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민 기자 [email protected]
경쟁 제품을 연구하는 시간에 소비자의 관심을 연구해라
“한국 경제는 이제 제조업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제품 혁신에만 얽매이지 말고 프로세스나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 특히 경영의 혁신을 중요하게 여기는게 좋습니다.”
피터 드러커, 토머스 프리드먼과 함께 ‘세계 3대 경영 석학’으로 불리는 토머스 데이븐포트(Tho -mas H. Davenport) 미국 밥슨 칼리지(Babson College) 경영대 교수가 한국 경제에 던진 메시지다. 그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제조업에 비해 낙후된 한국 서비스업의 발전을 위해 ‘관심 경제학’을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했다.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출신인 데이븐포트 교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관심의 경제학(The Attention Economy)’의 저자다. 사회 현상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을 경영학과 접목시켜 세계적 학자로 거듭난 인물.
‘관심의 경제학’은 엄청난 과잉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시장에서 기업의 성공은 어떻게 소비자의 ‘관심’을 끄느냐에 달려있으며 이것이 바로 경영자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한국 경제 발전 위해 제조업에 관심 경제 적극 도입해야
데이븐포트 교수는 “한국이 제조업 위주의 경제 구조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서비스업 위주 경제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적으로 제품 제조 기술의 평준화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관심’이라는 점에서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선진국 기업이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비자 관심을 깊이 연구하고 이를 매출과 연결하는 전략이 있었다”며 “한국 제조업도 이와 같은 전략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은 일반적으로 혁신을 이야기할 때 제품의 혁신만을 중요시합니다. 하지만 선진국 기업들은 접근 방법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노키아와 같은 선진 IT 기업이 한국의 경쟁업체에 대해 연구를 한다고 합시다. 그들은 제품 자체보다 제품 생산의 배경인 한국의 IT 문화나 10대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둘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 기업들도 서비스 리더십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는 한국 기업의 경직된 조직 문화가 근로자 개인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국 근로자들은 매우 똑똑하고 호기심이 충만하며 근로 의욕도 높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서열을 중시하는 풍토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업 구성원들의 영어 구사 능력이 뒤떨어지고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적은 것 역시 문제입니다.”
한편 데이븐포트 교수는 일각에서 한국 경제의 발전 동력으로 인수합병(M&A)을 거론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M&A에는 항상 실패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세계 M&A의 70%가 성공적이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한국 경제만의 장점을 살리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한국은 인터넷 및 휴대전화 사용 인구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지식근로자의 수준도 높습니다. 이런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고, 뛰어난 기술을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는 “몇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의 소비자 관심 확보 능력이 많이 향상됐다”고도 평가했다.
인간의 뇌 구조는 집중에 적합 정보 과잉은 정보 습격과 동일
데이븐포트 교수는 그의 저서를 통해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시간이 돈’이 아니라 ‘관심이 돈’이라는 점을 거듭 주장해왔다. 특히 ‘관심의 경제학’에서는 “지식경제학은 지식의 양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며 “오히려 너무 많은 지식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핵심 업무에 대한 몰입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보의 양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인간의 관심은 희박해지고 관심을 붙잡기 위한 정보들 간의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는 “영국의 한 대학 조사에서 여러 IT 기기를 가지고 동시에 다양한 작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의 아이큐(IQ)가 정상인보다 10 가량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이는 인간의 뇌 구조가 멀티 태스킹(multi tasking)이 아니라 한 가지 일에의 집중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려준다”며 관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정보 과잉은 곧 정보의 습격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정보 과잉은 제한된 관심을 일 이외의 엉뚱한 곳으로 분산시키는 문제를 낳습니다. e메일이나 휴대전화가 우리의 관심을 시시각각 빼앗을 경우 어떤 일에 오래 매달릴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질 수밖에 없죠. 미국의 많은 회사들이 직원들의 e메일 사용을 제한하거나 휴일을 앞둔 금요일에 메일 사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