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2020∼2021년 미국에서는 SPAC(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 기업 인수 목적 회사) 돌풍이 일었다. 니콜라를 필두로 제품도, 매출도 없는 전기차 기업들부터 전통적인 IPO에 실패한 공유 오피스 위워크,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IPO 대어(大漁) 그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업이 SPAC행을 택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투자자, 타깃 기업(피합병 기업), 스폰서 등 SPAC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에 변화가 생긴 것과 관련이 깊다. 투자자 관점에선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고 유동성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고수익과 안정성을 겸비한 투자처로서 SPAC의 매력이 높아졌고, 기업 관점에서는 코로나19로 매출에 타격을 입거나 밸류에이션 변동의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 SPAC을 통한 상장의 짧고 간결한 절차가 가지는 메리트가 커졌다. 하지만 투자 위험이 상존하고 규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SPAC을 활용한 투자와 상장에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작년부터 미국에서 SPAC(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 기업 인수 목적 회사) 돌풍이 거세다. 비상장 우량 기업을 합병할 목적으로 설립되는 페이퍼컴퍼니 SPAC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껍데기(Shell), 혹은 백지수표(Blank-Check) 회사다. 일단 껍데기인 채로 주식시장에 상장한 뒤 미국은 2년, 한국은 3년 이내에 기업과의 인수합병을 통해 알맹이를 채우는 게 이 회사의 특징이다. 그런데 2020년부터 이런 독특한 방식으로 증시에 입성한 SPAC의 IPO 건수와 공모 금액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 대비 건수는 4배, 공모 금액은 6배 이상 증가하면서 역사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SPAC 상장이 이뤄졌으며 그 기세가 올해도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2021년에는 5개월 만에 326건의 SPAC IPO가 성사돼 이미 그 건수가 2020년 전체 규모를 넘어섰다. 전체 신규 상장 공모 금액에서 SPAC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에는 22%에 불과했지만 2020년과 2021년 각각 48%, 67%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SPAC IPO의 규모가 전통적인 IPO를 능가하게 된 것이다.
특히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SPAC의 상장이 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20년 NYSE의 IPO 공모 금액 660억 달러 중 무려 410억 달러가 SPAC 상장에 몰렸다. 이는 NYSE에서 2016년까지 SPAC 상장이 거의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NYSE가 SPAC 유치를 위해 2017년 최소거래단위(round lot) 주주 수 및 규모의 요건을 대폭 낮추는 등 규정을 완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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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상장 수수료를 경감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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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SPAC이 합병 대상, 즉 알맹이를 찾지 못하고 청산되는 비율도 감소했다. 2015년 이후 인수에 실패해 강제 청산된 SPAC의 평균 비율은 5.9%에 불과해 2009∼2014년의 평균인 27.3%에 비해 훨씬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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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타깃-스폰서’팬데믹 이후 SPAC 이해관계자들의 변화이처럼 2020년 미국에서 SPAC 상장이 급증한 배경으로는 지난해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팬데믹 사태를 빼놓을 수 없다. 팬데믹을 계기로 SPAC의 핵심 이해관계자인 투자자, 타깃 기업(피합병 기업), 스폰서들의 움직임이 한층 더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은 전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주식시장에 불안을 가져왔다. 그리고 연준(Fed, 연방준비제도)의 제로 금리 정책에 따른 유동성 증가는 저가 매수 기회를 잡으려는 개인투자자들을 증시로 끌어들였다. 실제로 록다운으로 야외 활동이 제한되자 미국의 주식 거래 플랫폼인 로빈후드(Robinhood) 등 MTS(Mobile Trading System)나 HTS (Home Trading System)를 통해 거래하는 개인투자자의 진입이 크게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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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현금은 넘쳐나고 증시 변동성은 확대된 상황에서 SPAC은 개인투자자들에게 ‘고수익’과 ‘안정성’에 대한 욕구를 모두 충족해주는 매력적인 선택지로 떠올랐다. 투자자 입장에선 SPAC이 다른 기업과 합병해 상장에 성공하면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상장에 실패하더라도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어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투자자뿐만 아니라 신속한 상장을 원하는 기업들의 달라진 요구도 SPAC IPO의 돌풍을 견인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상장을 준비하던 기업들이 매출에 타격을 입거나 준비에 차질을 빚는 등 상장이 지연되자 SPAC으로 선회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상장 계획을 가지고 있던 기업 입장에선 이미 상장된 SPAC과 합병을 하면 투자자 모집, 서류 제출 등 복잡한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별도의 공모 절차 없이 상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IPO에 비해 절차도 단순한 편이다. 더욱이 주관 증권사를 통해 공모 가격이 결정되는 전통적인 IPO의 경우 주관 증권사가 총액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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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인한 위험부담으로 공모 가격을 낮게 책정할 유인이 있다는 것도 기업들이 SPAC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가 될 수 있다.
헤지펀드나 유명 인사, 공인들이 SPAC을 설립하고 스폰서로 활동한 것도 SPAC 열기를 부추겼다. 지난해 헤지펀드 팰컨에지캐피털(Falcon Edge Capital)은 SPAC이 투자자에게 ‘사실상 제로 리스크(virtually zero-risk)’의 선택지, 즉 모든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 위험이 거의 없는 투자라고 가리키면서 SPAC에 높은 관심을 내비쳤다. 특히 헤지펀드의 거물 빌 애크먼, 트럼프 행정부의 고문이었던 게리 콘, 농구 선수 샤킬 오닐 등 유명 인사가 SPAC의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더욱 집중됐다.
빌 애크먼의 경우 2011년 저스티스홀딩스(Justice Holdings)란 SPAC을 설립해 1조5000억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2012년 버거킹 지분 29%를 인수한 데 이어 2014년 캐나다 커피 및 도넛 프랜차이즈 팀홀튼(Tim Hortons)과의 합병을 이끌었다. 그 결과 버거킹, 파파이스, 팀홀튼 등 굵직한 체인을 보유한 거대 체인인 레스토랑 브랜드 인터내셔널(Restaurant Brands International)을 NYSE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지난해에는 퍼싱 스퀘어 톤틴(Pershing Square Tontine Holdings)이라는 SPAC을 NYSE에 상장시켜 40억 달러에 달하는 역사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음악 레이블 유니버설뮤직(Universal Music) 지분 일부를 인수하는 방식의 SPAC 거래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니버설뮤직은 프랑스 미디어 그룹 비방디(Vivendi)의 자회사로 레이디 가가, 테일러 스위프트, 빌리 아일리시 등 유명 팝스타의 앨범을 내고 있는 회사다.
‘매출 제로’ 니콜라, ‘IPO 좌절’ 위워크,‘동남아 우버’ 그랩까지SPAC과의 합병을 통한 상장은 주로 전기차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전기차 업종에 대한 높은 관심이 SPAC 붐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차 배터리의 수요 증가로 테슬라의 주가가 급등하고 후발주자로 등장한 기술 기업들이 ‘제2의 테슬라’로 조명을 받으면서 성공적인 SPAC 합병 상장을 견인한 것이다. 그 결과, 상장 이후 거품 논란에 휩싸인 수소 전기 트럭 업체 니콜라(Nikola)를 비롯해 로드타운 모터즈(Lordstown Motors), 피스커(Fisker), XL 플리트(XL Fleet), 카누(Canoo) 등 아직 제품을 출시한 적도, 매출을 낸 적도 없는 전기차 기업들이 줄줄이 SPAC과의 합병을 통해 증시에 입성했다. 2019년 3월에 상장한 SPAC인 투스칸홀딩스(Tuscan Holdings)도 2억7600만 달러의 자금을 모은 뒤 줄곧 대마초 관련 기업을 타깃으로 물색했지만 결국 관심을 돌려 2021년 2월 전기차 배터리 제조기업인 마이크로베스트(Microvast)와 합병을 결정했다. 이는 전기차가 계속해서 SPAC들의 매력적인 타깃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2021년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전기차 기업의 SPAC 합병을 통한 상장 규모가 2020년 60억 달러가 넘었으며 이런 전기차 SPAC 붐은 올해도 지속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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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기차 기업만 SPAC 돌풍의 수혜를 입은 것은 아니다. SPAC 합병은 성장성이 있는 수많은 기업에 증시 입성의 희망을 열어줬다. 세계 최대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WeWork)가 대표적이다. 위워크는 2019년 전통적인 방식으로 IPO를 추진했다가 고배를 마신 전적이 있다. 2019년 초 기업 가치 470억 달러로 평가를 받으면서 하반기 상장에 대한 기대를 모았지만 공동 창업자이자 CEO였던 애덤 뉴먼의 방만한 경영과 사업 모델에 대한 의구심으로 기업 가치는 200억 달러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회사 스스로 IPO를 철회했다. 이후 일본 소프트뱅크의 투자로 경영권을 넘기며 기사회생하긴 했으나 다시 단독으로 IPO를 추진할 정도의 체력을 회복하진 못했다.
더욱이 2020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공유 오피스 사용자가 감소하면서 전체 지점의 입주율이 크게 하락하고 100개 지점 이상이 문을 닫았으며, 올해 들어 예년 수준을 겨우 회복한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런 어려움을 딛고 위워크는 NYSE에 상장된 SPAC인 바우X 애퀴지션(BowX Acquisition)과의 합병 방식으로 뉴욕 증시 상장을 눈앞에 두게 됐다. 기업 가치는 90억 달러로 이전 470억 달러보다는 훨씬 떨어진 수준이지만 합병 발표 후 바우엑스 주가는 크게 급등해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자아냈다.
그렇다고 해서 SPAC 상장이 전통적인 IPO가 어려운 기업을 위한 ‘패자부활전’인 것만은 아니다. 가령 최근 동남아시아 차량 공유 및 배달 서비스 업체 그랩(Grab)의 SPA를 통한 상장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그랩은 ‘동남아시아의 우버’로 불리며 IPO 대어로 손꼽히는 회사다. 물론 아직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8개국 350개 이상의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며 투자자의 면면도 소프트뱅크그룹, 디디추싱(Didi Chuxing), 마이크로소프트 등으로 화려하다. 차량 호출과 배달은 물론 금융 서비스 플랫폼으로도 성장성이 매우 높은 유니콘 기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랩이 올해 4월 나스닥 상장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투자회사인 알티미터캐피털(Altimeter Capital)이 설립한 SPAC과의 합병을 발표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합병 기업의 가치도 396억 달러로 역대 SPAC 합병 가운데 최대 규모로 평가받고 있다.
그랩의 사장인 밍 마(Ming Maa)는 최근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장기적인 투자 파트너이자 사업의 공동 소유자로서 알티미터캐피털에 대한 신뢰를 내비쳤다. 3년 동안 지분을 팔지 않겠다는 SPAC의 긴 록업(lock-up) 기간 보장과 그랩의 사업 방식 및 전략적 비전에 대한 존중을 전통적인 IPO 대신 SPAC을 선택한 이유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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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전통적인 IPO 주관사들은 일회성 관계를 맺는 상장 기업보다 자신들의 오랜 고객인 기관투자가들의 이익을 더 고려할 가능성이 있는 데 반해 SPAC은 타깃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에 관심을 둘 수 있다고 봤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IPO 주관사들은 주요 클라이언트들이 시세 차익을 큰 폭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최초 주가를 시장 밸류에이션보다 낮게 책정할 유인이 있다. 이에 반해 기업이 SPAC을 통해 상장할 경우 이런 이해관계 상충 문제가 덜 발생하고 미래 비전을 공유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알티미터캐피털은 동남아 취약 계층에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는 기업 미션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그랩이 차량 운전사나 소상공인 등의 파트너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굿 포 그랩(Godd for Grap)’ 펀드 전체 자금의 10%를 후원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왜 SPAC을 선택했나?앞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금력이 부족한 기술 기업이나 전통적인 IPO 실패 후 재도전하려는 기업, SPAC과의 협력으로 시너지 창출을 도모하는 기업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기업들이 SPAC을 선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많은 기업이 전통적인 IPO 방식이 아닌 SPAC을 통해 상장을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업 입장에서 SPAC을 통한 상장의 가장 큰 장점은 전통적인 IPO에 비해 간단한 절차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IPO는 상장까지 준비가 복잡하고 통상 약 12∼18개월이 소요되지만 SPAC을 통한 상장은 4∼6개월 정도면 된다. 이처럼 소요 기간의 단축은 기업의 준비 부담을 덜어줄 뿐 아니라 준비 기간 중 발생 가능한 가격 변동의 위험도 낮춰준다. 즉, 전통적인 IPO는 시장 상황에 따른 가치평가(밸류에이션)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데 반해 SPAC 합병에 의한 상장은 미래의 예상 실적을 반영해 합병 가액을 확정하기 때문에 변동성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된다. 그러다 보니 위워크처럼 전통적인 IPO에 실패한 전례가 있는 기업으로서는 같은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는 부담을 지지 않고 빠르게 상장할 수 있는 SPAC을 선택할 이유가 있다.
SPAC 상장 절차다음으로, 기업은 SPAC과의 합병 과정에서 기업에 대한 비전을 투자자들에게 제시한다. 사실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은 기업에 대한 투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업은 SPAC과의 합병 과정에서 비록 현재 가시적인 성과가 없지만 미래 성장성과 기술력이 있는 기업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한 예로, 2019년 SPAC과 합병한 리처드 브랜슨의 우주 탐사 기업 버진갤럭틱(Virgin Galactic)은 확실한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았지만 SPAC과 함께 제조 시설 및 우주정거장 여행을 후원하는 등 창조적인 마케팅 전술을 사용해 투자자들에게 미래 성장성 및 전망을 제시했고, 투자자들은 이 과정을 통해 기업의 목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전기차 기업들도 아직 제품이 없거나 매출이 미미한 상황에서 SPAC과의 합병을 통해 일종의 홍보 과정을 거치면서 증시에 성공적으로 입성했다.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IPO와는 달리 SPAC과 합병하면 SPAC 설립자의 광범위한 전문 네트워크로부터 산업 전문 지식을 제공받을 수 있다. 2019년 1월, 처칠캐피털(Churchill Capital) SPAC은 고객의 혁신을 촉진하는 기업 분석 회사 클래리베이트(Clarivate)를 인수하기로 발표했다. 처칠캐피털은 광범위한 기술 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산업 정보 서비스 부문에 잔뼈가 굵은 마이클 클라인 회장과 제리 스테드가 설립한 SPAC으로, 클래리베이트에 전문 지식을 활용한 노하우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 둘의 합병은 SPAC과의 파트너십이 사업 측면에서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SPAC과의 합병 상장이 확정된 그랩도 SPAC 알티미터 캐피털의 오랜 전문 지식과 투자 경험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한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SPAC의 투자 위험 요소와 규제의 영향SPAC 시장의 급성장 이면에는 위험도 존재한다. SPAC을 통한 상장 시 기업 입장에서 장점으로 꼽히는 간단한 절차와 짧은 준비 기간은 투자자에게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단기간에 상장을 준비하기 때문에 기업의 큰 청사진은 보여줄 수 있지만 막상 구체적인 정보는 잘 제공하지 못할 수 있고, 투자자는 정확한 재무 상태나 실적 등 정보 파악이 부족한 상태에서 투자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SPAC은 신뢰할 만하고 투명한 정보 제공 책임을 가지고 기관투자가에 비해 정보 접근성이 취약한 일반 개인투자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아울러 투자자들도 SPAC 투자에 따른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사전 정보를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SPAC 역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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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식으로 나스닥에 우회 상장했던 니콜라는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 대비 4배 가까이 급등하며 SPAC 합병의 성공적인 사례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공매도 사업자 힌덴버그리서치(Hindenburg research)는 상장 후 3개월 만에 니콜라가 차를 단 한 대도 판매하지 않았으며 사업 성과가 과대 포장됐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아울러 이 보고서는 니콜라가 기업 설명회용으로 공개했던 수소 트럭 영상이 사기라고 폭로해 주가 급락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로 인해 기업 가치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면서 미국 법무부 및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조사에 착수했고, 현재까지 사건이 진행형이다. 이는 간결한 상장 절차와 정보의 비대칭이 초래할 수 있는 투자 위험을 보여준다.
SEC는 SPAC 경영진이 인수합병을 통해 대규모의 인센티브를 받는 것을 지적하면서 보수 및 관련 인센티브에 대한 투자자들의 이해가 미흡한 점을 염려해 SPAC의 소유 구조 및 보수 지급 구조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SPAC이 합병 대상 기업을 물색하고 합병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대가로 경영진은 막대한 인센티브를 받는다. 이는 경영진이 적합한 기업을 찾도록 장려하는 유인이 된다는 측면에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SPAC 경영진에 대한 보상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합병 후 보수 지급 구조에 대한 투자자들의 이해가 제대로 없다는 점에서는 우려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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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가 감시의 고삐를 조이기 시작하자 SPAC 합병 상장의 급증세도 주춤한 모습이다. 2021년 들어서도 SPAC은 크게 증가해 2020년 SPAC IPO 건수를 상회하고 있지만 대부분 1분기의 실적이고 2분기 들어서는 다소 속도가 느려졌다. 올해 1분기 298건의 상장이 이뤄진 데 반해 4월과 5월에는 32건으로 SPAC 상장이 더딘 모습이다. SEC가 본격적으로 SPAC 붐에 제동을 건 것은 올해 3월이다. 유명인이 참여한다고 해서 SPAC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도록 투자주의보(Investor Alert)를 게시하고 정보 공개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더 높일 것을 주문했다. 더불어 SPAC 상장 업무를 담당한 IB의 위험관리 실태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SPAC 상장을 할 때 투자자에게 보통주와 신주인수권(워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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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구성된 유닛을 발행하는데 이때 신주인수권을 경우에 따라 자본이 아닌 부채로 인식해 공정 가치 변동분을 주기적으로 반영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워런트를 남발하고 이를 SPAC 대차대조표에서 자본으로 인식하던 회계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 같은 SEC의 지침은 SPAC 상장이 급증한 데 반해 막상 성과는 그리 좋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SPAC의 운영 상황을 점검하면서부터 시작됐다. 2020년 초부터 거래를 시작한 41개의 SPAC 중 3개만 주가가 5% 상승했고 18개는 주가가 반 토막 나버렸다. 일부는 주가가 80%나 하락하기도 했기에 평균 하락률은 39%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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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에 대해 투자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증가했다. 2020년 초부터 연방 법원에서만 50건 이상의 SPAC 관련 소송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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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혐의로는 SPAC의 정보 공시 의무 위반, SPAC의 합병 대상 기업에 관한 부실 정보 및 주가 조작 등이 있다. 최근 전기차 기업 루시드모터스(Lucid Motors)와 합병 논의를 마친 처칠캐피털 IV를 상대로도 불충분한 정보 제공 혐의로 6건의 집단 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일련의 규제 강화 기조는 향후 SPAC을 활용하려고 계획 중인 기업들의 상장 준비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회계 분류 지침의 변경으로 SPAC 재무제표를 다시 작성해야 할 가능성도 있고, 외부 감사 법인 역시 SEC의 회계 처리 기준이 명확해질 때까지 감사를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SPAC 합병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그랩도 합병 완료 시기가 예상보다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 이유로 과거 3년간의 회계감사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국내 SPAC 현황 및 시사점미국에서는 SPAC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호황을 누린 반면 2020년 국내 SPAC IPO 실적은 2019년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그러나 올해 SPAC 상장 증가, 대형 SPAC 상장, SPAC 수요 예측 경쟁률 증가 등을 보면 미국발 SPAC 돌풍이 국내 시장으로도 옮겨오고 있는 흐름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2021년 5월 기준 SPAC IPO가 10건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 연말까지는 2020년의 19건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SPAC의 인기 상승은 청약 경쟁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SPAC 공모 청약의 평균 경쟁률은 2020년 3.14대1이었지만 2021년 들어 92대1로 급증했다. 이 중 4건의 SPAC IPO 경쟁률은 100대1을 넘어섰고 가장 높은 경쟁률은 237.4대1을 기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올해 ‘스팩 상장은 코스닥’이라는 공식이 깨졌다는 것은 큰 변화다. 올해 5월 유가증권시장에 공모 금액 960억 원 규모로 상장한 NH스팩19호가 SPAC 대형화의 문을 연 것이다. 유가증권시장에 SPAC이 상장한 것은 무려 11년 만이다. 국내에서는 2009년 SPAC 제도가 도입된 이후 코스닥 시장을 중심으로 SPAC의 상장이 이뤄져 왔고 2010년 3건을 제외하고 모든 SPAC은 코스닥시장에만 상장했다. 이들의 주요 목표는 코넥스 기업 및 비상장 기업과의 합병이었다. 과거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던 3개의 SPAC은 합병에 실패하고 모두 청산됐기 때문에 이번 상장된 SPAC이 합병에 성공할지가 국내 SPAC 시장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더욱이 최근 한국거래소는 SPAC이 소멸하는 방식의 합병 상장 허용에 관한 개편안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원칙적으로 역합병 방식을 금지했기 때문에 합병 대상이 되는 타깃 기업이 특허권, 라이선스 등을 재취득해야 하고 이로 인한 취득세, 등록세 등의 각종 비용이 발생한다는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이 확정되면 SPAC의 피합병 기업이 존속 법인이 되는 방식도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제도적 뒷받침은 SPAC의 수요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SPAC 상장을 향한 이해관계자의 관심이 증대되는 가운데 국내 SPAC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SPAC을 통한 상장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미국 시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SPAC을 활용한 상장이 ‘합병’으로 제한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SPAC은 합병뿐 아니라 대상 기업의 지분 인수 및 영업 양수, 주식 교환과 같은 다양한 기업 결합 방식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같이 SPAC을 활용한 기업 결합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을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합병 방식이 아닌 경우에는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없어 불충분한 정보 제공에 따른 투자자 보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SPAC 열풍으로 여러 기업이 상장에 성공하긴 했지만 이후 SPAC의 주가 하락 및 소송 증가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것만 봐도 SPAC 관련 제도 도입 시 투자자 보호 등 득실을 따져보고 ‘묻지마 투자’를 막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정성 측면에서도 인수합병 기간 내 진입한 투자자는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지만 그 이후 진입한 투자자는 주가 등락에 따른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2021년 5월, 버크셔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도박판 같은 SPAC 열풍이 영원히 갈 수는 없다. 누구도 언제 끝날지 말해주지 않는다”고 경고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최근 한국거래소도 일부 SPAC 주가의 단기 급등 현상에 대해 경고하며 주가가 급락할 위험이 있고 합병에 실패할 경우 SPAC 주식에 대한 투자자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미공개 정보 이용, 시세 조종, 부정 거래 등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기획 감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지난해부터 SPAC 열풍이 불었다가 올해 초 SEC의 규제가 시작된 것을 보면 국내에서도 올해 SPAC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긴 해도 언제든지 투자자 보호 문제가 불거지고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PAC을 선택하는 기업들이 소형주에서 대형 우량주로 확대되고, 직상장 외에 다양한 방식의 M&A가 등장하는 흐름은 기업들의 엑시트(exit) 경로 다변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자기자본은 부족하지만 기업 가치나 성장성을 높게 평가받는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SPAC이 한국에서도 전통적인 IPO의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을지 기업, 투자자 모두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 [email protected]홍지연 연구원은 이화여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회계학 전공)를 취득했다. 글로벌 디지털세 도입, 경영진 보상에 대한 ESG 요소 반영 추세, 영국의 상장 제도 개혁 움직임, 미국의 스팩상장 급증 및 시사점 등 다양한 국가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 관련 최신 동향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