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정적이 흐르고 있는 Y주식회사 영업부 사무실. 유부단 대리는 머리끝까지 치솟은 화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는 나만희 과장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우유부단하고 남의 눈치에 민감한 그는 화장실도 못 가고 계속 곁눈질 중이다. 그 와중에 강 부장은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나 과장이 자신에게 정식으로 문제 해결을 요청할까봐서다.
“흠흠… 회사 일에 네 일 내 일이 어디 있나? 서로 도와가면서 하는 거지. 저어기∼ 조아라 씨. 나 과장 지시에 따라서 다시 일 처리 하도록 해요.”
오늘의 주인공은 ‘조아라’ 사원. 매사에 위태위태하던 그녀가 드디어 사고를 쳤다. 나 과장이 맡긴 지난 분기 영업 실적 기초 자료 조사가 기대 이하였던 게 발단이었다.
“조아라 씨, 무슨 일을 이렇게 건성으로 하는 거야? 영업 실적 분석에 지역별, 성별, 연령별 분석 자료는 하나도 없잖아.”
“네? 무슨 말씀이세요? 전 시키시는 대로 했을 뿐인데요. 전 분기 매출 결과를 조사하라고 하셨지, 그런 식으로 세분화하라는 말씀은 안 하셨잖아요.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을 하시던가요.”
“아라 씨, 입사한 지 벌써 1년이 가까워오는데 그동안 우리 부서 보고서 본 적도 없어? 우리 보고서 기본 양식이 있잖아. 그런 당연한 것까지 일일이 얘기를 해줘야 하나? 퇴근 전까지 다시 해와!”
“그런데 저도 드릴 말씀이 있어요. 과장님은 왜 본인 일을 저한테 떠넘기시는 거죠?”
“뭐라고?”
“부장님이 과장님한테 시키신 일이잖아요. 제가 아니고요. 그런데 왜 저한테 시키시냐고요!”
“조아라 씨, 여기는 회사야. 회사를 학교 동아리로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건 그렇고, 나이도 어린 친구가 윗사람한테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건 대체 어디서 배웠어?”
“그만 됐습니다. 할게요. 과장님이 시키신 일, 하면 되잖아요. 할 테니깐 관련 자료나 좀 찾아주세요.”
이쯤 되자 할 말조차 잃은 나 과장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주체하지 못하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조아라 사원은 다른 직원들이 나 과장의 눈치를 살피는 동안 자리를 비웠다 잠시 전 들어왔다. 그녀는 퉁퉁 부은 눈으로 자신의 억울함과 분통함을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유 대리가 그녀에게 메신저로 말을 건다.
유부단 님의 말: 자료 찾는 거 혼자 하기 어려우면 내가 좀 도와줄까?
조아라 님의 말: 대리님이요? 풉∼
조아라 님의 말: 대리님 일이나 잘 챙기세요. 유 대리님이 다른 사람 걱정할 처지는 아니잖아요? 대체 누가 누굴 돕겠다는 건지∼∼
민망해하는 유 대리를 무신경하게 바라보던 그녀가 갑자기 밝은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조아라 님의 말: 일 주임님∼ 이번 주말에 뭐 하세요? 되게 재밌는 영화 개봉한다던데 *^^*
일만해 님의 말: 그래? 그럼 내가 예매할 테니 같이 볼까?
조아라 님의 말: 봐서요. ^^;; 그런데… 과장님이 시킨 일,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어요. ㅠㅠ 주임님이 쬐끔만 도와주심 안 될까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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