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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에서 배우는 경영

속 빈 갈대, 약해 보이지만 애벌레 적응력 막는 ‘반전 전략’의 고수

서광원 | 164호 (2014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인문학

갈대는 생명력이 강하다. 하지만 자연은 갈대의 번성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칠성밤나방의 애벌레는 갈대들이 쑥쑥 자라기 시작하는 봄, 칼날 같은 잎이 생겨나기 전에 얼른 줄기 속으로 들어가 연한 속살을 야금야금 먹는다. 갈대는 이 애벌레들의 약탈을 묵묵히 참는다. 하지만 너무 심하다 싶으면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줄기의 굵기를 7㎜ 이하로 줄인다. 애벌레들이 살기 어렵게 공간을 좁히는 것이다. 하지만 2∼3년 뒤 갈대는 줄기 크기를 다시 원상태로 돌린다. 애벌레들이 살길을 찾아 좁아진 공간에 적응하지 못하도록 아예 봉쇄하려는 조치다. 원상태 복귀는 적응력에 또 다른 불확실성을 선사하는 고차원적 전략이다. 내 패를 상대에게 읽히지 않으면서 상대의 패를 읽어야 하는 건 포커나 고스톱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프로젝트일수록 예상대로 안 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세상은 어려움을 참작해주지 않는다. 잘했다, 못했다는 구설수에서부터 자리를 내놓으라는 은근한 압력까지 별의별 말들이 횡행한다. 누가 맡아도 마찬가지일 텐데 어디서나 이런 일이 끊이질 않는 건 반사이익을 노리는 경쟁심리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미국에서 구원투수 역할을 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도 이런 상황이 닥쳤다. 지금은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이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뉴딜정책은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을 완성시키기 위해 재선을 준비했지만 야당인 공화당은 바로 이 점을 물고 늘어졌다. 뉴딜정책은 필요하지만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는 건 사람(루스벨트) 탓이므로 사람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대공황에 신음하던 민심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여론조사는 공화당으로 기울어졌다. 루스벨트는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했을까? 흥미롭게도 루스벨트가 구사한 전략은 자연에도 있다. 아니, 어쩌면 자연에서 먼저 검증된 것일 게다.

 

갈대의 차별화 생존 전략

얼마 전 남녘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데 차창에 가득한 가을을 만날 수 있었다.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산들과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들녘, 그리고 강둑이나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흐르는 흰 눈…. 눈부시게 빛나는 가을 들녘에 웬 눈 같은 게 흐를까 싶었는데 햇빛을 반사하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이었다. (산에서 보는갈대는 억새다. 갈대는 물 근처의 모래땅에서 살고, 억새는 물억새도 있지만 보통 산에 서식한다.) 어디서나 갈대를 볼 수 있다는 건 생태학적으로 보통 일이 아니다. 강한 생명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갈대는 어떻게 이런 강한 생명력을 얻었을까?

 

세상을 살아가는 힘, 생명력은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는 세상의 거친 풍파를 견디고 이겨내는 힘을 만들어내는 데서 시작한다. 어떤 생명체는 사라지는 것보다 더 많은 후손을 만들어내는 전략으로, 어떤 생명체는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 풍파를 이겨낸다. 갈대는 후자의 전략을 통해 근거를 마련하고 전자의 전략으로 확산한다.

 

우리는 초식동물을 평화로운 이미지, 약자의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지만 갈대를 비롯한 식물들에게 초식동물은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무차별적으로 뜯어먹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식물들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고 몇몇 정도가 화석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살길은 어디서 나오는가? 획기적인 혁신에서 나온다. 식물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0만 년 전 모래 속에 들어 있는 규소 성분인 실리카를 흡수해 날카로운 잎을 만들어냈다. 칼날 같은 무기로 다가오는 동물들의 살갗을 피투성이로 만드는 것이다. 갈대는 아예 모래땅을 서식지로 선택하면서 살짝 스치기만 해도 피부를 베는 더 예리한 잎을 장착했다.

 

혁신은 또 다른 혁신을 불러온다. 초식동물도 먹고살아야 하니 대응책을 개발해야 한다. 더 든든한 이빨과 단단한 살갗으로 무장하자 식물도 질 수 없어 초식동물들의 이빨을 빨리 닳게 하는 쪽으로 전략을 강화했다. 공진화다. 더불어 초식동물과 곤충 애벌레들이 소화시킬 수 없는 털들로 잎사귀와 줄기를 덮어버렸다. 여기서 더 나아간 선인장은 자기만의 독특한 가시를 만들어냈다. 선인장 가시에 찔려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살짝 스치기만 해도 박혀서 잘 빠지지 않는다. 끝이 낚시 바늘처럼 갈고리 모양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아카시아 가시들은 박히면 부러져버린다. 빼내지 못하게 해서뼈아픈고통을 좀 더 오랫동안 주기 위해서다.

 

물론 갈대와 같은 식물들이 자라는 데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주변 식물들과 빛을 차지하려는 경쟁 또한 생사를 좌우한다. 갈대는 이 문제를 스피드로 돌파했다. 봄이 오면 하루에 무려 10㎝나 자라는 초기 집중 전략으로 하늘 높이 쑥쑥 올라가며 빛을 장악한 다음, 뿌리를 옆으로 옆으로 뻗어 주변 영역까지 장악한다. 우리가 보는 갈대들이 드문드문 혼자서 서 있지 않고갈대밭을 이루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들 이외에는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매년 30% 이상 영역을 늘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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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광원[email protected]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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