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인문 고전 강독
편집자주
21세기 초경쟁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DBR은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코너를 통해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사상과 지혜의 뿌리가 된 인문학 분야의 고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관심을 끌던 한류가 점차 지역을 넓히더니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프랑스에서는 한국 아이돌 가수의 공연 입장권이 10분 만에 매진되자 추가 공연을 요청하는 플래시몹(flash mob) 시위가 이어졌다. 아이돌의 춤과 노래를 부르며 시위하는 현장은 우리를 놀라게 했고 보도진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담겨 있었다. 한국의 대중가요가 예술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에서 그곳의 젊은이들에 의해 불리는 모습은 우리를 달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현상은 프랑스뿐 아니라 남미와 러시아에까지 이어지고 있고 몇몇의 나라에서는 K-POP 경연대회까지 열리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대중가요를 부르고 춤을 추었으며 태극기가 그려진 옷을 입는가 하면 가수 이름을 연호하며 ‘사랑해요’를 외치기도 했다.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가 이제 대중가요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음악은 세계를 이어주는 만국 공통어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음악은 통한다. 음악은 기쁨과 슬픔, 사랑과 그리움, 간절함과 원망, 자기성찰과 분노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토로할 수 있고 그것은 언어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같은 감정을 갖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그것은 신(神)까지 움직인다. 모든 종교가 음악으로 신을 찬양하고 신에게 아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공자 역시 음악을 매우 중시했다. 그는 순임금의 음악인 소(韶)를 들으며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을 정도로 심취했고(三月不知肉味) 음악을 바르게 하여 혼란스러운 정치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43살 때 쿠데타가 일어나자 벼슬에서 물러나 시·서·예·약(詩書禮樂)을 정비했고 천하를 주유(周遊)하고 모국으로 돌아온 68세 이후에도 서전(書傳)과 예기(禮記)뿐 아니라 시(詩)를 정리했고 음악을 바로잡았다. 조정에서 쓰는 음악인 아(雅)와 제사음악인 송(頌)이 때와 장소에 맞게 연주되도록 한 것이다. 춘추시대였던 당시는 세상의 모든 질서가 무너져 어지러웠고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임금도 신하도 부모도 자식도 마찬가지였다. 힘의 논리에 따라 자리가 매겨지는 하극상(下剋上)의 시대였기에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인 오륜(五倫)이 파괴돼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친구 등 모든 인간관계가 제자리를 잃었다. 공자는 이러한 사회를 치유하는 길은 인간의 본마음인 인(仁)을 회복하는 것이라 여겼고 그를 위해 초상집 개 같다는 비웃음을 들으면서도 천하를 다녔으며 경전을 정리하고 제자를 길렀다. 그 가운데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 음악이었다. 음악이 본마음인 인(仁)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이 인하지 못하면 예를 어떻게 하겠으며 음악을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공자의 말씀은 인간관계의 질서이며 문명의 징표인 예와 조화의 상징인 악을 할 수 있는 근간이 바로 인(仁)임을 말해준다. 즉 인할 때 예와 악을 할 수 있고, 예와 악을 통해 인간의 본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고 봤다. 그것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질서 잡힌 세상을 이룰 수 있는 길이다. 이것이 공자의 꿈이고 공자가 실현하고자 한 세상이다. 공자는 음악을 통해 이러한 세상의 길을 놓고자 했다.
맹자 또한 음악을 왕도(王道)를 행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이라고 말한다.
어느 날 제(齊)나라 선왕(宣王)의 신하인 장포(莊暴)가 맹자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왕을 뵈니 왕께서 제게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제가 대답하지 못했는데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어떤지요?”
그러자 맹자는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제나라는 거의 다스려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음 날 맹자는 선왕을 만나 장포에게서 들은 말로 질문을 던졌다.
“제가 장포에게서 들었는데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선왕이 낯빛이 변하며 말했다.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과인이 좋아하는 음악은 선왕(先王)의 음악이 아니라 세속(世俗)의 음악입니다.”
“지금의 음악이 옛날의 음악과 같고, 세속의 음악이 선왕의 음악과 같으니, 왕께서 진정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제나라는 충분히 다스려질 수 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충분히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맹자. 맹자의 그 무모한 자신감과 배짱은 어디서 나온 것이며 음악과 정치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맹자는 세속의 음악일지라도 백성과 함께 즐긴다면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임금이 음악을 즐겼을 때 백성들이 이마를 찌푸리고 인상 쓰는 이유는 왕이 백성과 함께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왕이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고 백성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한다면 백성들 또한 왕의 즐거움에 동참한다는 것을 전제로 그는 선왕에게 백성과 함께 즐길 것을 요구했다.
맹자의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은 왕도정치의 중심사상이다. 음악뿐 아니라 돈과 이성, 용(勇)을 좋아한다는 선왕을 일단 긍정한 맹자는 다만 그 모든 것을 백성과 함께 즐길 것을 요구했다. 음악과 돈과 이성과 용을 좋아하는 마음을 넓혀 백성들의 마음과 씀씀이를 넉넉하게 하고, 혼기를 놓친 백성이 없게 하며, 한 번 화내어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한다면 그들을 감동시키고 마음을 얻어 나라가 저절로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행복정치, 감동정치, 인의 정치, 열린 정치다. 맹자는 음악을 통해 이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혼자만의 즐거움이 아닌 백성과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그들의 마음을 열고 마음을 모을 때 먼저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며 조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
한류가 일으키는 바람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무대 위에서, 광장에서 노래하는 모습은 혼자 즐기는 노래와는 달랐다. 그들은 함께 불렀고 함께 움직였다. 마치 전염된 듯 광장을 가득 메웠고 그들을 하나 되게 만들었다. 그것은 잠깐 스쳐가는 바람이거나 갑자기 불었다 사라지는 돌풍이 될 수도 있지만 새 물결로 세계를 물들일 수도 있다.
‘1:29:300’의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은 하나의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29가지의 미세하지만 유사한 사고가 일어나고 300가지의 사고를 일으킬 작은 조짐이 이미 있었음을 체계화한 것이다. 이는 사고에 관한 법칙이지만 한류에도 적용된다. 비록 소수지만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대중가요를 부르고 춤을 추며 흥겨워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이 현상은 분명 어떤 큰 움직임을 위한 조짐일 것이다. 아니 조짐이 돼야 한다.
동지(冬至)를 의미하는 주역의 복괘(復卦)는 ‘돌아온다, 회복한다’는 뜻을 가진 괘로 다섯 개의 음효(陰爻) 아래에 한 개의 양효(陽爻)가 있는 모습이다. 가장 추운 동지에 가장 밑에서 생겨난 양은 미미하지만 서서히 자신의 세를 넓히고 추위를 몰아내고 여름이 된다. 이처럼 작은 기미가 패러다임을 바꾸는 큰일을 하는 것이다.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가 함께 부르고 춤추는 대중가요로 영역을 넓히면서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관심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문화와 정서, 역사와 학문, 산업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으로 확대된다면 이는 하나의 트렌드가 될 것이고 혼자가 아닌 함께 즐기는 모습이 세계의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정과 따뜻한 마음을 담은 음악이 점차 영역을 넓혀서 세계에 전달된다면 갈등과 상처로 얼룩진 세계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한류가 그 조짐을 보이고 있다.
권경자 철학박사 [email protected]
필자는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유교철학·예악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명지대, 조선교육문화센터 등에서 강의 중이며 성균관대에서 2년 연속 우수 강사상을 받았다. 저서로 <유학, 경영에 답하다> <내 인생을 바꾸는 5분 생각> <한국철학사전(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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