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오혜원 제일기획 상무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상지(KAIST 경영공학 석사과정) 씨가 참여했습니다.
“여자친구가 전지현보다 좋은 이유는 만질 수 있어서다.”
2008년 대한민국 최초의 터치폰 ‘애니콜 햅틱’은 이 같은 광고 문구와 함께 등장했다. ‘촉각의 중요성’을 전면에 내세운, 당시에는 다소 생소했던 TV 광고였다. 물론 당시 출시된 제품의 특성 중 핵심이 ‘터치’였기 때문에 이 같은 도발적인 광고가 가능했다.
그리고 5년 후 마케팅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 영역에서는 이제 ‘만질 수 있는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 7월부터 TV에서 볼 수 있는 ‘삼성 UHD1 TV’ 광고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마운틴 고릴라’가 등장하고 마치 실제와 똑같아 보이는 화질 때문에 광고 속 아이가 TV 속 고릴라에게 손을 갖다대는 장면이 나온다. 이게 다가 아니다. 8월부터는 ‘UHD ZOO’를 오픈해 한 달간 운영했다. 광고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린아이들을 불러 마치 진짜 동물원에 온 것처럼 초고화질 TV 속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게 했다. 아이가 TV에 손을 대면 TV 속 동물도 반응하도록 만들었다.
이 모든 광고 캠페인을 기획·지휘하고 TV 광고를 연출한 제일기획의 오혜원 상무를 만나 ‘광고에서의 터치’에 대해 물었다.
TV의 성능을 설명하기보다 ‘아이가 만지도록 유도한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어떻게 그런 기획을 하게 됐나.
‘엄청난 고화질’이라는 TV의 기능 내지 장점을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 얻은 결론이다. 사실 지금도 TV 화질은 굉장히 좋은데 지금의 HD TV보다 몇 배 선명하다고 설명하거나 아니면 벌새의 날개 움직임, 마치 진짜처럼 보이는 꽃 등을 아무리 보여주려고 해도 이미 예전에 다 해본 것이라 차별화가 어려웠다. 그런데 사람이 만지는 장면, 특히 순수한 어린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갖다대는 장면을 광고에 담는다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TV 광고가 어느 정도 노출되고 나면 ‘체험 현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술적으로 아이들이 돌아다닐 때 화면 속 동물들이 마치 그들의 행동에 반응하는 것처럼 만드는 게 가능해졌고 이 같은 구상이 결국 ‘UHD TV 가상 동물원’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셈이다.
전자제품 체험장을 만들고 캠페인을 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인가? 그런 과정이 꼭 필요한가?
보통 TV, 인터넷, 신문, 잡지 등에 광고가 나가고 대중이 이를 보는 형태를 ATL(Above the line)이라고 하지 않나. 요새 광고의 대세는 ATL이 아니라 BTL(Below the line)이다. 예전에는 일종의 행사 차원, 그냥 기념행사랄까 뭐 이런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ATL과 BTL의 예산이 각각 3대7로 할당된다. 공도 많이 들인다. 거대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예전에 광고가 없었을 때에는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면서 팔았을 것 같은데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이버 세상이 너무 커지다 보니까 생기는 일종의 반작용인 것 같기도 하다. 옛날에는 옷을 싸게 살 수 있고, 빨리 살 수 있고, 한 번 클릭하면 살 수 있다는 게 곧 소비자에게 큰 효용이었는데 이제 다시 화면에서 보는 색이 아닌 진짜 색을 내 눈으로 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어졌다는 거다. 제품과의 정서적이 교감을 다시 찾는 거다.그런데 이걸 사람들이 예전의 오프라인 상점을 찾는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첨단 기술과 결합된 일종의 과도기라고 봐야 한다. 최근 제일기획에서 만들어 낸 프로모션(BTL) 중 하나는 각 지역 거점 빌딩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엽서를 그려서 보내면 만약 와이파이 권역에 있으면 자신이 그린 엽서가 광고판에 뜨게 만든 것이다. 자신이 직접 터치해서 만든 것이 바로 눈앞에 보여지는 효과가 나타나는 거다. 어떤 제품이든 자신이 직접 만져서 경험을 하고 나면 그 기능은 물론 제품에 대해서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이게 된다. 촉각의 힘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냥 누가 쓰고 있더라, 어떤 유명 배우가 하고 있다더라 수준에서 퍼뜨리면 나름 힘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직접해봐야 사람들의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옷가게에서 만져보고 입어본 제품은 ‘보유효과’ 때문에 구매율이 높아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가. 체험을 통해 제품에 대한 애착을 갖게 만드는 것은 애플스토어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런 측면도 분명히 있다. 애플스토어식 체험 마케팅에서 한발 더 나간 측면도 있다. 단순히 제품을 만져보고 다뤄보라는 제안을 넘어서서 ‘스토리’를 구성해주는 것이다. 아까 설명한 UHD TV 화면으로 이뤄진 동물원도 멸종위기 동물과 마치 함께 한 공간에 있는 듯한 체험과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스토리를 넣은 것이고 그게 먹혔다고 생각한다. 스토리를 넣다보면 또 다른 재미난 일이 생기는데 이게 단순히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 아주 추상적인 상품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다리’ 캠페인처럼 다리가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체험을 해주면 보험이나 금융 등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없는 것에도 사람들은 ‘친근함’을 느끼고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나 호감도가 올라간다.
만질 수 없는 것도 만질 수 있게 하라?
그렇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게 하고 상상으로만 끝나지 않고 손에 뭔가 쥘 수 있게, 혹은 경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생명의 다리’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본 사람은 체험의 깊이가 다르다. ‘시각화’하려는 노력, 가능하다면 실물이나 실체를 만들어 제공하려는 노력이 많이 보인다. 경험이 깊으면 깊을수록 브랜드와의 유대관계가 깊어지는데 지금 자금이 풍부한 브랜드, 기업들은 모두 ‘만질 수 없는 것도 만질 수 있게’ 광고캠페인을 기획하고 있다. 광고인 입장에서 보면 참 어려워졌다. 한 번 만들어 전통매체에만 쭉 뿌리면 끝나던 시절은 지나갔다. 타깃을 맞추고 여러 가지 미디어 루트를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그러나 분명 재미있는 시대다.
지금과 같은 ‘직접 체험’ 열풍이 과도기라고 한 것 같은데 그건 무슨 의미인가?
현재 사이버 공간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실제 자신의 오감을 동원한 제품과의 교감이 부족해졌고 소비자들은 다시 ‘체험’ 현장으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건 좀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얘기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면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광고와 마케팅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혹시 기억하나. 광고인들에게는 ‘미래 광고학개론’ 같은 영화다. 영화 속 장면 중 주인공 톰 크루즈가 시리얼을 먹기 위해 통을 들고 붓는데 영상이 뜨고 노래가 나오는 부분이 있다. 광고가 그런 식이다. 또 남자가 지나가면 광고판이 빅데이터로 그 사람의 취향을 분석해 그가 좋아할 만한 자동차 광고를 띄우는 장면도 있다. 그 다음에 여성이 지나가면 그 광고판은 재빨리 그녀가 좋아할 만한 향수광고를 홀로그램으로 보내준다. 향도 느껴졌던 걸로 기억이 난다. 아마 엄청나게 기술발전이 일어나면 실제 촉감과 후각 등을 광고가 전달하게 될 수도 있다. TV일 수도 있고, 휴대폰일 수도 있고, 지금의 인쇄매체가 새롭게 올라탈 플랫폼, 휘는 LED 등이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새로운 매체나 수단, 혹은 제품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게 가능해지고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면 지금의 과도기도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최첨단 TV로 소파에서 영화를 시청하던 중 중간에 맥주광고가 나오면 손을 뻗어 차가운 캔을 느끼고 마음으로 구매를 결정하면 순식간에 배달이 오고. 아주 꿈 같은 얘긴데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봤던 꿈 같은 광고 얘기가 영화가 나온 지 10년이 지난 지금 절반 정도는 이뤄졌다. 아주 먼 미래는 아니다.
소비자들이 직접 느끼는 촉각, 체험 쪽으로 얘기를 많이 했는데 광고상에서 보여주는 다른 의미의 터치, 즉 제품과 사람의 교감이라든지, 혹은 기업이미지 광고에 많이 나오는 사람 간의 포옹이라든지 하는 ‘터치 연출’에 대해서도 좀 들려 달라.
3B라고 해서 Beauty(미인), Beast(동물), Baby(아기)는 전통적으로도 실패하기 어렵다는 광고 소재이자 주인공들이었고, 이들을 기본으로 만들어내는 ‘따뜻한 감성’ ‘사람과 사람의 접촉’ ‘사람과 동물의 터치’ 등은 여전히 힘을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분유광고가 엄마와 아이의 교감을 보여주고 둘 간의 터치를 보여주는 것을 벗어나긴 어렵다. 그게 제품의 본질이니까. 그리고 또 하나. 피부에 직접 닿는 물건들. 화장품, 화장지, 생리대 등은 촉감을 강조하고 따뜻함, 보호받는다는 안전한 느낌, 기대감 등을 끝없이 보여주지 않을까 한다. 물론 기술 발달로 가상으로도 직접 만지고 맛보고 손에 대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할 순 있겠다.
TV 광고 혹은 인터넷 동영상 광고로 한정해서 보면 전통적으로 앞서 언급한 것들, 화장품, 분유 등에서 보여주던 ‘터치 연출’은 많은 제품으로 확장되고 있기도 하다. ‘터치 연출’은 곧 감성에 소구하겠다는 건데 전자제품은 감성적인 코드를 넣으면 확실히 효과가 있다. 요즘 추세는 그렇다. 지난해 삼성전자 카메라 광고 캠페인 중에 시각장애인 청소년들이 손으로 물체를 만지고 귀로 들어가면서 사진 작품을 만들어가는 ‘인사이트’라는 캠페인이 있었다. 상도 많이 탔는데 전자제품과 사람의 감성적 교감을 잘만 표현하면 그만큼 큰 호소력을 보여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현재의 마케터, 그리고 최전선에 있는 광고인들은 참 힘들 것 같다. 전통적인 방법의 힘도 잘 활용하면서 트렌드 변화, 기술발전 다 따라가야 하니까.
어렵긴 어려운데, 또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 어려운데 ‘사람의 본질’이 또 변하는 건 아니니까. 요새 재미있는 현상은 젊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특히 그러는데 광고에 자꾸 키스신을 넣는다. 처음엔 나도 상상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고 나무라기도 했는데 광고주들이 요구한다고 하더라. 키스신을 넣으면 확실히 매출이 올라간다는 거다. 사람들이 많이 외롭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처럼 ‘입’이라는 연관성이 없어도 그렇다. 한때 유행했던 광고 중에는 잘생긴 남자배우들이 눈을 맞추면서 화면 밖 시청자들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 있었다. 그 광고 반응을 보면 진짜 재밌다. 아주머니들이 현빈이 카메라에 손을 대면 TV에 자신의 손도 갖다 댄다. 가짜라는 거, 말도 안 된다는 거 알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은 거다.
광고의 미래에 대해 한마디만 더 하자면?
확실한 것 하나는 소비자들이 이제 과거에 시각으로만 만족했던 것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감각으로 전이되는 걸 원하고 기술적으로도 그게 점점 받쳐주는 상황이 도래하니까. 예전에 소비자가 장에 가서 직접 만져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샀던 것들이 내 집 안에서 기술로 이뤄질 수 있는 미래는 다가오고 있다. 일단 시각적인 것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가상의 것까지 업그레이드돼 있다면 청각, 후각, 촉각 이런 것까지 다 가지 않을까. 소비자 눈앞에서 자신이 원할 때 만질 수 있게 하고 심지어 만질 수 없는 무형의 어떤 것조차 실체를 만들어 내거나 이미지를 구현해서 ‘tangible’하게 해 주는 것. 미래의 광고는 그 지점 어디에 있지 않을까.
고승연 기자 [email protected]
오혜원 제일기획 상무(Vice President & Executive Creative Director)는 1994년 카피라이터로 제일기획에 입사한 이후 2004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광고 기획 및 연출)로 일하다 현재 제작1그룹장을 맡고 있다. 삼성 스마트 TV의 ‘패밀리 스토리’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시각장애인 청소년들의 ‘촉각과 청각’을 활용한 사진전을 다룬 ‘insight’ 삼성카메라 캠페인 등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칸 광고제’ 금상을 비롯한 다수의 광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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