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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Interview 비제이 고빈다라잔 교수

역혁신 원한다면 방금 화성에 착륙했다고 가정하라

김선우 | 137호 (2013년 9월 Issue 2)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세준(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최윤영(Assumption대 국제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비제이 고빈다라잔(Vijay Govindarajan) 다트머스대 터크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의리버스 이노베이션(역혁신)’은 지금까지의 혁신에 관한 선진국 중심의 생각을 180도 바꿔놓은 이론이다. 역혁신은 미래의 기회는 선진국 시장이 아니라 신흥개발국 시장에 있으며 신흥개발국에서 이뤄진 혁신, 즉 역혁신이 결국 선진국 시장으로 역류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고빈다라잔 교수는 선진국에서 개발한 제품을 가격이나 성능을 낮춰 신흥시장에 내놓지 말고 신흥개발국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현지에서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올해 1월 말 롯데 전 계열사의 팀장급 직원 2000여 명은 고빈다라잔 교수의 책 <리버스 이노베이션(Reverse Innovation)>을 선물로 받았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원서로 이 책을 먼저 읽어본 뒤 아시아 시장 공략에 주력하고 있는 롯데에 시사점이 많은 내용이라고 생각해 임직원들에게 추천한 것이다. 신 회장은 책을 사서 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8월 고빈다라잔 교수를 직접 초청해 롯데 임직원들 앞에서 강연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고빈다라잔 교수는 길지 않은 23일간의 방한 일정 동안 2번에 걸쳐 롯데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혁신과 전략에 대한 강연을 했다. 1990년대에 한국을 딱 한 번 방문한 이후 롯데그룹 강연을 위해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고빈다라잔 교수를 826일 만났다.

 

당신은 대표적인 전략과 혁신 전문가다. 전략은 무엇이고 혁신은 무엇인가?

 

전략은 미래의 리더십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다. 미래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다르게 말하면 바로 혁신이다. 그리고 혁신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새롭고 다른 것을 하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전략=미래의 리더십=변화에 적응=혁신이다. 그러므로 전략은 곧 혁신이다.

 

기업경영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단어 중 하나가 혁신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혁신은 말한 바와 같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변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모든 혁신은 이 적응의 과정에 해당한다. 어떤 산업들은 다른 산업들보다 빠르게 변하지만 변화가 없는 산업은 없다. 그러므로 혁신은 절대 없어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아마 기업들 중에는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 모르는 기업도 있겠지만 혁신 없이는 생존할 수가 없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역혁신이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기업들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혁신을 한 후 제품을 인도와 같이 가난한 나라로 들여와서 팔았다. 역혁신이란 이러한 과정을 완전히 반대로 하는 것이다. 가난한 국가에서 혁신을 한 뒤 선진국으로 제품을 가져가 판매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혁신이 시사하는 바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역혁신은 기업들이향후 수십 년간 걸쳐 가장 큰 기회는 비소비 계층을 소비 계층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회를 잡기를 원한다면 근본적으로 혁신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혁신에 대한 정의는 더더욱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적게 쓰면서 혁신을 이뤄야 한다. 혁신이라는 것은 들어가는 비용 대비 가치이고, 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 가격은 극적으로 낮추면서 높은 질과 극대화된 성능 및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역혁신을 이루면 세계적인 문제인 불균형을 줄일 수 있다.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역량과 기술을 이용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기업들에 이러한 역량, 기술, 인력을 활용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불균형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역혁신의 핵심이다.

 

 

비제이 고빈다라잔(Vijay Govindarajan)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전략과 혁신 전문가다. 인도에서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해 인도 기업에 취직한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을 택한 건 우연히 읽은 한 권의 책 덕분이었다. 고빈다라잔 교수는 자신이 기술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회계학을 인간의 행동에 건설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이라고 주장한 로버트 앤서니(Robert Anthony)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책을 읽은 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해 학자의 길을 걸었다. ‘역혁신(Reverse Innovation)’ 개념으로 2011년 영향력 있는 경영 대가 50(Thinkers 50) 3위에 올랐으며 GE의 전속 교수 겸 최고 혁신 컨설턴트를 지냈다. 저서로는 <리버스 이노베이션> <퍼펙트 이노베이션> <늙은 코끼리를 구하는 10가지 방법> <스텔라는 어떻게 농장을 구했을까> 등이 있다. 새 책 <혁신하려면 실행하라> 9월 출간됐다.

 

비용만 낮추면 역혁신이라고 할 수 있나?

 

역혁신이라는 것은 단순히 비용만 낮추는 것은 아니다. 고품질의 서비스를 굉장히 낮은 비용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 훨씬 더 많은 것을 더 적은 것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빈곤국의 비소비 계층이 요구하는 질은 선진국의 부유한 소비계층이 요구하는 질보다도 훨씬 더 높기도 하다. 의족의 예가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의족 구매자는 잘 포장된 도로를 걷게 될 것이다. 하지만 태국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비포장 도로를 접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의족은 손상되기 쉽다. 또 태국은 미국과는 달리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주로 바닥에 주저앉아 일을 한다. 또한 태국 국민의 9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의족을 착용한 채로 농사 일을 해야 하는데 젖어 있는 논에서 의족을 착용하고 활동하기는 매우 불편할 것이다. 더불어 태국 사람들은 단순히 자전거를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보지 않고 생계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 나무를 타야 하는 일도 많기 때문에 의족을 하고 나무를 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태국에서의 의족은 2만 달러에 이르는 선진국의 의족보다 훨씬 더 높은 질을 요구한다. 그러나 30달러 이하의 가격으로 이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비용 대비 높은 질을 제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가 실현해야 할 역혁신의 본질이다.

 

혁신은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합해서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역혁신을 실행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

역혁신을 실행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실행이 핵심이다. 혁신은 그냥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실제로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혁신은 가난한 나라에서 혁신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들에는 그런 국가들에 자원을 배치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서 혁신을 시작한다고 하면 아프리카에 제조, 마케팅 등의 기능들을 배치해야 한다.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예를 들어 미국 회사는 미국 땅에 앉아서 아프리카에서의 혁신을 주도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혁신은 되지 않는다. 실행의 가장 중요한 사항은 혁신하고자 하는 국가에 어떻게 자원을 배치시키느냐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아프리카에서 혁신을 이뤄내고 싶다면 거기에 R&D 기능을 만들고 현지인들을 채용해야 한다. 최고경영자들 또한 그곳에 가서 현지의 이슈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의 자원에 있다. 그리고 의사결정도 현지에서 이뤄져야 한다. 미국 같은 곳에서 온 전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해외 지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외의 많은 이유로도 기업들이 의사결정권을 내려놓기는 매우 힘들 것 같다.

 

통제력을 내려놓는 것과 결정의 대리권을 주는 것은 다르다. 결정권한을 부여하면서도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지금 당장 기존의 결정권자가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지 않을 뿐이다.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은 의사결정 구조가 중앙 집중화돼 있다. 결정권한을 넘겨주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언제나 통제력을 잃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한다. 하지만 요지는 의사결정과정을 현지화시키고도 현지 의사결정자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이 있을 것 같다.

 

어떤 혁신의 실행이든 전담팀이 필요하다. 신흥국가에서 혁신을 진행할 것이라면 신흥국에 혁신팀을 만들어야 한다. <리버스 이노베이션>에서는 이를 로컬성장팀이라고 불렀다. 로컬성장팀은 소규모 다기능 조직으로 모든 경영기능을 갖추고 전략을 수립하고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는 폭넓은 권한을 갖고 있다. 로컬성장팀을 만들 때는 세 가지 원칙이 있는데 우선 조직을 신생 기업을 창립하는 것과 같이 백지 상태에서 설계해야 한다. , 신흥시장의 니즈를 이해하는 사람과 신흥시장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이뤄져야 한다. 둘째, 로컬성장팀은 글로벌 조직과 연결돼 있어서 전체 조직의 자원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로컬성장팀은 통제된 실험을 실시해야만 한다. 통제된 실험, 작은 실패들을 통해 알지 못하는 것을 빨리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로컬성장팀이 한 곳에서 성공했다면 다음 단계의 혁신을 통해 로컬성장팀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GE의 초음파 기기 사업은 방사선과, 순환기내과, 산부인과의 3개 세그먼트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중국 시장을 겨냥한 소형 초음파기기 개발을 시작했을 때 GE는 기존 3개 조직이 신규 사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GE는 소형 초음파기기 개발업무를 독자적으로 맡는 팀(로컬성장팀)을 중국 우시에 만들었다. 이 팀은 제품개발, 공급사슬, 제조, 마케팅, 판매, AS까지 모든 것을 갖췄다. 이 팀은 현지 시장 상황에 정통한 인재를 채용했고 글로벌 경쟁 기업인 지멘스나 필립스에서 직원을 고용하는 대신 중국 경쟁업체인 민드레이에서 인재를 유치했다.

 

<리버스 이노베이션>에 보면 신흥시장에서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방금 화성에 착륙했다고 가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썼다.

선진 시장에서 성공을 누렸던 기업들이 성공방식을 내려놓고 신흥시장에서 백지 상태로 다시 시작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미국에서 성공하면 그 성공 자체가 문제를 만들어버리는 거다. 미국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했던 일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겸손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겸손하지 않다면 신흥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새로운 방법들, 접근법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겸손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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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우

    김선우[email protected]

    경영 칼럼니스트

    필자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인문 지리학을 전공했고 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12년 동안 동아일보와 DBR에서 기자로 일했다. 미국워싱턴주에 거주하면서 네이버 비즈니스판, IT전문 매체 아웃스탠딩 등에 미국 IT 기업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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