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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준비생의 도쿄

버려지던 것에 새 기회 있더라. 참치 갈빗살 메뉴로 뜬 마구로마트

이동진 | 233호 (2017년 9월 Issue 2)

편집자주

같은 장소를 여행하더라도 안정된 직장이 있으면 사업 아이디어를 거의 찾지 못하지만 퇴사를 준비하고 있거나 독립한 상황이라면 수많은 신사업 거리를 찾곤 합니다. 퇴사준비생의 시선에서 도쿄 여행을 하며 찾아낸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동진 대표의 인사이트를 소개합니다. 이 원고는 저서 <퇴사준비생의 도쿄(더 퀘스트, 2017)>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도쿄 외곽에 위치한 미즈노야베이커리는 ‘하시코 벤또’라는 케이크를 판매한다. 직사각형 통에 담아 휘핑크림과 각종 과일로 토핑을 한 이 케이크의 가격은 500엔. 스타벅스가 460엔에 판매하는 조각 케이크와 가격은 비슷한데 양은 훨씬 많고 맛도 좋으니 손님들에게 인기일 수밖에 없다. 신선한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면서도 가격을 낮춘 비밀은 생크림 아래에 숨어 있다. 롤케이크를 만들 때 버려지는 가장자리 부분을 도시락에 담아 케이크 베이스로 삼았다. 그 위에 생크림을 뿌리고 제철 과일을 올려 새로운 케이크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가장자리 도시락’을 뜻하는 ‘하시코 벤또’다.


이처럼 버려지는 부위를 활용해 새로운 요리를 만들면 손님은 저렴한 가격으로 요리를 맛볼 수 있고, 가게는 낭비를 줄여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 원재료의 단가가 높은 제품일수록 버리는 부위를 최소화한다면 효과는 더 커진다. 한 마리에 2000만 원을 호가하는 참치가 대표적이다. ‘마구로마트’는 버려지는 부위의 효용을 극대화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 참치 전문점이다.


참치와 숟가락의 상관관계

마구로마트는 골목길 안쪽 외진 곳에 위치해 있고, 심지어 점심장사 없이 저녁에만 영업을 한다.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도 쉽지 않다. 찾기도 힘들고 예약도 어려운 참치 전문점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테이블에 놓인 숟가락이 그 비결이다.


육류는 뼈에 붙은 고기 자체가 하나의 요리다. 뼈에 붙어 있는 살점이 다른 부위보다 더 맛있으며, 조리 과정에서 뼈의 풍미가 고기에 배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류와 달리 참치의 나카오치(등뼈에 붙은 갈빗살)는 그 자체로는 상품성이 떨어진다. 기름지고 고소해 맛은 좋지만 손질이 힘들고, 손질을 해도 깔끔하지 않아 사시미로 사용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보통 다른 요리의 부재료로 사용된다. 갈빗살을 갈아 덮밥으로 만든 마구로동(참치덮밥)이나 초밥으로 만든 네기토로(군함말이초밥)가 대표적인 예다.


마구로마트에서는 이 부위를 다른 방법으로 살려냈다. 고객들에게 길이 40㎝의 참치 갈빗대를 통째로 제공해 손님들이 숟가락으로 갈빗대의 사이사이를 긁어 먹게 만든 것이다. 갈빗살을 손질할 인건비가 들지 않기 때문에 가격도 2000엔으로 비교적 저렴하다. 이 메뉴는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가 돼 최소 하루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효자 상품으로 등극했다. 물론 갈빗살과 숟가락이 전부는 아니다. 이 시그니처 메뉴의 히트 뒤에는 마구로마트의 다양한 노력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1. 낮출 때는 확실하게

마구로마트가 있는 나카노는 도쿄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임대료를 낮춰 합리적인 가격으로 신선한 참치를 제공하기 위해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그것도 골목 안쪽에 터를 잡았다. 시내나 산지에 있으면 모객이 용이할 수는 있지만 고정비용이 증가하는 탓에 참치 가격을 높이거나 참치 등급을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보통의 참치 전문점과는 달리 원재료비를 낮추기 위해 한 마리를 통째로 구매하지 않고 필요한 부위만 골라서 구매한다. 참치를 통으로 구매할 경우 다양한 부위의 요리가 가능하고, ‘참치 해체 쇼’를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팔지 못하는 부위가 생겨 비효율이 발생하는 문제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마구로마트는 필요한 부위만을 골라서 구매한다. 임대료를 절감했을 뿐만 아니라 원재료비까지도 낮췄기에 고객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참치를 제공할 수 있었다.


#2. 참치를 먹는 새로운 방식

임대료가 낮다는 것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뜻이고, 이는 고객을 모으기가 어렵다는 문제로 이어진다. 대신 마구로마트는 이곳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참치를 먹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고객이 찾아오게 했다.


가게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코스요리처럼 보이는 순서도다. 시그니처 메뉴를 하나의 ‘시그니처 코스’로 만들어 매장의 콘셉트를 강화한 것이다. 손님들은 우선 기본 메뉴인 등살, 목살, 뱃살로 구성된 참치 모둠을 맛본다. 모둠을 먹고 나면 손님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순서도를 보고 시그니처 메뉴인 참치 갈빗살을 주문한다. 보통의 참치 매장에서는 기본 메뉴에서 매출이 주로 나오지만 마구로마트에서는 추가 메뉴인 시그니처 메뉴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 남는 부위에서의 매출을 올리기에 더욱 남는 장사다.


#3. 고객이 고객을 부른다

마구로마트는 여러 장치를 통해 고객들이 가게를 스스로 알리도록 유도했다. 비주얼이 압도적인 시그니처 메뉴는 그 자체로 SNS의 ‘단골 사진’이 됐고, 벽면에 커다랗게 그려진 참치 해체도는 정보를 제공하는 수단이자 가게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공유됐다. 또한 시그니처 코스의 마지막 순서로 매장 곳곳에 있는 참치 모양의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을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고객들은 마법에 걸린 듯 가게 직원들이 권유하는 대로 참치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는다.


그 결과 SNS에서 마구로마트로 해시태그를 걸면 즐거워하는 고객들의 모습과 시그니처 메뉴의 사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고객들이 스스로 올린 진정성 있는 콘텐츠이다 보니 확산 속도가 빠르고 범위도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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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것에서 발견한 바라는 기회

지금이야 일본에서 참치가 인기가 있지만 이렇게 인정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심해에서 잡히는 참치를 육지로 배송해오면 이미 부패해 있어 먹을 수 없었던 것. ‘고양이도 먹지 않는 생선’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버림받던 참치에 대한 재발견은 버려진 공간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1970년대는 일본 전자제품의 전성시대였다. 미국의 폭발적 수요를 맞추기 위해 화물기를 전세 내 전자제품을 공수했다. 그런데 갈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올 때는 빈 채로 오다 보니 화물기의 운송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때 빈 화물칸을 채운 것이 참치였다. 미국에서 헐값에 사들인 참치를 급속 냉동해 화물기에 싣고 돌아오면서 지금과 같은 참치의 대중화가 이뤄졌다.

마구로마트도 버려지는 것들에서 기회를 찾았다. 버려지는 참치 부위인 갈빗살을 활용해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시그니처 메뉴와 코스를 만들었다. ‘버려진’ 공간과 부위를 ‘바라던’ 공간과 부위로 재탄생시킨 마구로마트는 이런 발상의 전환을 통해 넘쳐나는 참치 전문점 속에서 인기를 얻게 됐다.   



이동진 트래블코드 대표 [email protected]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올리버와이만과 CJ E&M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여행의 가치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여행콘텐츠 기획사 트래블코드를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퇴사준비생의 도쿄>를 공동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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