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같은 장소를 여행하더라도 안정된 직장이 있으면 사업 아이디어를 거의 찾지 못하지만 퇴사를 준비하고 있거나 독립한 상황이라면 수많은 신사업 거리를 찾곤 합니다. 퇴사준비생의 시선에서 도쿄 여행을 하며 찾아낸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동진 대표의 인사이트를 소개합니다. 이 원고는 저서 <퇴사준비생의 도쿄(더 퀘스트, 2017)>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미슐랭 스타 셰프의 음식을 고급 레스토랑의 절반 이하의 가격에.”
일본의 인기 레스토랑인 ‘오레노’ 식당 시리즈의 콘셉트다. 오레노는 고급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내놓기 위해 회전율에 집중했다. 테이블 좌석을 하루 평균 2.5회 이상 채울 수 있다면 가격을 낮춰 식재료 원가율이 68%까지 높아져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오레노는 서서 먹는 방식을 택했다. 레스토랑에 더 많은 손님을 받고 식사시간을 단축시키려는 목적이었다.
미슐랭 스타 셰프가 만든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먹기 위해 손님들이 줄을 섰다. 16평의 신바시 본점 매장은 월 매출 1910만 엔(약 2억1000만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미슐랭 스타 셰프를 전면에 내세운 오레노 식당의 핵심 성공 요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리스크 요인으로 바뀌었다.
2011년 첫 출점 후 30개 이상의 매장을 내며 승승장구하던 오레노는 최근 3개 지점을 폐점했다. 심지어 신바시 본점도 문을 닫았다.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잇단 이탈 때문이었다. 상징성을 가진 본점의 문을 닫게 할 만큼 마스터 셰프들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오레노의 성공에 득이 된 셰프들의 명성은 도리어 ‘독’이 됐다.
오레노 사례처럼 요식업에서 요리사는 성공 요인이기도 하지만 위험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요리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요식업을 할 수는 없을까? 통조림만으로 감각적인 선술집을 만든 ‘미스터 칸소(Mr.Kanso)’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캔을 따는 것으로 충분한 미스터 칸소미스터 칸소는 150종 이상의 통조림을 안주 삼아 술을 즐길 수 있는 바(Bar)다. 인기 통조림부터 특이한 통조림까지 전 세계에서 공수한 통조림 셀렉션을 갖추고 있다. 가격대는 200엔에서 2000엔까지 다양하다. 술은 맥주, 위스키 등 잔에 담아내기만 하면 되는 종류가 주를 이룬다.
미스터 칸소의 시작은 간소했다. 현재 4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는 미스터 칸소는 2002년 오사카 미나미 호리에 지역 다리 밑 쓸모없는 공간을 활용해 첫 매장을 열었다. 방치된 공간에서 탄생된, 조리가 필요 없는 통조림을 안주로 삼은 만든 선술집. 15년여 전에 현재의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의 개념을 오프라인 매장에 적용한 듯한 선구안적 지혜가 돋보인다. 이름도 미스터 칸소로 지어 간소함을 강조한다. 이름, 시작, 콘셉트가 모두 간소하지만 미스터 칸소의 간소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투자, 운영, 고객까지 간소함으로 이어진다.
#1. 투자가 간소하다매장의 크기와 위치는 요식업에 있어 중요한 고려요소다. 고정비용인 임대료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스터 칸소는 8평만 확보하면 매장을 열 수 있게 매장 크기를 최소화했다. 통조림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제공하기에 주방이 필요 없었고, 통조림을 진열대에 쌓아두고 판매하기에 별도의 보관 장소가 없어도 괜찮았다. 손님 받을 공간만 있으면 되는 셈이다. 또한 동네 손님들을 타깃으로 하기에 비교적 외진 공간에 매장을 열 수 있었다. 덕분에 임대료가 저렴해졌다.
임대료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인테리어 등의 초기 투자비다. 미스터 칸소는 통조림과 어울리는 인테리어를 지향하기 때문에 초기 투자에 대한 부담도 적었다. 테이블도 드럼통으로 구성하고 판매를 위한 포스터 외에는 별다른 게 없을 정도로 외벽 장식도 소박하다. 통조림 안주를 내놓는다는 콘셉트 덕분에 위스키를 판매하면서도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300만 엔(약 3300만 원)으로 매장을 열 수 있을 만큼 초기 투자비가 간소하다.
#2. 운영이 간소하다미스터 칸소에는 주방장이 필요 없다. 캔을 딸 수 있다면 누구나 운영 가능하다. 통조림은 유통기한이 길어 식재료 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도 된다. 게다가 운영시간도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로, 한 사람이 일 8시간 근무하면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최소한의 능력과 최소한의 인원으로 요식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직원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줄어들었다.
다만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는 영역이 재고 관리다. 150∼350종류에 이르는 통조림을 좁은 공간의 매대에 쌓아두고 판매하다 보니 일일이 가격을 표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미스터 칸소에서는 통조림을 가격에 따라 10개의 등급으로 구분해 색깔을 정하고, 통조림 바닥에 색깔별 스티커를 붙였다. 손님들이 통조림을 고르다가 다른 곳에 두거나, 쌓아둔 통조림이 무너져 제멋대로 쌓아놓더라도 통조림 바닥에 붙어 있는 스티커 색깔만 보면 가격을 알 수 있다. 재고 관리에서도 ‘간소함’을 추구한다.
#3. 고객이 간소하다‘초이노미(ちょい飲み).’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현상이다. 초이노미는 ‘잠깐’이라는 뜻을 가진 속어 ‘초이(ちょい)’와 ‘마시다’를 의미하는 ‘노미(飲み)’의 합성어로 ‘가볍게 한잔한다’는 걸 말한다. 규동 전문 체인점 ‘요시노야’가 2013년 가볍게 한잔하며 즐길 수 있는 메뉴 ‘요시노미’를 론칭하며 유행하기 시작해 새로운 음주문화로 자리 잡았다.
합리적 가격에 가볍게 음주를 즐기는 문화는 미스터 칸소가 오픈 초기부터 추구했던 것이다. 통조림을 안주로 먹으면서 불편한 좌석에서 장시간 머물며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긴 어렵다. 퇴근길에 가볍게 즐기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 미스터 칸소다. 그래서 다른 술집에 비해 손님들의 과음으로 인한 부작용도 덜하고 회전율도 상대적으로 높다. 고객 역시 간소한 덕분이다.
캔을 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미스터 칸소미스터 칸소의 경우 투자, 운영, 고객이 간소한 만큼 운영하기 쉽고 리스크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큰 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사업일 수 있다. 그래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미스터 칸소는 통조림과 관련된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2011년부터 자체 브랜드 제품(PB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자체 브랜드 제품 개발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보통 자체 브랜드 제품을 해당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것과는 달리 미스터 칸소는 자체 브랜드 제품을 미스터 칸소 매장에서뿐만 아니라 마트나 백화점, 온라인에서도 판매한다. 매장이라는 틀을 깨고 나가 간소함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다. 사업 운영의 간소함을 유지하면서도 자체 브랜드 제품을 강화해 성장을 추구하고 있는 미스터 칸소. 간소하니까 미스터 칸소다.
이동진 트래블코드 대표
[email protected]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올리버와이만과 CJ E&M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여행의 가치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여행콘텐츠 기획사 트래블코드를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퇴사준비생의 도쿄>를 공동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