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처럼 뜨거운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은 베스트셀러도 아마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만 700만 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산되는 이 책 덕분에 출판 시장에 별도의 경제경영 분야가 최초로 생겼을 만큼 그 반향은 매우 컸다. 저자 중 한 명인 톰 피터스는 일약 경영학 대가(guru)의 반열에 올랐으며, 그 후 수많은 저서와 강연으로 경영 혁신 분야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 책은 성공 기업의 사례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경영의 보편적인 원리를 찾는 후학들의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82년 초판이 출간된 지 거의 30년이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새삼 경영자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기업을 바라보는 저자들의 접근방법이 지극히 이단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시 학계나 업계가 신봉했던, 아니 어쩌면 지금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합리주의 분석모델의 한계를 과감하게 지적했다는 점이다. 사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레드릭 테일러가 1911년 <과학적 관리의 원칙(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이라는 고전을 출간한 이후 경영자들은 소위 과학적 분석에 기반을 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철칙으로 믿고 있었다.
테일러는 생산현장에 만연했던 태업과 주먹구구식 관리방식의 문제점을 파악한 후, 작업자들의 단순 체험이나 직관에 의존한 방식을 대신해 모든 작업에 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할 것을 역설했다. 테일러 이후 ‘경영의 과학화’, 즉 기업 경영을 과학적으로 하면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은 현대 경영의 원형으로 정립됐다. 이후 기업 경영자들은 합리주의적 분석에 입각해서 기업 활동을 계량화하는데 몰두했다. 적어도 미국에서 경영자란 일체의 감정이 배제된 합리주의로 치장한 냉혈한으로 인식됐다. 즉, 정보를 엄밀히 분석해서 객관화시키는데 치중함으로써 수치화된 정보가 없으면 어떠한 의사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했던 것이다.
“경영에 대한 수치 및 정량적 지표, 즉 합리주의적 접근방법은 경영대학원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다. 소위 전문경영자는 스스로의 감정을 억제하고 객관적, 분석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과서대로 적절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길로 접어든 기업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1970년대 발생한 두 번의 석유파동과 이에 따른 미국 경제의 불황, 일본 기업의 승승장구는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더 이상 분석적이고 계량적인 모델만으로는 기업 경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이 때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 바로 이러한 경영학자와 경영자들의 문제의식에 새로운 지평을 제공했던 셈이다.
실제 이 책에서 저자들이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미국의 43개 초우량 기업들은 이미 냉철한 합리주의적 접근방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탁월함(excellence)을 갖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중요시됐던 전략과 구조, 시스템 외에 공유가치, 스타일, 문화, 사람 등을 파악해야 초우량 기업들의 성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들은 “경영의 본질은 그동안 경영학석사(MBA) 과정에서 수없이 강조됐던 전략, 구조, 시스템 등 하드(hard)한 것보다는, 계량화할 수 없어 소홀히 다루었던 공유가치, 스타일, 문화, 사람 등 소프트(soft)한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초우량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8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이러한 저자들의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실행을 중요시한다. △고객에게 밀착한다. △자율성과 기업가 정신이 투철하다. △사람을 통해 생산성을 높인다. △가치에 근거해서 실천한다. △핵심 사업에 집중한다. △단순한 조직과 작은 본사를 지향한다. △엄격함과 온건함을 동시에 지닌다. 이 중에서 전략과 조직 구조 측면에서 시사점을 주는 ‘핵심 사업에 집중한다’와 ‘단순한 조직과 작은 본사를 지향한다’를 제외한 나머지 6개 항목은 당시만 해도 학계나 업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소프트한 이슈들이었다.
“초우량 기업은 평범한 기업이 하지 않고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기업도 하고 있는 일을 탁월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초우량 기업과 평범한 기업의 격차는 종이 한 장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실제 저자들이 제시한 8가지 특징들을 빠짐없이 알고 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초우량 기업들은 평범한 기업에 비해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에 있어 매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는 바를 실천하는 바로 그 단순한 차이가 결과적으로 엄청난 성과 차이를 가져오는 셈이다. 초우량 기업들은 조직 전체의 몰입을 유도해 이미 알고 있는 바를 제대로 실행하려고 노력한다. 초우량 기업들은 제품과 서비스, 고객을 가식적인 태도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 자세를 취한다. 특히 유연한 대응, 품질혁신, 고객 서비스, 일상화된 혁신 등의 과제는 모든 구성원들이 몰입하지 않으면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난제들이다. 예컨대 혁신적인 품질수준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먹고, 자고, 숨 쉬는 것처럼 모든 계층에 걸쳐 품질 의식이 체질화돼야 한다. 동시에 품질에 대한 집요한 노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기업이 성장하면 개인보다는 시스템이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3M, P&G, IBM, 인텔 등은 거대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작은 조직이 움직이는 것처럼 기업가정신과 자율성이 넘치는 조직을 지향하고 있다. 개인은 조직에 기여한다고 생각하고, 조직도 개인의 역할을 인정해준다. 그렇다고 이들이 시스템이나 조직의 역할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을 무시한 조직과 시스템 때문에 기업이 관료화됐을 때의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개인이 편하게 숨 쉴 수 있고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을 구축하고자 했다.
초우량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현장을 강조한다. 탁월함이 최종적으로 실현되는 곳은 현장이다. 고객을 만나는 접점에 있는 판매원과, 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 생산 현장에서 품질과 씨름하는 근로자들이 바로 탁월함을 실천하는 주체들이다. 탁월함이 진정으로 기업 경영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현장이 권한을 갖는 분권화된 경영 방식이 필요하다. 비대한 조직 구조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는 기업의 반응을 지연시킬 뿐이다. 조직 구조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작은 조직은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보다 원활한 협력 작업이 가능하다. 명령 하달식의 계층 구조가 없기 때문에 보다 신속하게 대응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저자들이 제기했던 초우량 기업의 특징들이 오늘날 출간되는 경영서들에서도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작 경영서들을 많이 접한 독자라면, 실행에 집중하라, 고객을 중시하라,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라, 사람이 경쟁력이다, 관료주의를 타파하라 등 어디선가 읽어본 듯한 내용이라는 점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이는 1980년대 초 저자들이 현장 연구와 사례 조사를 통해 제기한 문제들이 지금까지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