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monitor
‘내가 정말 집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결국 올 것이 왔다. 전세금보다 매매가가 저렴한 아파트가 등장한 것이다. 2015년 9월, 부동산114는 서울·수도권 아파트 1291채 중 12%인 155채의 전세금 가격이 매매가의 90%를 넘었고, 이 중 29채의 경우 매매최고가가 전세최고가보다 실제 낮았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1 빌려서 사는 것이 구매해서 사는 것보다 더 비싸진 시대가 온 것이다. 이 통계는 집값이 장기적으로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심리가 전제될 때 나타날 수 있는 결과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집은 더 이상 부를 늘리는 수단으로써의 기능이 아닌 것 같아 보인다(앞으로는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 어려운 시대가 될 것이다 - 동의 56.4%, 비동의 28.1%).2 현재 한국 사회의 소비자들은 집을 현실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많아 보였다. 사람들은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너무 높은 집값’이라고 지적했고(80.7%), 85.8%는 1년 이내에 주택 구입 의향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재의 집값이 너무 비싸고(37.1%), 대출 받는 것에 대한 부담(36.1%)때문이었다.3 그렇다면 집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 있을까?
집, 사용가치를 높이다: 집에 오래 머물면 변하는 것
직관적으로 사람들은 ‘집 ≒ 휴식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집’이라는 단어를 휴식(91.4%), 가족(66.7%), 잠자는 공간(60.6%), 누울 수 있는 공간(59.9%), 사적인 공간(56.1%), 쉼터(55.9%)등과 연관해 떠올리고 있었다.4 절대다수의 소비자들이 집에서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로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적 불안감을 높게 경험하고 있는 현대의 소비자들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경험하기 위해 과거보다 더 오래 집에 머물고 있었다(집에 머무는 시간 - 작년 대비 증가 23.8%, 작년 대비 감소 19.4%).5
집에 머무는 체감 시간의 증가는 자연스레 집안 내부 구조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있다. 2001년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진행한 CTR(Consumer Trend Report) 자료에 따르면 당시 소비자들은 집안 내부 환경에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었고, 특히 ‘스스로 집안 환경을 바꾸기 위해 애쓰는 노력’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가구 배치나 장식을 자주 바꾼다 - 23.4%, 집안 장식은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좋다 - 15.1%, 실내 장식에 신경을 쓴다 - 43.8%, 내가 직접 벽지나 페인트칠을 하는 것처럼 집안 가꾸기를 좋아한다 - 34.7%).6
하지만 이런 집안 내부 인테리어에 대한 최근 소비자들의 관심은 과거에 비한다면 가히 폭발적인 수준으로까지 늘어났다.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54.9%가 홈인테리어를 한 경험이 있었고, 이들은 주로 ‘집안 분위기 전환’(71.9%)과 ‘주거환경 향상’(34.1%)을 위해 홈인테리어를 시도했다고 응답하고 있었다.7 혼자 할 수 있는 셀프인테리어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71.4%가 ‘향후 의향이 있다’고 밝혔으며, 예쁜 집 인테리어를 보면 ‘따라 해보고 싶다’고 느꼈고(83.8%), 집 인테리어를 통해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87.8%).8 이런 집안 인테리어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최근 ‘집방(집안 내부를 바꾸거나 꾸미는 것과 관련된 TV프로그램)’의 높은 인기로 나타나고 있으며 인테리어 산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9
집이 더 이상 매매차익을 챙기는 교환가치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사용가치를 높이는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보는 TV가 중요해지는 이유: TV가 일상적인 경험 욕구를 대리하다
소비자들 중 10명 중 7∼8명은 집에 머물 동안 충분히 많은 활동을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굳이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충분히 많다 - 75.2%).10 그리고 가뜩이나 얇아진 주머니 사정도 집에 있는 것을 부추긴다(집에 머무는 시간 증가 이유 - 2순위, 밖에 나가면 돈 쓸 일이 많아서 39.2%).11 하지만 이런 ‘다양한 활동이라는 희망사항’과는 다르게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은 주로 ‘TV 보기(78.6%)’였다(집에서 주로 하는 활동 1순위).12 특히 선호하는 장르는 전통적인 TV프로그램의 강자인 ‘드라마’ ‘뉴스’ ‘영화’가 아닌 ‘예능’(76.8%)이었다(1순위).13 예능에 열광하는 이유 1위는 ‘(내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50.0%, 1순위).14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 요인의 공통점은 뭔가 ‘일상과 유사한 형태의 친숙함’을 전제로 ‘자극(활력)을 제공하고’ ‘평소 경험하지 못하는 경험을 대리’해준다는 것이다. 즉, 현재 소비자들은 TV를 통해 내가 실제로 하고 싶은 경험들을 대리해서 경험하고, 이것이 프로그램의 인기를 높이는 이유인 것이다. 실제 상당수의 소비자들은 리얼리티 TV프로그램이 나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며(69.4%), 심지어 그 대리만족을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힐링’의 경험까지 느끼고 있다고 응답하고 있었다(리얼리티 TV프로그램은 일상생활에 힐링을 준다 - 62.7%).15 이쯤 되면 당분간 ‘집’을 중심으로 한, 뜰 만한 비즈니스 트렌드가 눈에 보인다. 배달, 택배, 인테리어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여행, 연애, 육아, 농/어촌체험 등을 TV를 통해서만 간접 체험해야 하는 소비자들의 빈 주머니를 채워주지 않는 한 이 결핍들을 근본적으로 메워줄 본질적 욕구 충족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윤덕환마크로밀엠브레인 컨텐츠사업부 총괄부서장(이사) [email protected]
필자는 고려대에서 문화·사회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크로밀엠브레인에서 다수의 마케팅리서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현재 컨텐츠사업부를 총괄하면서 인천대 소비자ㆍ아동학과 겸임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장기불황시대 소비자를 읽는 98개의 코드> <불안권하는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는다> 대한민국 트렌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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