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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Strategy

친절한 환영에 다가서다 보면…중국인의 그물전략, 그 달콤한 유혹

이병우 | 185호 (2015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중국인이 사용하는 소위그물 전략은 오랜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둔다. 가부장제도와 공동체 생활에 익숙한 그들은 상대방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인 후 상대방과 충분히 친해졌다고 판단될 때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원하는 일을 추진한다. 이 같은 그물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서 진심으로 상대방과 친밀해지기 위한 그물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에게 받을 만큼만 베풀었다가 금방 거둬버리는 그물도 있다. 이는 주는 만큼 받아야 한다는인지상정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대체로 얼굴이 무척 두껍다. 얼굴이 두껍다는 것은 이익 앞에서 수시로 자기의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대방이 아무리 자기의 제안을 거절해도 집요하게 접근해서 마침내 목적을 달성하려는 근성도 포함된다. 우리가 잘 아는 소설 <삼국지>를 보면 다양한 얼굴들이 등장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일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삼국지를 보면 중국 사람들의 얼굴 두꺼움은 가히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와 조조, 손권은 각 자가 촉, , 오국의 황제가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역경을 겪었다.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고비마다 그들이 선택한 승부수는 역시 얼굴을 두껍게 하고 어제의 적과 동침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은 위와 촉이 연합하고, 어떤 때는 촉과 오가 동맹을 맺는다. 서로가 연합하고 동맹이 되는 이유는 아주 자명하다. 자기를 지키려는 의도다. 상대를 위해 동맹을 맺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 상대를 설득하고 회유해서 동맹을 맺는 것이다.

 

이럴 때 중국 사람들은 모든 자존심과 허세를 다 내려놓고 상대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얼굴을 두껍게 하고 찾아가서 언제 당신과 원수지간이었냐는 듯 거침없이 아첨을 하고, 뇌물을 주고, 구걸을 한다. 중국인들의 장점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때론 우리에게 무서운 그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가서 빠지는 함정이 바로 이런 종류의 그물이다. 우리는 방문자 입장에서 중국인들의 접대를 받는다. 그들이 베푸는 향연은 표면적으로는 그야말로 정성이 지극하다. 칭찬과 친절에 쉽게 감동하는 정 많은 한국인들은 이 시점부터 그들의 그물에 빠지기 쉽다.

 

중국인의 그물이란 무엇인가

 

먼저그물()’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그물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중국 사회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필자는 오랜 중국 생활 속에서 중국 사람들이 사업 관계를 맺거나 대인 관계를 관리할 때 그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행태를 발견했다. 중국에서 오랜 시간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모 기업 법인장도 어느 글에서 비슷한 표현을 썼는데, 그는 그물 대신우리(屋里)’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토끼우리는 토끼를 가둬 놓고 기르는 장치를, 가두리양식장은 물고기를 그물에 가둬 기르는 곳을 말한다. 그물이든, 우리든 결국 원하는 대상을 자신의 영역에 가두고 가둔 주체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중국인의 그물 전략은 상대방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인 후 본격적으로 원하는 일을 추진한다는 의미다. 그물이라는 도구는 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지, 일단 잡았다가 다시 놓아주기 위한 것이 아니며 더구나 어부가 치는 그물은 생업을 위해 고기를 잡아 이익을 얻기 위해 치는 도구다. 일단 고기가 그물에 걸리면 여간해서는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반면 그물을 친 입장에서는 그물에 걸린 고기를 손에 들어오게 하는 일이 아주 쉽다.

 

또한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는 작업은 혼자 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협동해야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 노를 젓는 사람, 그물을 던지는 사람, 수선하는 사람, 고기를 다듬어 저장하는 사람, 고기와 그물을 정리하는 사람, 고기를 파는 사람 등 각자 맡은 역할을 잘할 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중국인의 그물 전략도 이와 비슷하다. 많은 사람이 동원된다. 정부 관계자, 사업 파트너, 실무 책임자, 운전사, 술 잘 마시는 친구, 노래 잘하는 사람, 관광을 안내하는 사람 등 각 분야 사람들이 동원된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한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단계별로 착착 진행되기 마련이다.

 

중국인의 그물 문화

 

필자 개인의 경험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중국인들의 접근 방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이 공통적인 수법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행동의 바탕에 유구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농경사회로 5000년의 역사를 이어 온 나라다. 농경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가부장제도 아래 가족 중심의 사회를 이룬다는 것이다. 가족은 친척을 형성하고, 친척은 친족으로 발전한다. 이런 관계들이 모여 마을 공동체가 형성된다. 황제가 바뀌고 왕조가 멸망해도 가족과 친척, 나아가 우리 공동체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대상이다.

 

중국인은 이 같은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상거래나 인간관계를 맺어 왔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계약보다 신의와 의리가 중요하다. 만약 작은 이익을 탐내다가 체면이 손상되는 일이 생기면 마을 공동체에서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는 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중국 사람들이 목숨보다도 체면을 중시하는 습성은 여기서 비롯됐다. 서로 믿는 관계가 아니면 아예 거래를 시도하지 않는다. 설사 그런 경우가 생기더라도 중국 사람들은 중간에 서로를 잘 아는 사람을 반드시 개입시킨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것처럼 서로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일단 의심하고 보는 것이 중국인들의 습관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의 그물이라는 것은 원래 나쁜 의미가 아니다. 애당초 상대를 그물이나 가두리에 가둬 두려는 의도는 맞지만 좋지 않은 의도에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우리 공동체에 합류시키려는 작업이고, 이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유전자적 기질이자 습관이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과 사업을 하고 거래를 한다는 것은 중국 사람들의 전통적인 관념으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 만난 사람과 절대로 먼저 사업 얘기부터 하지 않는다. 밥 먹고 술 마시고 관광지에 데려가고, 또 밥 먹고 술 마시고 함께 놀러 다닌다. 몇날며칠을 그렇게 보낸다. 우리는 남이 아니고 친구라는 공동의 정신을 공유하자는 의사 표현이자 습관적 행동이다. “이제부터 너와 나는 남이 아니다. 한 공동체다.” 서로 부딪치는 술잔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외국인들이 중국에 가서 당하는 곤혹스러운 일의 원인 중 하나는 중국 사람들의 계약 관념일 것이다. 쉽게 말해 계약을 안 지킨다는 말이다. 화가 나기도 하고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왜 계약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지면 중국 사람들은, 이제 이 사람은 더 이상 나를 믿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한다. 중국 사람들은 계약을 언제든 상황에 맞게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우리는 이미 같은 공동체에 속한 친구이므로 서로 의논해 고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오랜 습관적 사고가 깔려 있다. 원래 중국인들은 계약서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 중심의 마을 공동체에서 어떤 거래를 한다는 것은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형성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계약서가 필요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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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우[email protected]

    KOTRA 수출전문 위원

    필자는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증권사 펀드매니저를 거쳐 대우금속 및 대우메탈에서 임원 및 CEO를 지냈다. 그 후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초청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시 정부 문화원과 ‘중국 중부지역 경제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현재 후베이성 상양에 위치한 국신광전실업유한공사 CEO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 <만만디의 중국 고수들과 싸울 준비는 했는가?> <한국인이 바라 본 중국(중국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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