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온라인 주문으로 돼지고기를 배송하는 스타트업 정육각은 보수적인 축산업계 구도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입소문의 힘이자 ‘초신선’이라는 마케팅 슬로건의 힘이기도 했다. 고기를 먹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신선도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는 데 사업 역량을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 또 ‘온라인에서 고기를 사면 주문금액과 고기의 양이 맞지 않는데도 왜 선불제만을 고집하지?’라는 순진한 질문(innocent why)을 던진 후 그 해결책으로 선포장-후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육고기는 단연 돼지고기다. 1인당 소비량만 보더라도 돼지고기(29.8㎏)는 소고기(10.3㎏)나 닭고기(17.2㎏)에 비해 거의 2배 가까이 높다. 가족과 함께 캠핑을 갈 때면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식재료이며 일과 후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도 부담 없이 즐기는 안주 역시 돼지고기다.
그런데 누구나 한번쯤 가졌을 법한 궁금증이 하나 있다. 왜 고기 맛은 먹을 때마다 차이가 나는 걸까? 품종이나 분위기에 따라 고기 맛이 달라진다는 막연한 추측 외에 고기 맛이 차이가 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다소 엉뚱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축산시장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초신선(超新鮮)’ 푸드테크 플랫폼 정육각이다. ‘신선’이라는 단어가 진부함으로 느껴지는 식품시장에 ‘초신선’이라는 도발적인 선언과 비즈니스 전략으로 도전장을 낸 젊은이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시장의 숨겨진 기회를 포착했으며, 어떻게 고착화된 시장의 질서에 맞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세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김재연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필자는 스타트업 및 기업이 혁신의 추구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이노베이션 딜레마의 전형과 그것을 돌파할 방안을 찾을 수 있었다.
축산의 ‘ㅊ’도 모르면서 시장의 판세에 도전하다
카이스트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한 김재연 대표는 2016년 8월 미국 국무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의 길을 걷기로 돼 있었다. 유학이 결정된 그해 1월, 남은 반년 동안 뭘 하고 놀아 볼까 고민하던 그는 유학 가면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없을 테니 진짜 맛있는 돼지고기를 실컷 먹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전국의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다 결국 안양의 한 도축장까지 찾아갔다. 고기 한두 근쯤 사 와서 맛보려고 했는데 도축장에서 판매하는 최소 단위는 20㎏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무거운 고기 박스를 버스에 싣고 집으로 향했다. 직접 칼질을 해서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어릴 때 하동에서 먹었던 진짜 맛있는 돼지고기 그 맛이었다고 한다. 이웃과 친구들에게 골고루 나눠줬고 구입처를 물어볼 정도로 먹어 본 사람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김재연 대표는 “유학 가기 전까지만 돼지고기 장사를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김환민 최고제품책임자(CPO)와 의기투합해 안양의 재개발 지역에 월세 3개월 치를 내고 가게를 얻었다. 처음에는 네이버에 있는 농수산물 직거래 카페를 통해 돼지고기를 팔았다.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하루 종일 고기만 썰다가 끝날 정도로 주문량이 많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온라인 카페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성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렵게 준비한 유학의 꿈을 포기하고 대전에 공장을 차렸다. 본격적으로 육고기 유통 비즈니스에 뛰어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