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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도전이 창의를 낳는다. 버마 정글 뚫은 英 침투부대 ‘친디트’

임용한 | 111호 (2012년 8월 Issue 2)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윙게이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버마 정글에서 원거리 침투작전 부대친디트를 창설한 영국군 대령이다. 그는 영국, 인도, 구르카족 혼성부대를 편성, 살인적인 정글 적응 훈련을 시켰다. 모기가 득실대는 정글 속에 병사들을 맨몸으로 내몰았을 정도였다. 친디트는 두 달간 교량과 철도를 파괴하고 일본군 부대를 기습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고생과 희생에 비해 전과는 보잘것없었다는 평도 받는다. 윙게이트의 가혹한 훈련과 새로운 전술은 적의 장점을 단점으로 바꾸는 화학적 변화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친디트가 연합군도 정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일본군 사령부는 기존 수비전술로 버티기는 불가능하다고 성급하게 판단했다. 그들은 공세로 전환했고 정글을 가로질러 영국군을 공격하는 무리수(임팔 공세)를 뒀다. 결국 일본군은 이 전투에서 병력의 절반을 잃는 참극을 맞았고 버마 방어선도 붕괴했다.

 

모든 전쟁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을 요구한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극한의 지형에서도 전투는 벌어진다. 전쟁마다 악명 높은 전쟁터가 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버마전선 역시 인간한계를 시험하는 전장이었다.

 

포기 직전의 버마전선

오지 중의 오지였던 버마(현 미얀마)의 전략적 가치는 중국이었다. 일본과 싸우고 있는 장제스(蔣介石)의 중화민국에 연합군이 물자를 지원할 수 있는 통로는 인도-버마 루트뿐이었다. 일본군도 이를 알고 버마를 점령해서 루트를 차단했다. 일본군은 버마의 정글과 산악을 방패삼아 철벽 방어선을 구축했다.

 

버마 정글은 가혹했다. 칼날 같은 풀과 나뭇잎은 군복도 찢었다. 정글은 하도 빽빽해서 하루에 800m를 겨우 전진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원시림의 바닥은 수십만 년간 썩은 부식토와 유해가스 덩어리였다. 그 부식토에는 가죽 군화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기후는 건기와 우기가 있는데 우기에는 비가 매일 오고 건기에는 비가 2∼3일에 한번씩 왔다. 비가 오면 부식토는 썩은 진흙탕이 된다. 거머리, 흡혈파리, 모기가 우글거렸다. 상처와 부식토가 만나면 온갖 병과 기생충이 인체를 파고들었다.

 

정글로는 들어갈 수 없었던 영국군은 산악지대를 따라 공격했다. 일본군은 좁은 산길과 능선에 덫과 방어선을 구축하고 영국군을 요격했다. 일본군은 사기도 높고 정글 적응력도 좋았다. 병사들은 죽을 때까지 진지를 고수했고 명령이 떨어지면 정글 행군도 끄떡없이 해냈다. 지형, 사기, 훈련 모든 면에서 일본군이 우세했다. 버마에서 일본군을 몰아내려면 10배의 병력을 가지고도 모자랐다.

 

그러나 연합군은 버마까지 보낼 병력이 부족했다. 보급물자도 문제였다. 종이 한 장도 미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호주, 인도, 파키스탄을 거쳐 버마로 보내야 했다. 소모되는 물자보다 운송비용이 몇 배로 들었다. 그러니 병력을 증원해도 보급품 조달이 가능할 지가 의문이었다. 연합군은 곤경에 빠졌다. 버마 전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었다.

 

기인(奇人) 윙게이트

그때 한 명의 영국군 대령이 아프리카 전선에서 버마로 날아왔다. 오드 윙게이트는 잘 생기고 학자풍의 외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실제로 언어학자였고 성경과 고전을 달달 외웠다. 윙게이트는 영국군을 통틀어 최고의 괴짜였다. 상관에게 대들기 일쑤였고 명령도 잘 듣지 않았다. 고집은 굉장해서 자기주장을 펼 때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상대가 지칠 때까지 우겼다.

 

이런 성격 못지않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그의 기행이었다. 정글에서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책을 끼고 다니며 언어학과 철학에 대해 밑도 끝도 없이 토론을 했다. 대화할 사람이 없으면 혼자 밤새도록 중얼거리기도 했다.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면 꼭 성경구절을 인용하곤 했다. 그렇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지만 누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알람시계가 울리면 바로 이야기를 끊었다. 그 알람시계는 팔에 가죽 끈으로 매단 자명종이었다.

 

더럽고 지저분하기란 말로 할 수 없었다. 목욕은 거의 하지 않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솔로 때를 밀었다. 때를 미는 것은 동양의 목욕법으로 서양에서는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모르는 게 다행이었다. 동양인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먹은 것이 올라왔을 거다. 하지만 서양인조차 구토를 느낄 순간도 있었다. 그는 차를 끓인 뒤에 양말로 걸러서 내놓기도 했다.

 

그의 기행은 괴짜 수준을 넘어 정신적인 불안을 의심할 수준이었다. 버마로 오기 전,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게릴라전으로 독일군을 몰아내고 에티오피아 왕가를 복위시키는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정당한 포상을 받지 못하자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는 기행으로 전쟁이 주는 긴장을 해소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전쟁이 주는 특별한 긴장감과 위기감이 그의 불안정한 정신을 붙들어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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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용한

    임용한[email protected]

    - (현)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의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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