혁신적인 시도 중 하나다. 화려한 조명 축제는 스코틀랜드의 고전적이고 클래식한 매력과는 상극처럼 보였다. 글래스고는 주변의 클래식한 경관을 고려한 도시 설계를 통해 이 문제를 극복했다. 산학 단지를 도심 내에 만드는 시도 등이 글래스고의 창의적인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 [email protected]
 
필자는 마케팅 컨설팅 회사인 리드앤리더 대표이자 비즈니스 사례 사이트인 이마스(emars.co.kr)의 대표 운영자다. 서울대와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한국은행과 SK에너지에서 근무했고 건국대 겸임 교수를 지냈다. <로하스 경제학> <글로벌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하인리히 법칙> 등의 저서와 <깨진 유리창 법칙>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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