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경영학이 본격적으로 학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경영학은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학문이자 현대인의 필수 교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영학 100년의 역사에서 길이 남을 고전들과 그 속에 담겨있는 저자들의 통찰력은 무엇인지 가톨릭대 경영학부 이동현 교수가 ‘경영고전읽기’에서 전해드립니다.
경영의 구루라 불리는 하멜(Gary Hamel) 교수와 프라할라드(C.K. Prahalad) 교수가 1994년 출간한 <미래를 위한 경쟁(Competing for the Future)>은 1980년대 서구 경영자들의 고민을 고스란히 담은 경영 전략 분야의 역작이다. 1970년대 두 차례 석유 파동 이후 세계 경제는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이를 기회로 삼은 일본 기업들의 적극적인 공세로 서구 기업들은 국내외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저자들은 당시 서구 경영자들이 몰두했던 사업구조조정(restructuring)과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의 명백한 한계를 지적했다. GE(제너럴 일렉트릭)만 보더라도, 잭 웰치가 CEO로 취임한 1981년 이후 약 5년 동안 대규모 구조조정과 인원 감축을 했다. GE의 종업원 수는 1980년 41만 명 수준에서 1985년 30만 명 이하로 급감했다. 서구의 다른 기업들도 석유 파동 이후 악화된 원가구조를 개선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업을 정리하는 데 매달렸다.
저자들은 리엔지니어링도 경쟁력 강화를 위한 궁극적인 해답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1980년대는 도요타, 소니로 대표되는 일본 기업들의 승승장구 덕분에 일본식 경영기법들이 확산되는 시기였다. 기업들은 도요타 생산방식(TPS)이나 전사적 품질관리(TQM)와 같은 일본식 경영방식들을 앞 다투어 벤치마킹했다. 또 이를 서구 스타일로 재해석한 새로운 경영 기법들을 유행처럼 도입했다.
물론 사업구조조정이나 리엔지니어링이 회사를 더 작고 가볍게 만들거나, 각종 프로세스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만으로 기업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킬 수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충고였다. 이들은 산업 자체를 변화시키거나 기업 전략을 재창조하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시계 산업을 살펴보자. 시계 산업은 전통적으로 스위스 업체들이 산업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수정(quartz) 기술의 도입으로 시계 산업의 경쟁 구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일본 업체들이 집적 회로를 사용해 정확도를 유지하면서도 생산 원가를 파격적으로 낮춘 시계를 선보였다. 수정 기술의 개척자였지만, 자신들의 품질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스위스 업체들이 시장 기회를 간과한 사이, 세이코(Seiko), 시티즌(Citizen) 등 일본 기업들은 홍콩 등에 자동화된 대규모 생산 공장들을 건설하면서 시계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았다. 1983년 스위스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예전의 40%에서 15%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이런 상황에서 스위스 시계 산업을 다시 부활시킨 브랜드가 바로 스와치(Swatch)였다. 스와치는 저가 시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스위스 시계의 고급 이미지를 기반으로 저렴하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의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시계를 재탄생시켰다. 스와치 시계는 비록 고가의 명품은 아니었지만, 독특한 패션 감각으로 시간을 보는 저렴한 도구 이상의 이미지를 창출했다. 이들은 단순히 일본 업체들을 모방해 원가를 줄이거나 품질을 개선시킨 게 아니라, 저가 시계 산업 자체를 재창조한 것이다.
‘미래를 창조하고 싶다면 기업은 관행처럼 여겨왔던 오래된 산업의 규칙들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또 산업 간 경계를 다시 그려보는 작업도 필요하다. 아니면 애플처럼 완전히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새로운 전략 패러다임, 즉 현재의 시장 지위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스스로 창조하기 위한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저자들이 주장한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이들은 당시 전략 학계를 지배했던 결정론적인 시각에 반기를 들었다. 1980년대 주류 전략 학자들은 경쟁을 잘 정의된 산업 경계 내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간주했다. 기업들은 공격과 반격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게임에서 점점 줄어드는 이윤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러나 저자들이 관심을 기울였던 부분은 눈에 보이는 제품 경쟁에서의 리더십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역량 경쟁에서의 리더십이었다. 이들은 정작 중요한 것은 경쟁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을 위치(position)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기 위한 핵심역량이라고 역설했다. 이 핵심역량은 1990년대 전략 이론을 대표하는 핵심 개념이 됐다.
기업 자체를 제품을 생산하는 사업부의 집합이 아니라, 핵심역량의 집합으로 인식하는 관점은 서구 경영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사실 전략 이론에서 강·약점 분석이나 핵심성공요인(KSF) 분석 등은 이미 오래된 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역량 개념이 경영자들의 주목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이 개념이 일본이나 한국 등 후발주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미 자동차, 반도체, 철강, 가전 등 다양한 산업에서 서구 기업들은 일본과 한국 기업들에 추격당하고 있었다. 이들 산업 대부분은 엄청난 설비 투자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산업이었고, 일본과 한국 기업들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선두업체들과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따라서 서구 기업들은 자신의 선도적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장이나 설비와 같은 유형자산 중심의 투자 게임보다는 특허 기술이나 브랜드와 같은 무형자산 중심의 역량 개발 게임을 벌이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기업이 보유한 역량 중에서 핵심역량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희소성이나 모방가능성임을 감안할 때, 유형자산보다는 무형자산이 모방하거나 축적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이해한 것이다. 게다가 무형자산을 축적하는 데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 공장과 설비는 단기간에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 수준까지 끌어 올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기술이나 브랜드는 아무리 많은 자금을 투자해도 단기간에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보유한 핵심역량 중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는 핵심역량을 찾는 것은 기업에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샤프(Sharp)는 전자계산기 사업을 하면서 액정 기술의 잠재력을 인식했고, 그 후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액정표시장치(LCD) 기술이 활용되는 제품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델 컴퓨터는 처음에 별 볼 일 없는 기업이었지만, 자신이 보유한 직접 주문, 직접 판매 역량이 빛을 발하면서 선발업체인 IBM과 컴팩을 PC 산업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핵심역량을 구축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이때 일관성이란 구축해야 할 핵심역량에 대한 조직 차원의 공감대를 의미한다.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역량 개발이 개별 사업부 단위로 쪼개져서 이뤄지기 때문에 새로운 핵심역량을 구축하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또 역량 개발을 책임지는 최고경영진의 안정성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저자들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주어진 자원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략을 강조했다. 저자들은 이 책을 출간하기 전 1989년 <하버드 비즈니스리뷰> ‘전략적 의지(Strategic Intent)’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저자들은 전략적 의지를 전 조직구성원이 공유하고 있으며 상당기간 지속되는 집념으로 정의하고, 전략적 의지가 핵심역량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평범한 건설 중장비 업체에 불과했던 고마츠(Komatsu)는 선도업체였던 캐터필러(Caterpillar)를 이기겠다는 전략적 의지 하에, 단계적이고 지속적인 역량 확보를 통해 캐터필러를 따라잡았다. 캐논은 정밀기계, 광학, 전자기술 등 소수의 핵심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이를 카메라, 복사기, 팩스 등 다양한 제품군에 반복적으로 활용해 선도업체인 제록스를 이길 수 있었다. 미래를 위한 경쟁에서 승자들은 대부분 자원을 많이 가진 기업이 아니라 인내력을 가진 기업이었다.
저자들의 충고와 달리 대부분의 경우 경영이 지향하는 초점이 미래를 창조하기보다 과거를 고수하고 연장시키는 데 맞춰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래를 위한 경쟁이라는 책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음미해봐야 할 시점이다.
게리 하멜 교수와 C.K. 프라할라드 교수는 <미래를 위한 경쟁>에서 핵심역량(core competency)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기업을 제품을 생산하는 사업부의 집합이 아니라, 핵심역량의 집합으로 인식하는 관점이다. 기업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시키려면 산업 자체를 변화시키거나 기업 전략을 재창조하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현재의 시장 지위를 고수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스스로 창조해야 하며, 눈에 보이는 제품 경쟁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역량 경쟁에서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또 경쟁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을 위치(position)시키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야 한다. 또 저자들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자원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략을 강조했다. 이는 전략적 의지(strategic intent)를 전 조직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으며 상당 기간 지속되는 집념으로 핵심 역량을 구축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로 연구 활동을 벌였다. <MBA 명강의>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경영학 지식을 다양한 조직에 확산하는 일에 역량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