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문화예술경영 접근법은 국제경영 전략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도적 차이, 문화적 생경함에서 나오는 외국인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기업은 현지 문화를 기업 특성으로 흡수하는 현지화 전략을 활용한다. 중국 상하이 디즈니랜드에 12지신과 손오공이라는 현지 요소를 담은 디즈니, 지역마다 현지 문화를 반영해 한정 굿즈와 메뉴를 선보이는 스타벅스가 대표적이다. K-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에 힘입어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추구할 수 있는 문화예술경영의 범위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기업 고유의 강점과 한류의 특성을 이상적으로 결합한 전략을 고민할 때다. 창업 초기부터 세계 시장을 지향하는 ‘태생적 국제화 기업’이 늘어난 오늘날, 국제경영 전략에도 더 많은 문화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국제경영 연구는 외국에 진출하는 기업이 극복해야 하는 외국인 비용(liabilities of foreignness)에 초점을 맞췄다.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점진적 진출의 과정(internationalization)과 지배구조 결정(internalization)을 주로 연구했다. 국내 시장에서 성장해 해외 진출 단계를 밟는 점진적 국제화 기업 중심의 시대상에 따른 당연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국제경영의 패러다임은 일대 전환을 맞았다. 창업 초기부터 세계 시장을 지향하는 ‘태생적 국제화(born-global)’ 기업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경영 접근법은 이러한 국제경영의 패러다임 변화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친숙함의 힘친숙함은 힘을 갖는다. 올림픽에 출전한 양궁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양궁협회는 현지 경기장과 동일한 환경의 연습장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반대로 친숙하지 않은 환경은 불편함과 경직을 가져온다. 원정 경기를 갖는 축구 선수들이 상대편 관중의 함성에 위축되고 실수를 한다는 경험담이 종종 들려오는 이유다.
기업 경영도 비슷하다. 친숙하지 않아서 지불하는 비용을 국제경영 용어로 외국인 비용이라고 한다. 이방인이 낯선 지역에서 감당해야 하는 비용 또는 불편함이다. 상이한 법규, 기술표준 등에서 발생하는 공식적인 장벽과 문화적 생경함에서 발생하는 비공식적 장벽에 기인한다. 특히 비공식적 장벽의 경우는 공식적 장벽보다 해결하기 힘들 때가 많다.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 영역이기 때문이다. 친숙하지 않은 외국 브랜드를 만날 때 기꺼이 지갑을 열 소비자는 흔하지 않다. 의심에 찬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외국인 비용은 넓은 의미에서 선도기업열위(First Mover Disadvantage)의 일부이기도 하다. 선도기업우위(First Mover Advantage)는 기술적 또는 지역적 영역으로 경쟁기업들보다 먼저 진입한 기업이 누리는 유리함을 의미하는데 선도기업열위는 그 반대의 경우, 즉 먼저 진입한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불리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서방 기업 최초로 1980년대에 중국 시장에 진입했던 폴크스바겐의 경우가 그렇다. 폴크스바겐은 당시 여러 측면에서 선도기업우위를 달성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중국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중국 소비자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불리함을 감당해야 했다. 즉 개척자가 감당해야 했던 부담을 감수했던 것이다. 후발 기업들은 선도기업의 상황을 관찰하면서 간접적으로 현지 사정에 친숙해지는 상대적인 우위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을 후발기업우위라고 한다.
국제경영 전략에서 외국인 비용을 절감하는 전통적인 방법 중 하나는 현지화 전략이다. 현지 직원을 채용하고 현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포함해 직급 체제나 업무방식, 근무시간 등 현지 업무 문화를 따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국에서 파견하는 경영자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현지 채용 경영자의 비율을 높이면 해당 지역의 경영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용이하고 현지 네트워킹의 질도 좋아진다. 무엇보다도 현지인 직원과의 소통이 개선되기 때문에 사기를 증진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외국인 비용의 감소, 후발 기업 우위, 현지화 등은 친숙함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고객을 공략하는 현지화의 사례현지 경영자를 채용하거나 현지의 직급 체제를 사용하는 등 조직 차원의 현지화는 인사전략 차원의 국제경영 전략이다. 그런데 사실 현지화 전략은 현지 고객을 공략하는 마케팅 차원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디즈니가 좋은 예를 보여준다. 디즈니랜드는 1955년 LA와 1971년 올랜도에 이어 1983년에는 도쿄, 1992년에는 파리, 2006년에는 홍콩, 2016년에는 상하이로 확장했다. 그런데 상하이 디즈니랜드에 가면 우리가 통상 예상하는 ‘메인 스트리트’가 없는 대신 ‘미키 애비뉴’가 있다. 미국 도시의 느낌을 없애려 한 것이다. 정원에는 12지신 동물들을 새겼고 뮤지컬 ‘라이언킹’에는 손오공이 등장한다. 디즈니랜드에 방문하는 중국인들이 12지신과 손오공을 보면서 디즈니랜드를 이방 국가의 놀이터가 아니라 친근한 자국 놀거리가 존재하는 곳으로 인식하게 하려는 디즈니의 전략이 숨어 있다. 물론 중국 문화에 대한 존중도 발견할 수 있다.
스타벅스의 현지화 전략도 빼놓을 수 없다. 2025년 1월 현재 스타벅스는 전 세계에 4만여 개의 매장을 열었다. 미국(1만7000개)과 중국(7000개)에 이어 한국과 일본에 각 2000여 개의 매장을 보유했다. 스타벅스는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현지 상황에 맞춰 비교적 유연하게 관리한다. 자신들이 제조한 커피나 케이크 등을 일방적으로 고객에게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다. 스타벅스의 홈페이지에 담긴 메시지는 지역사회와의 교감을 강조하고 있으며 여기엔 현지 문화에 대한 존중이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 인사점에 가면 한글 간판이 부착돼 있고 러시아나 중국에서도 현지 언어로 표기한다. 대표적인 굿즈인 머그컵은 현지 도시명과 이미지를 그려 넣어서 제작한다. 메뉴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에서는 제주 쑥떡 크림 프라푸치노와 제주 까망 크림 프라푸치노를, 일본 이바라키현에서는 메론 크림 프라푸치노를 판매하는 등 지역에 특화한 한정판 메뉴를 선보인다. 지역 농민 상생과 관광 부흥을 기치로 한다.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고 현지의 특성을 기업의 특성으로 흡수하는 전략은 현지 고객을 공략할 뿐 아니라 지역을 초월해 일반 대중을 공략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동일한 형태지만 다양한 도시명과 이미지를 가진 머그컵들은 사람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한다.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스타벅스를 방문하며 현지 특유의 굿즈를 수집한다. 장소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만약 미국과 중국의 디즈니랜드가 동일하게 설계됐다면 한 곳에 방문한 관광객이 다른 곳에도 방문하고 싶은 욕구를 갖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LA 디즈니랜드에 방문했던 관광객이 상하이의 디즈니랜드에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그곳에 상하이 현지의 색다른 분위기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적 감수성 부족의 비용현지의 독특한 문화를 반영하는 긍정적 접근법의 반대편에는 문화 도용이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문화적 전유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이 용어는 다른 문화의 정체성에 대해 충분한 존중과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껍데기만 어설프게 차용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1970년대에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아시아인 캐릭터를 백인이 맡아 동양인처럼 분장하고 연기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러한 현상을 ‘화이트 워싱’이라고 불렀다.
워싱이라는 표현은 본질적인 것을 외면하고 그런 척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동양인에 대한 문화적인 편견이 드러나면서 백인 이외의 문화 또는 외모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심리도 표출됐다. 예를 들어 일본인을 연기하는 백인 배우는 일벌레로 묘사되거나 아프리카인을 연기하는 백인 배우는 게으른 캐릭터를 갖는 등 인종에 대한 편견이 반영되는 워싱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대신 미국인 역할의 백인 배우들은 대부분 주인공 역할을 맡으면서 복합적인 캐릭터를 표현했다.
이것은 미국 중심의 문화 이외의 지역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알베르토 몬디는 피자의 본산지인 이탈리아 사람의 입장에서 피자에 파인애플을 얹는 하와이안피자를 보면 참을 수 없다고 너스레를 떠는 장면을 종종 보여준 바 있다.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 문화적 특성이 다른 특성과 섞이거나 오염되는 것을 발견할 때에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갖는 보편적인 감정일 것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지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현지 문화를 존중한답시고 현지인을 연상시키는 가발을 쓰거나 현지인의 말투를 따라 하면서 회식을 갖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이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겠는가? 우리 고유의 태극 문양을 외국의 의류 업체에서 함부로 차용해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디자인이라고 광고한다면 우리는 어떤 심정이 들 것인가?
문화적 감수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행하는 국제경영 활동은 예기치 못한 큰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화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행태를 보이는 외국 기업에 대해 시위와 불매운동이 발생하고 지원자가 급감하는 현상을 우리는 종종 뉴스에서 접한다. 이것은 국가 간 정치적 갈등이나 무역 갈등이 개별 기업에 미치는 타격만큼이나 심각하게 외국 진출 기업의 현지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문화예술경영의 변천우리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추구할 수 있는 문화예술경영의 방식은 우리나라의 위상에 따라 변화해 왔다. 1980년대 이전 외국인이 기억하는 한국의 이미지는 1950년대에 겪은 전쟁 복구를 위해 국제기구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은 나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외국에 정착해 만든 코리아타운에서 열심히 일하는 동양인 정도였을 것이다. 오히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때 미국과 맞섰던 일본이나 중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뚜렷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초밥이나 튀김 등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음식들로 일본 문화를 인식했고, 베이징의 천안문이나 거대한 만리장성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중국 문화를 인식했다. 그러나 한국 문화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김치라는 음식을 먹는 민족, 또는 ‘블랙 페이퍼(black paper)’라고 알려진 딱딱한 김을 먹는 민족 정도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는 외국 시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한국 기업은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정보를 가급적 감춰야 했다. 한국산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품질에 대한 의심을 받았고 제대로 된 가격을 받기도 힘들었다.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그래서 기업들은 가급적 이 제품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것을 감췄다. 제품명이나 디자인에 뉴욕이나 파리 등 멋진 장소의 느낌과 감성이 담길 것을 원했다. 이것이 그 당시의 문화예술경영의 비법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대만과 중국에서 ‘사랑이 뭐길래’ 등 우리나라의 드라마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한류가 국제 무대에서 드라마틱하게 부상했다. 2000년대 들어 ‘대장금’ ‘겨울연가’ ‘쉬리’ 등 콘텐츠가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끌었고 그 이후의 스토리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음악, 게임, 화장품, 애니메이션 등 전방위적으로 한류가 전개됐다. 심지어 한류 먹거리로 김밥이 인기를 끌자 1980년대에 외국인들이 그토록 기피했던 김이 2024년 수산식품 수출 1위 품목으로 등극하는 기적적인 현상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 기업이 외국 시장에서 활동할 때 더 이상 한국 기업이라는 것을 감출 필요가 없다. 오히려 한류라는 후광에 힘입어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뭔가 힙 하고 멋지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게 됐다. 물론 한류가 이 세상의 모든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기업이 만드는 제품이 다른 나라의 제품과 차별화되는 어떤 특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 외국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문화적 존재감이며 한류 시대의 문화예술경영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과제는 기업 고유의 강점과 한류의 특성을 이상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가장 단순한 차원의 방식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델을 기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가 기용하는 한류 앰배서더의 활약을 보면서 이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브랜드 앰배서더는 정식 모델보다 자유롭게 일상생활에서 특정 브랜드에 대해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나이도 어린 한류 아이돌이 글로벌 럭셔리 기업의 홍보대사로 기용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들이 전 세계 팬들과 소통하며 럭셔리 제품의 소비를 견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할리우드 스타나 유럽의 정상급 모델들이 했던 역할을 이제는 한류 아이돌 스타들이 맡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류의 힘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2024년 4~5월 국내에서 방영됐던 ‘선재 업고 튀어’는 배우 변우석이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16부작 드라마다. 예전에는 국내에서 방영됐던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수출 등을 통해 외국에 알려지기 마련이었는데 이제는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국내와 동시에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게 된다. 전통적인 국제경영에서 가르쳤던 국제화 경로, 즉 국내에서 인기를 얻은 브랜드가 그 우위를 배경으로 외국으로 순차적으로 진출하는 모델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인기를 끈 변우석은 화장품, 아웃도어, 가구, 식품, 패션 등 20여 개에 달하는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특히 전 세계에 7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인 국내 업체 교촌치킨은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모델로 변우석을 기용했다. 한류의 부상은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배우가 국내와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서도 일약 동시에 스타로 등극하는 현상을 가져왔다.
태생적 국제화 기업의 경쟁력국내에서의 성공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이 동시에 이뤄지는 현상은 한류 드라마의 세계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일반적인 기업은 설립과 동시에 글로벌 기업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기업을 태생적 국제화 기업(born-global company)이라고 한다. 글로벌 플랫폼의 발달로 판매 시장은 통합됐고, 넷플릭스 등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외국의 라이프스타일 등에 대한 친숙함은 상승했고, 외국 기업 상품에 대한 문화적 저항은 줄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어느 기업이 의류를 제작해 판매한다고 해 보자. 1980년대에는 국내에서 국내 정서에 맞는 제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성공하게 되면 그다음에 일본이나 남미나 미국으로 시장을 넓혀 가는 것이 국제경영의 모델이었다. 소위 점진적 진출의 과정(internationalization)을 단계적으로 밟아 나가는 것이다. 또는 처음에는 수출을 하다가 현지에 연락소를 설치하고 다음으로 지사를 설치하는 지배구조 결정(internalization)에 대해 고민했다. 물론 이러한 국제경영의 모델은 지금도 유효하고 창업을 하는 기업인들이 숙지해야 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21세기에 창업하는 야심 찬 창업자들은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왜냐하면 국내 판매 방식과 외국 판매 방식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손쉬운 방식으로 세계 어느 곳이든 상품을 배송할 수 있다. 10여 년 전 국내 쇼핑몰에서 3000원짜리 호미를 팔았던 영주대장간은 운임료로만 제품 가격보다 훨씬 더 비싼 1만8000원을 지불하고도 제품을 사는 고객들이 미국 아마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원예 수요가 많은 미국에서 기존의 괭이나 갈퀴보다 훨씬 효과적인 호미를 선호했던 것이다. 그 후 저가의 중국산 호미가 많이 등장했지만 그보다 세 배쯤 비싼 3만 원 정도 하는 영주대장간 호미가 여전히 지속적으로 판매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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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영주대장간 호미는 우연과 행운이 결합된 결과물일 수도 있다. 아무리 태생적 글로벌 기업이라 할지라도 외국에 알려지지 않으면 판매가 이뤄질 수 없다. 그런데 한류의 부상으로 인해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는 막대한 잠재적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 K-컬처를 내포한 음악, 드라마, 영화, 뷰티, 음식 등 다양한 장르의 K-콘텐츠는 우리 기업이 선보이는 제품과 서비스가 결합해 독특한 인지도를 창출했다. 이것은 태생적 국제화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주목과 관심을 충족한다. 이 역시 문화의 힘이다. 소위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의 핵심 요건을 한류에 기반한 문화예술경영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이다.요약과 시사점이전 호에서 설명했던 기업의 헤리티지, 마케팅, 조직 역량과 관련된 문화예술경영의 접근법은 외국 현지에서의 친근함이 매우 중요한 국제경영 분야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한류의 부상으로 우리 기업들은 국제 무대에서 한국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문화예술경영 접근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기회를 갖게 됐다.
이런 잠재적 기회들이 쉽게 주어지고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란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아서 시류에 따라 민감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류의 움직임만 봐도 우리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전파하기보다는 외국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한류 아이돌 그룹이 전원 외국인으로 구성되거나 한국 가수가 영어 가사로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중요한 한류의 특성으로 간주될 정도다. 이제 우리 기업이 외국에서 펼치는 문화예술경영도 현지 사정에 맞는 혼종과 파격의 독특성을 과감하게 펼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문화적 감수성을 갖춘 문화예술경영 전문가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