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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배운 기업가정신의 요체

김도형 | 79호 (2011년 4월 Issue 2)
 
편집자주 DBR이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명문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애플, 구글, 페이스북, 스타벅스, 자라, 유니클로. 각기 다른 영역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세계적인 회사들이다. MS, 인텔, 애플은 뛰어난 기술 수준과 높은 수익성을 자랑한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제조시설 하나 없이 수백조 원에 달하는 기업 가치를 창출했다. 스타벅스, 자라, 유니클로는 십여 년 전만 해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소비재 산업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한때는 영세한 벤처회사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이 회사의 창업자들은 어떻게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발전 시켰을까. 필자는 지난 학기에 ‘Discovering Entrepreneurship Opportunities(DEO)’라는 과목을 수강하며 창업자들의 성공 비결과 기업가정신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가졌다.
 
연습에 가까운 수업
한국어로 ‘사업 기회 발견하기’로 번역할 수 있는 DEO는 LBS 1학년 학생이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과목이다. 이 수업은 창업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이론, 사례, 실제 적용이 잘 조합된 입체적인 수업 방식 때문이다.
 
수업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우선 창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기 위해 다양한 창업 사례를 케이스 스터디 방식으로 공부한다. 케이스 스터디에서는 지역, 산업, 규모에 관계없이 다양한 회사의 사례를 다룬다. 애니메이션 회사, 온라인 티셔츠 맞춤회사, 요양병원 운영회사 등 흔히 접하지 못한 생소한 기업들도 다수 포함된다. 물론 구글, 애플, MS 같은 유명한 회사도 등장한다.
 
두 번째 단계는 창업자들의 초청 강연이다. 케이스 스터디에서 다룬 회사들의 창업자나 주요 임원이 LBS를 방문해 자신들의 경험담을 얘기한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살아있는 지식과 통찰을 얻는다. 여러 초청자 중 필자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독일에서 온 루카스(Lukasz Gadowski)라는 청년 사업가였다. 그는 불과 20대 후반의 나이에 10여 개의 회사를 차린 창업 전문가였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창업을 시작했다. 초기에 창업한 회사들은 대부분 망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가장 큰 자산이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시도해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창업한 회사들은 대기업들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준이지만, 창업 과정 자체를 즐기는 그의 열정과 도전정신은 대기업 임원들로부터 듣는 강연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대기업 임원들의 강연은 대부분 거대한 조직을 어떻게 이끄는가에 초점을 맞춘 반면, 그의 강연에선 좌충우돌했던 한 평범한 젊은이의 성장기를 들을 수 있어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단계이자 DEO의 백미는 학생들이 직접 창업 계획을 시연하고 이를 평가받는 트레이드 쇼(Trade Show)다. 이 과목을 수강하는 모든 학생들은 6∼7명으로 팀을 구성한다. 팀별로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창업 계획을 세워 학기 말에 발표한다. 이 투자안은 LBS 동문으로 구성된 투자그룹으로부터 엄정한 심사를 받는다. 실제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는 창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작년 Trade Show 에 참가했던 한 팀은 벤처투자 회사로부터 적지 않은 투자금을 유치해 올해 초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아이디어보다 실행이 중요
이 수업을 통해 필자가 얻은 중요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업 기회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은 대단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있어야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공 사례는 전혀 그렇지 않다. 새로운 사업 기회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게 아니라 현실에 관한 새로운 시각과 관찰을 통해 발견될 때가 많다. 즉 기존에 존재했던 일상의 불편함, 이미 개발된 기술, 친숙한 사업모델 등을 기반으로 여기에 새로운 시각을 가미해 탄생할 때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뜻이다.
 
대표적 예가 컨테이너 박스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선박으로 운송되는 상품은 작은 자루나 통에 담겨 있었다. 때문에 항구의 하역 직원들이 이를 직접 싣고 내려야만 했다. 거대한 배에 실린 수많은 형태의 물품들을 일일이 손으로 내리고 실었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겠는가. 하지만 그 때는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1956년 미국의 트럭 운반업체 운영자인 맬컴 맥린(Malcom McLean)이 기존 방식의 비효율성과 불편함을 발견하고 네모난 철판상자, 즉 컨테이너 박스를 도입했다. 이는 세계 운송 역사를 뒤흔든 역사적 발견이었다. 얼핏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철판상자의 도입으로 세계 운송산업의 규모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항구에서 내륙으로의 육상 운송 방식도 크게 달라졌고, 세계 주요 항구 간 경쟁 판도도 달라졌다.
 
한물간 서커스 공연을 혁신해 세계 공연계의 판도를 바꿔놓은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나 최근 iPad보다 판매 속도가 빠르다는 MS의 KINECT도 기존 사업 모델이나 기술(3D Printing, 1989년 MIT 개발)을 활용해 성공한 사례다.
 
둘째, 사업 아이디어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를 현실화하는 실행이 훨씬 중요하다. 창업을 주저하는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사업을 다른 사람이 이미 하고 있다는 이유를 든다. 하지만 누가 그 아이디어를 먼저 생각해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건 누가 그 아이디어를 먼저 실행해 고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다.
 
구글 이전에도 인터넷 검색 회사는 상당수 존재했고, 스타벅스 이전에도 커피 판매점은 많았다. 페이스북 역시 소셜 미디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들고 나온 회사가 아니다. 기존 아이디어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실행했기에 지금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셋째, 새로운 회사가 태어나고 성장하려면 창업을 위한 자양분, 즉 기업을 둘러싼 생태환경(Eco-System)이 잘 갖춰져야 한다. 창업에 유리한 생태환경은 크게 4가지다. 창업 자본을 확보하기가 용이하고, 창업자들 사이의 교류가 활발하며, 질 높은 경영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고, 공공 정책이 친 기업적이어야 한다.
 
최근 실리콘밸리를 다녀온 필자는 미국 서부의 불모지였던 실리콘밸리가 세계 IT 업계의 메카로 거듭난 이유가 이 4가지 자양분을 잘 갖췄기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를 주름잡는 구글과 애플도 실리콘밸리의 풍요로운 생태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성장 속도가 훨씬 느렸거나 아예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DEO 수업은 필자에게 무거운 질문 하나를 남겼다. 바로 한국의 기업가 정신에 관한 문제다. 지나치게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국가 경제 구조, 실패에 대한 관용이 부족한 창업 환경, 안정적이고 편한 일자리만을 찾는 젊은이들. 게다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중국과 인도 등을 감안하면 한국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기업가정신입니다. 진정한 기업가정신은 구멍가게라도 만들어서 일자리를 나누고 같이 열정적으로 사는 일입니다.” 얼마 전 공익광고에서 방영된 안철수 교수의 한 마디가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김도형 런던비즈니스스쿨(LBS) Class of 2012 [email protected]
 
필자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컨설팅회사 올리버 와이만(Oliver Wyman)에서 근무했다.
 
런던비즈니스스쿨(LBS)은 세계의 금융 허브인 런던에 위치한 학교답게 금융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다. 핵심 역량 이론의 창시자인 개리 해멀(Gary Hamel), 돈 설 (Don Sull) 등 경영 전략 분야의 석학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LBS의 MBA 과정은 영국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가 선정한 글로벌 MBA 랭킹에서 최근 3년간 1위를 차지했다. 매년 70여 국가에서 온 400 명의 학생이 입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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