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약력 ▲1967년 이화여대 교수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자 ▲1989년 문화부 초대 장관 ▲1999년 대통령 자문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주요저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 『디지로그(2006년)』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생명이 자본이다(2014)』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지우(서강대 경영학과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현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2019년 새해 초 “설 명절 후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정작 인터뷰 날짜를 사흘 앞두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목소리가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이사장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니 인터뷰를 아예 취소하든지, 아니면 최대한 미뤄야겠다”는 연락이었다. 이 전 장관의 컨디션에 따라 또다시 일정이 취소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있었지만 기사 마감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날짜를 늦춰 다시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두 달을 기다려 2019년 2월25일,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3년 만의 재회였다. 11 지난 2016년 3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 대국이 열린 뒤 몇 달 후 DBR은 ‘인문학자 이어령과 공학자 진대제의 만남’이라는 기획하에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한 이어령 전 장관의 통찰을 들어봤다. DBR 205호 「AI와 기술이 ‘의식주’를 해결한다, 이제 ‘진선미 추구’의 인간 시대가 열렸다」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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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얼굴을 맞댔지만 요즘 건강은 어떠시냐는 안부는 묻지 않았다. 나이 여든을 훌쩍 넘긴 어르신에게, 더욱이 암(癌) 선고를 받고도 방사선이나 항암 치료로 ‘투병(鬪病)’하는 대신 친구 삼아 ‘친병(親病)’ 중이라는 대학자에게, 어쩐지 의미 없는 질문이지 싶어서였다. 다행히 3년 전에 비해 다소 여윈 모습이었지만 열정이 넘치는 모습엔 변함이 없었다.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카랑카랑한 음성도 그대로였다. 어떤 질문을 받아도 ‘그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달변도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