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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준비생의 도쿄

반값 렌터카 ‘니코니코’의 비밀

이동진 | 235호 (2017년 10월 Issue 2)


일본에서는 코인 주차장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코인 주차장은 빌딩 숲 사이, 주택가 골목 등의 자투리땅을 임대해 무인 정산기와 자동 걸림 장치만 설치한 주차장이다. 자투리땅을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모자라 없던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필컴퍼니(PhilCompany)’는 코인 주차장 위에 공중 점포를 올린다.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상상력이다. 힙 한 카페, 레스토랑 등 상업시설은 물론이고 주택도 짓는다. 이 새로운 공간에서 거두는 임대 수익은 투자 대비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점포 설립 비용만 추가로 부담하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점포 방문객의 기본 수요가 생기니 코인 주차장의 수익도 덩달아 안정화된다.

없던 공간을 만든다고 필컴퍼니처럼 허공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눈길 닿는 곳곳에 허공 같은 공간이 있다. 필컴퍼니가 코인 주차장에 관심을 가졌다면 ‘니코니코렌터카’는 주유소에 주목했다. 운행 반경을 고려해 널따랗게 조성한 주유소 부지는 차가 자주 드나들긴 해도 대부분 비어 있다. 니코니코렌터카는 쓸모없는 땅의 쓸모를 찾아서 렌터카 사업을 새롭게 펼쳤다.

 

반값 렌터카의 포문을 열다

니코니코렌터카에서는 2525엔(약 2만5500원)에 소형차를 12시간 동안 빌릴 수 있다. 주요 렌터카 업체, 심지어 카셰어링 업체의 반값 이하다. 파격적인 가격을 무기로 2008년 출범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했다. 2016년 기준 영업소는 1400개로, 업계 1위 도요타 렌터카의 영업소 1200개를 훌쩍 넘는다.

렌터카는 부지, 차량, 정비시설, 인력 등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그래서 필요 자산을 갖추고 있고,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모기업과 시너지가 있을 때 저가 렌터카 업체를 운영하기에 유리하다. 중고차 딜러인 카벨과 플라티, 코인 주차장을 운영하는 타임스 등이 기존 보유 자산을 활용해 렌터카 사업을 하는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니코니코렌터카는 경쟁사들과 달리 모기업의 지원 없이도 자본 비용을 부담하고 가격까지 반값으로 낮췄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1. 돈 ‘받고’ 빌려 쓰는 부지. 니코니코렌터카는 렌터카 부지를 매입하지 않는다. 대신 부지를 이미 가지고 있는 업자들을 가맹점으로 모집한다. 렌터카를 위한 전용 부지는 아니고, 본업을 영위하면서 남는 공간들이다. 가맹점의 80%를 차지하는 주유소뿐 아니라 중고차 판매 업체, 카센터 등 자동차 관련 업종, 그리고 서점, 대형마트, 비디오 대여점까지 있다. 큰 투자비용 없이 보유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고 본업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에 가맹 신청이 줄을 잇는다. 생활 밀접형 서비스다 보니 대개 접근성이 좋아 고객도 편리하다는 것은 덤이다.

더 재밌는 사실은 부지를 내주는 이들이 가맹비까지 낸다는 것이다. 대신 가맹점주는 보유 자산의 일부를 활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형태의 가맹점에 비해 초기 가맹비를 낮출 수 있고, 수익 배분 구조에서도 더 유리하다. 한편 니코니코렌터카는 임대료 등의 고정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또한 가맹 신청을 받기 때문에 적정 부지를 찾기 위한 인력을 많이 두지 않아도 된다.

#2. 차는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 고객의 최우선 조건이 가격인 니코니코렌터카에서 차는 이동수단으로서의 기능만 하면 된다. 그래서 중고차 중에서도 가격이 저렴할 수밖에 없는 연식 5년 이상의 비인기 차종을 매입한다. 여기에 각 영업소의 수요를 모아 본사가 대량 구매하기 때문에 매입가는 더 내려간다. 평균 20만 엔(약 202만 원) 수준이다.

부지와 마찬가지로 가맹점주가 이미 보유한 차량이 있다면 이 역시 활용할 수 있다. 장기 재고로 골치 아픈 중고차 매매 업체에 특히 인기다. 대형 중고차 판매 업체가 아닌 작은 업체들까지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것은 니코니코렌터카가 처음이다.

#3. 사람도 나눈다. 니코니코렌터카에서는 운영 인력도 직접 배치하지 않고 가맹점주의 기존 인력을 활용한다. 카운터 직원이어도 되고, 자동차 수리공이어도 된다. 약간의 교육만 거치면 될 정도로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가맹점주의 인력이 항상 바쁜 건 아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업무가 더해져 인력 생산성이 올라간다.

반대로 영업소 역시 니코니코렌터카의 본사 인력을 나눠 쓴다. 렌터카 사업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사고 처리, 교통 위반, 정산 등 각종 이슈 처리다. 그래서 니코니코렌터카는 이와 관련한 셰어드 서비스(Shared Service)를 1400개 영업소에 제공한다. 콜센터를 24시간 운영하며, 고객 이슈가 발생하면 사안을 넘겨받아 처리한다. 이 외에도 고객이 보험이나 내비게이션 등 옵션 선택을 인터넷 예약 시 모두 완료하게 해 가맹점의 부담을 덜어준다. 마케팅이나 이벤트 등 모객도 본사가 전담한다. 소규모 영업소가 어렵지 않게 렌터카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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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시간도 금이다

니코니코렌터카는 공간의 자투리만 활용하지 않았다. ‘시간’의 자투리를 활용해 비즈니스를 확장했다. 심야시간대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렌터카의 심야 패키지는 야근하는 이들을 위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통 크게’ 빌려준다. 렌터카 업체 입장에서는 심야에 차를 놀리는 것보다 빌려주는 게 이득이고, 고객 입장에서도 택시비가 비싸기 때문에 렌트를 하는 게 낫다.

방치된 시간을 활용한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조조 영화가 시작되기 전인 아침 시간대의 영화관이 한 예다. 토호시네마에서는 아침에 강좌나 명사 인터뷰 등 교육 영상을 상영해 아침잠을 아껴가며 자기계발을 하는 이들을 공략한다. 교육이 끝나면 스크린 앞, 통로 계단 등에서 명함을 교환하며 인맥을 형성하는 낯선 광경이 연출된다. 앞으로 퇴직자나 유아 대상으로도 확대할 예정이다.

점심, 저녁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식당 주방의 시간’도 멈춰 있다. 일본의 단체 도시락 업체 ‘스타페스티벌’은 일반 음식점과 제휴해 주방의 ‘쉬는 시간’을 활용한다. 음식점에서는 도시락을 만들고, 스타페스티벌은 주문부터 배달까지 요리 외 모든 프로세스를 담당한다. 덕분에 제휴 음식점의 주방 활용률이 평균 60% 이상 늘었다.

꼭 ‘불황의 시대’ ‘가격 파괴형 비즈니스’에서만 자투리를 활용하란 법은 없다. 없는 셈 치던 공간과 시간을 채울 수 있다면 세상에 없던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편집자주

같은 장소를 여행하더라도 안정된 직장이 있으면 사업 아이디어를 거의 찾지 못하지만 퇴사를 준비하고 있거나 독립한 상황이라면 수많은 신사업 거리를 찾곤 합니다. 퇴사준비생의 시선에서 도쿄 여행을 하며 찾아낸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동진 대표의 인사이트를 소개합니다. 이 원고는 저서 ‘퇴사준비생의 도쿄(더 퀘스트, 2017)’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이동진 트래블코드 대표 [email protected]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올리버와이만과 CJ E&M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여행의 가치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여행콘텐츠 기획사 트래블코드를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퇴사준비생의 도쿄’를 공동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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