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번 예쁜 사람은 그가 무슨 일을 하든 예쁘게 보이고, 한번 미운 사람은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밉게 보인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선입관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대로 상대방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고객들의 좋은 선입관을 얻기 위해 제품의 품질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평판이나 이미지에도 크게 신경을 쓰게 된다. 처음 좋은 평판과 인식을 얻기가 힘들지만 한번 좋은 인식을 얻게 되면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그 좋은 선입관은 상당기간 지속되는 것이다.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 편에 보면 상대방이 예쁘면 어떤 일을 해도 옳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이 미우면 어떤 일을 해도 그 행동이 그르게 보인다는 구절이 있다. 일명 <지당(知當)>과 <죄당(罪當)>이다. 지당(知當)은 어떤 행동이든 ‘지혜(知)가 합당(當)하다’는 것이다. 죄당(罪當)은 ‘어떤 행동이든 잘못(罪)에 합당(當)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지당한 행동이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떤 좋은 일을 해도 죄당한 행동이라는 한비자의 선입관 철학이다.
한비자는 위(衛)나라 여인 미자(彌子)의 예를 들어 이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미자는 위나라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왕은 지당(知當)하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미자가 왕의 허락도 받지 않고 왕의 수레를 마음대로 타고 궁궐 밖으로 나가 병든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왔다. 이 사실에 대한 신하들의 비난이 일고 벌을 줘야 한다고 하자 왕은 미자의 행동은 어머니를 위한 효성에 기인한 것이니 그의 행동은 지당(知當)한 것이라고 오히려 칭찬했다. 또 하루는 왕과 함께 과수원을 지나다가 복숭아를 하나 따서 먹고 너무 달다고 생각해 자신이 먹다 남긴 복숭아를 왕에게 주는 불충(不忠)을 저질렀다. 그러나 왕은 미자가 자신을 생각하는 충성이라고 생각해 역시 그의 행동을 지당(知當)하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미자의 용모가 시들해지고 왕의 총애도 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는 조그만 실수를 저질렀고 왕은 그 실수를 강력하게 비난하며 지난 날 지당(知當)하다고 용서해 줬던 일들을 꺼내어 미자의 실수를 벌하라고 명했다. 이제 미자의 모든 행동은 왕에게 죄당(罪當)한 행동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미자의 행동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으나 왕이 미자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이 지당(知當)에서 죄당(罪當)으로 바뀐 것은 결국 왕의 미자에 대한 선입관, 애증(愛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자는 왕이 자신에 대한 선입관이 바뀌었다고 욕할 것이 아니라 왕의 애증(愛憎)을 정확히 읽어내지 못한 자신을 먼저 반성해야 하고, 또한 왕이 자신을 영원히 사랑해 자신의 모든 행동이 지당(知當)하다고 생각할 것이란 환상도 버렸어야 했다.
기업은 늘 고객의 선입관을 장악해야 한다. 그것은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평판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친환경 윤리와 이윤의 공유, 사회적 유대와 협력업체와의 상생 등은 그 기업을 지당(知當)한 기업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어려울 때 모든 사람들이 지켜주고 싶은 기업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지당(知當)한 기업에서 죄당(罪當)한 기업으로 넘어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쁠 때 잘하라’는 이야기가 그저 농담처럼 여겨져서는 안 될 말이다.
박재희 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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