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건장한 체구를 가진 사람이라 도 혈액 순환이 멈추면 치명적 위기에 빠집니다. 기업의 혈액순환에 해당하는 게 바로 현금흐름입니다. 이를 관리하기 위한 정책과 프로세스,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최고재무책임자(CFO)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한국CFO협회로부터 ‘2008년 CFO 대상’을 받은 조석제 LG화학 부사장은 현금흐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조 부사장은 자회사 합병과 분사 등 재무적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또 유가와 환율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LG화학의 재무적 안정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 부사장으로부터 현금흐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현장 노하우를 들어봤다.
현금흐름 중시 경영이 왜 중요합니까
“경상이익이나 순이익 같은 회계 이익만 고려해 의사 결정을 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익을 늘리기 위해 재고 관리를 전혀 하지 않거나, 오히려 재고를 늘리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회계적으로 이익을 내더라도 실제 현금흐름은 마이너스가 됩니다. 이런 기업은 외부 여건이 악화되면 큰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에서 현금은 사람 몸의 피와 같습니다. 아무리 건장한 체구를 가졌다해도 피가 흐르지 않으면 우리 몸은 심각한 위험에 빠집니다. 성장성이 높은 회사도 현금 흐름을 소홀히 할 경우 유동성 위기에 빠져 흑자 도산할 수 있습니다.”
현금 중심 경영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현금흐름 중심의 경영을 위해서는 다음 3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회사의 ‘정책(policy)’을 적합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회계처리와 관련해 회사별 고유의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저희는 감가상각 기간을 최소화하고 연구개발(R&D) 예산도 최대한 빨리 비용으로 처리한다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회계 처리를 하면 해당 연도의 수익은 악화됩니다. 그러나 세금을 적게 낼 수 있고 회사의 장기적 성장에 매우 도움을 줍니다.
그 해 창출할 수 있는 현금흐름 범위 안에서 신규 투자를 한다는 원칙도 지켜가고 있습니다. 물론 곧바로 성과를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실무 부서에서는 이런 정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CFO는 각 사업부와 최고경영자(CEO)를 설득해 이 정책을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로 의사결정 프로세스 확립이 필요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자원을 투입하는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야 합니다. 초기 단계에서 재무 위험 등을 체계적으로 점검하면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별로 내부 투자위원회, 경영위원회, 이사회 가운데 어떤 단계에서 의사결정을 할지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들의 객관적 시각을 들어보는 기회도 갖는 게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저희 회사는 매달 운전자금 점검 회의를 합니다. 해외 근무자들까지 화상회의로 연결해서 매출채권이나 재고자산 현황을 아주 자세하게 점검합니다. 일선 사업부 직원들에게 현금흐름이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 기준이란 점을 반복적으로 인식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현금흐름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습니까
“저희는 내부적으로 창출한 현금흐름 범위에서 투자를 집행한다는 원칙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투자액이 현금흐름을 넘어설 경우 기업의 위험이 매우 높아집니다. 현금흐름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운전자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야 합니다. 매출채권과 매입채무 재고자산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의 자금 조달원도 다양화해야 합니다. 회사채 등 국내 자금조달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제 자본시장을 통한 해외채권 발행, 통화 스와프(swap)를 활용한 자금조달 등 다양한 경로를 찾아봐야 합니다. 실제 저희는 2008년 달러 및 엔화의 통화 스와프를 통해 2500억 원의 자금을 약 6%대 금리로 조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3년 만기 회사채 평균수익률보다 1%포인트 낮은 수준으로 자금을 조달해 이자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