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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Market Strategy

업계의 자율규제, 규제법안 통과 막아줘. 오늘의 CSR, 내일의 법과 산업표준으로

문정빈 | 243호 (2018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자율규제란 영미권에서 정부-기업 관계의 근간을 이뤄온 것으로 기업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동 행동을 취하는 행위 일반을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공공재의 사적 공급을 의미한다. 이는 의회에서 규제법안이 통과될 때 기업들이 협력해서 자신들에게 덜 불리하도록 법안을 세팅하는 과정에도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전술보다 훨씬 중요한 건 CSR 전략 차원에서의 자율규제다. 마이클 블룸버그가 뉴욕 시장을 하던 시절, 플라스틱 음식 용기 사용을 금지하는 조례가 제정되며 많은 유통업체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미 ‘친환경’을 모토로 분해가 쉬운 종이 용기만을 취급해왔던 홀푸드마켓은 이를 기회로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었다. 국정농단 사태와 김영란법 시행 이후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기업과 정부의 관계에서 자율규제 전략은 상당히 좋은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지난 1년여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대통령이 탄핵됐고,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관료들이 구속됐다. 여러 대기업 총수도 수사를 받거나 구속되는 등의 일을 겪었다. 이러한 사태의 핵심에는 전근대적인 정부-기업 관계가 자리 잡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결과 삼성그룹이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과거와 같은 대관업무를 중지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주요 기업들이 전경련을 탈퇴하는 등 지난 50년 이상 지속돼 온 정부-기업 관계가 근본적인 변화의 시기에 들어서게 됐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영미권에서 정부-기업 관계의 근간을 이뤄 온 자율규제(self-regulation)의 개념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 필요한 새로운 정부-기업 관계를 조망해 보고자 한다.

자율규제란 기업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동 행동을 취하는 행위 일반을 말하며, 이론적으로는 공공재의 사적 공급을 의미한다.1  잘 알려진 자율규제 사례로는 90년대 후반 나이키가 아동노동과 개발도상국에서의 저임금 노동 이슈로 곤란에 처했을 때 의류업체들의 조직인 공정노동연합(Fair Labor Association·FLA)에 가입해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향상을 약속했던 일, 미국 화학산업의 환경/안전/노동자 건강 측면의 향상을 위한 Responsible Care Program(RCP), 노동/반부패/친환경/인권 관련 국제협약인 UN 글로벌 콤팩트 등을 들 수 있다. 애플(Apple)의 경우 2010년 폭스콘(Foxconn)에서의 노동자 자살 사건을 계기로 매년 협력업체 책임 진전 보고서(Supplier Responsibility Progress Report)를 발간하며 협력업체들의 노동환경/안전, 인권 상황을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 또한 자율규제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율규제를 제정하고 시행하며 참가자들이 자율규제를 준수하는지 감시하는 데는 비용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업 입장에서 이를 실행할 때 얻을 수 있는 편익 또한 존재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자율규제가 정부의 강제적 규제의 대체재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호텔링 해변

자율규제가 갖는 장점에 대해 알아보려면 우선 ‘호텔링 해변’을 이해해야 한다. 북극 한파로 고생하는 2017∼2018년 겨울, 호주 골드코스트, 하와이 와이키키, LA 산타모니카 비치를 떠올리면서 잠시 한여름 해변에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보자. 수많은 피서객이 해변에 누워 있고, 당신은 그 틈에 아이스크림 트럭을 세워 놓고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다. 좌우로 길게 뻗은 모래사장에 당신과 경쟁자, 단 두 대의 아이스크림 트럭만이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면 아이스크림을 더 많이 팔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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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해 보이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1) 우선 수많은 피서객이 해변에 균일한 분포로 누워 있다는 소비자 선호의 분포에 대한 가정이 필요하고, 2) 다음으로는 피서객들이 원하는 것은 아이스크림 트럭까지의 거리를 최소화하는 것이라는 소비자의 목적함수에 대한 가정이 필요하다. 한여름 해변에서 아이스크림은 빨리 녹을 것이므로 이 가정은 상당히 합리적이다. 3) 또한 당신과 같은 아이스크림 상인은 매출을 극대화함으로써 시장점유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라는 공급자의 목적함수에 대한 가정이 필요하며, 4) 아이스크림 트럭들은 정해진 가격에 아이스크림을 팔 뿐 가격 경쟁을 하지 않으며, 5) 다른 경쟁자가 해변에 진입하는 일도 없다고 가정하자.

두 아이스크림 트럭의 위치를 A와 C라고 하고 당신이 A 위치에, 경쟁자가 C 위치에 자리해 있다고 하자. A보다 왼쪽에 위치한 피서객들은 모두 당신에게 와서 아이스크림을 살 것이고, C보다 오른쪽에 위치한 피서객들은 모두 경쟁자 트럭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살 것이다. 두 트럭의 사이에 있는 피서객들은 더 가까운 쪽에 있는 트럭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살 것이므로, 만약 B가 해변의 가운데이고 A와 C가 B로부터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면 A와 B 사이의 피서객들은 A로, B와 C 사이의 피서객들은 C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살 것이다.

하지만 서로 경쟁적으로 매출을 올리려는 당신과 경쟁자는 이 상황에서 매출을 더 올릴 방안을 찾으려고 할 텐데 당신의 경우 A 위치로부터 해변의 가운데를 향해 오른쪽으로 트럭을 옮기게 된다면 (C 위치에 있는 트럭이 위치를 변경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자신의 왼쪽에 있는 고객들 모두에 더해 자신과 C의 사이에서 자신에게 더 가까운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다(따라서 수학적으로는 옮긴 거리의 절반에 해당하는 위치에 자리한 고객을 더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C 위치에 있는 트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므로 당신의 경쟁자는 B 지점을 향해 왼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두 아이스크림 트럭 모두 조금씩 해변의 가운데로 접근하게 되고, 결국에는 두 아이스크림 트럭 모두 해변의 가운데인 B 위치에 나란히 자리 잡게 된다. 왜냐하면 그 상태에서는 위치를 바꾸게 되면 시장점유율이 떨어질 뿐이므로 두 트럭 모두 위치를 바꾸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해럴드 호텔링(Harold Hotelling)이 1929년에 발표한 논문2 에서 제기한 이 문제는 이후 산업조직론에서 차별화된 상품시장을 분석하는 데 필수적인 모형이 됐고, 후에 게임이론의 도움을 받아 ‘호텔링의 해(解)’가 게임이론의 대표적 균형인 내시 균형의 일종임이 입증됐다. 이후 영국의 정치학자 덩컨 블랙(Duncan Black)이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선거에서 두 경쟁자의 위치가 한 곳으로 수렴한다는 호텔링 모형의 결론을 끌어들여 중위 투표자(median voter) 이론을 제시했고, 미국의 정치학자 앤서니 다운스(Anthony Downs)3 가 호텔링 해변을 선거에서의 좌와 우의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으로 재구성해 왼편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옹호하는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 오른편에는 정부의 시장 개입의 최소화를 옹호하는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가 있고 이들 각각이 자신의 성향에 더 가까운 후보에게 투표를 하는 것으로 정치학에 게임이론적 분석을 도입하게 된다.

2018년의 한국 국회와 자율규제

자, 이제 따뜻한 해변을 떠나 북극 한파가 몰아치는 2018년 겨울의 여의도로 가보자. 2012년 국회법 개정(소위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의견대립이 첨예한 주요 안건에 대해 의결 정족수의 60% 찬성이 있어야 법률안이 통과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법률상 우리나라 국회의원 재적총수는 300명이고4  이들 모두가 의결에 참석한다면 180명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 상황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그림 2]와 같다. [그림 2]의 수직선은 하나의 사안에 대해 300명 국회의원을 의견의 강도를 바탕으로 1번부터 300번까지 정렬해 놓은 선이다. 예를 들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cryptocurrency)에 대한 규제가 사안이라고 한다면 가장 왼쪽(1번 의원)은 암호화폐 거래소 전면 폐지와 같은 가장 강력한 규제를 선호하며, 가장 오른쪽(300번 의원)은 암호화폐 발행 및 거래 무제한 허용과 같은 자유방임의 입장을 선호한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Q, 그러니까 196번째 강한 규제(자유방임에 더 가까운)를 선호하는 의원의 입장과 부합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만일 정부 여당이 P 위치에 해당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하자. P는 165번째로 강한 규제를 선호하는 의원의 입장에 부합하는 법안이다. 호텔링 해변 모형과 같이 각각의 국회의원이 자신의 입장과 가까운 법안을 선호한다고 하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180번째 의원 A(법안 통과에 180명의 찬성이 필요하므로)는 법안 P를 현 상황 Q보다 선호할 것이다. 그 이유는 180번째 의원 A 입장에서 안건 P는 14칸이 떨어져 있지만 현 상황 Q는 15칸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180번째 의원 A보다 왼쪽에 있는 의원들은 모두 현 상황 Q보다 법안 P를 선호할 것이고, A보다 오른쪽에 있는 의원들은 반대로 현 상황 Q를 선호해 법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180명의 찬성표를 얻어 법안 P는 통과되고, 암호화폐에 대해 P=165 위치에 대응하는, 현 상황보다 더 강력한 수준의 규제가 시행될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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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와 같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 업계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만약 암호화폐 업계는 규제의 정도가 덜한 현 상황(Q=196)을 새로운 규제법안(P=165)이 통과되는 상황보다 선호한다고 하면 이 상황에서 업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은 자율규제를 통해 새로운 규제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이 된다. 이때 업체들 간의 협의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은 S=180, 즉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180번째 의원 A의 입장이 된다. 호텔링 해변 모형의 논의를 연장해 봤을 때 자율규제가 추구하는 상황이 180번째 의원 A의 입장보다 오른쪽(느슨한 규제)일 경우 그 상황보다 180번째 의원 A가 더 선호하는 규제법안이 A=180의 왼쪽에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업체들이 규제법안의 통과를 확실히 막기 위해서는 180번째 의원 A의 입장에 일치하는 정도까지 자율규제의 강도를 올릴 (S=180)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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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정빈

    문정빈[email protected]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문정빈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상하이교통대를 거쳐 고려대에 재직 중이며 연구 분야는 비시장 전략, 글로벌 전략, ESG와 지속가능 경영 등이다.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Studies』 『경영학 연구』 『전략경영연구』 등 다수의 국내외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으며 『전략경영연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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