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횡령 사건이 연일 보도되고 있지만 많은 기업이 남의 일로만 치부하는 등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횡령 사건은 한 기업의 유동성 위기와 자본시장의 교란을 불러오는 중대한 문제다. 이것이 내부회계관리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2019년부터 외부감사인이 상장 기업의 내부 통제를 감사하기 시작했지만 감사 결과에 따르면 내부회계관리제도에 중요한 취약점이 존재하는 상장 기업이 159개에 달했다. 이들 기업은 자금 및 결산 관리 프로세스가 마련돼 있지 않거나 인력, 경영진의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행동 강령 제정과 주기적인 교육, 내부 신고제도 등을 통해 부정행위에 대한 합리화를 막고, 전문 인력의 확충, 사후 모니터링 실시를 통해 기회 요인을 줄여야 한다.
2022년 새해 벽두를 흔든 오스템임플란트의 2215억 원 횡령 사건 이후 대기업이라 나름의 내부 통제가 작동하리라 기대했던 우리은행에서도 문서를 위조해 697억 원을 빼돌렸다는 뉴스가 나왔다. 연달아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은 폐기물 처리 시설 투자 유치금 중 115억 원을 횡령했고, 한국수자원공사에서는 취득세 납부 과정에서 세액을 중복 청구하는 방식으로 2014년부터 7년간 85억 원을 횡령하는 등 일반 기업뿐만 아니라 금융기관과 지자체, 공기업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넘나들며 횡령 사건이 발생해 공분을 샀다. 횡령 금액이 수천억 원에 달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수년간 발각되지 않고 지속돼 왔다는 점도 충격적이다.
이러한 세태를 비웃듯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횡령 금액이 큰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는 ‘천하제일 횡령대회’라는 글이 수시로 업데이트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8월 초 기준, 2215억 원을 기록한 1위 오스템임플란트에 이어 우리은행이 697억 원으로 2위, 휴센텍이 259억 원으로 245억 원의 계양전기를 제치고 차트 3위에 새로 진입했다. 이 ‘횡령 기업 리스트’는 매일 단위로 업데이트된다. 대(大)횡령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적잖은 경영자는 아직도 이런 사태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대부분 이런 사건들은 ‘다른 기업’의 문제점이며 ‘우리 회사는 안전하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횡령 사건들이 일어나자 ‘혹시나 해서 철저히 조사를 해봤는데 우리 회사는 시스템이 잘 정비돼 있어서 절대 그럴 염려가 없더라’라고 자랑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 며칠 만에 바로 그 회사에서 대규모 횡령이 적발됐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됐다. 그 후 그분을 다시 만나니 “회사가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점이 하나 있어서 발생한 사건인데 그 문제도 이제 고쳐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이후 이 회사에선 불과 몇 개월 만에 또 다른 사건이 적발되기도 했다. 횡령이 그만큼 만연하다는 이야기다.
최종학 교수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권과 『재무제표 분석과 기업 가치평가』 『사례와 함께하는 회계원리』,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