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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코로나 사피엔스의 식탁 혁명

김현진 | 338호 (2022년 02월 Issue 1)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신선한 충격을 느낀 대목이 있었습니다. 농업혁명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분석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통념인 ‘인간은 대체로 농업을 통해 한곳에 정착해 문명을 세우고 지성을 발휘한 덕에 지금과 같은 발전상을 맞게 됐다’와는 반대되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오히려 야생식물을 채취하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며 자유롭게 살던 인류는 농업혁명으로 인해 경작이라는 노동의 굴레에 묶이게 되고, 축적된 곡식을 이웃의 약탈로부터 지키기 위해 폭력과 투쟁의 역사를 걷게 됐다는 겁니다. 이에 더해 농업혁명과 동반된 야생동물의 가축화는 인간들로 하여금 동물의 야생성을 잠재우기 위한 거세, 학대 등을 서슴지 않게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실제 출생 직후 어미와 분리돼 좁은 우리에서 지내다가 태어난 지 불과 4개월 만에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가 돼 버리는 송아지의 일생을 들었을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농경 사회로의 정착이 동물들과 그들과 먹이사슬로 얽힌 인간들 모두에게 과연 행복한 선택이었을까’ 묻는 『사피엔스』의 질문에 가벼이 답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농업혁명의 순기능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농경 사회는 인류와 인류가 선택한 가축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농경과 목축은 진화적 관점에서 종의 융성을 도운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식량의 90%가 가축을 처음 길들이고 농작물을 경작한 기원전 9500∼3500년 모습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만 봐도 농업혁명 기반의 식량은 오랫동안 인간의 생존을 돕는 데 도움이 됐던 게 사실인 듯합니다.

이러한 역사가 담긴 식탁이란 공간과 음식은 시대상과 사회적 변화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게 하는 증거가 돼 왔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낳은 대변혁의 시대 속에서 우리의 식탁과 식품 관련 산업 역시 새로운 전환점을 맞으며 역사에 기록될 변화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를 촉발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받는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 감염병 시대에 관심이 한층 높아진 건강 및 보건 이슈, 육식의 잔인성을 극복하려는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식탁의 혁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육식을 완벽히 배제하는 엄격한 수준의 채식을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유동적, 간헐적으로나마 대안적 식문화에 담긴 가치를 실천하려는 사람들, 즉 ‘플렉시테리언(Flexible+Vegetarian)’의 부상은 코로나 시대를 사는 인류, 즉 코로나 사피엔스들이 추구하는 식탁 문화로 떠올랐습니다. 채식주의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에선 이미 2년 전부터 소비자의 36%가 잡식성(53%)과 구분되는 ‘플렉시테리언’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기 시작했고 매년 그 비율은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트렌드는 글로벌 식품 시장 조사 기관인 이노바마켓 인사이트가 ‘2022년 글로벌 식품 트렌드’로 지구의 건강, 혁신을 기반으로 한 식물성 제품, 식탁 위의 기술, 식생활 변화 등을 꼽은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결과입니다. 이 가운데 ‘식탁 위의 기술’을 추구하는 푸드테크 기업들 대부분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기술개발을 통해 먹거리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식품 산업 트렌드를 관통하는 철학을 짐작하게 합니다. 또한 채식 기반 식생활의 유행은 전 세계적으로 김치를 필두로 한 한식의 유행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과거 육식은 물론 생선, 우유까지 거부하는 완전 채식주의자, 즉 비건만을 타깃으로 했던 시절의 채식 기반 식품 산업은 확장성에 한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플렉시테리언이 ‘신인류’로 부상하고 식생활을 중심으로 한 삶의 개선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면서 관련 시장은 큰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약 1만2000년 전부터 인류의 삶을 바꾼 농업혁명의 나비효과처럼 나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을 위한 ‘지속가능한 식생활’은 인류에게 또 다른 식문화 혁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환경과 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성, 건강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이 결합된 코로나 사피엔스 시대, 식품 산업의 오늘과 미래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탐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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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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