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기업만이 해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레드오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만이 블루오션을 항해할 수 있습니다. 레드오션 비즈니스가 없는 기업은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도, 이를 지켜낼 수도 없습니다.”
박성훈 베인&컴퍼니 서울사무소 부사장은 레드오션 시장에서 고전하는 국내 기업들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1996년 베인 입사 후 소비재·유통 등 레드오션 분야의 컨설팅을 오랫동안 담당해온 그는 2006년 국내 학부 출신(서울대 경영학과)으로는 처음이자 최연소로 베인 파트너로 승진하며 화제를 모았다. 현재 베인의 산업재 및 서비스(IG&S) 컨설팅 부문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대표도 역임하고 있다. IG&S는 자동차·기계·철강·에너지·건설·조선·해운 등 산업을 담당한다.
박 부사장은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으로 변한 광산업의 사례를 제시하며 “영원한 레드오션은 없다”고 강조했다. 해외 진출과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레드오션에서 살아남는다면 언제든 블루오션에서 활동할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레드오션에 대한 정의를 내려달라. 레드오션은 과연 무엇인가
“블루오션이라는 단어에서 ‘블루’라는 말은 ‘매력적이고 경쟁이 없으며 수익성이 좋다’는 뜻이다. ‘오션’은 ‘뻗어나갈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블루오션의 반대말을 단순히 레드오션이라 국한하기보다 ‘레드오션(red ocean)’과 ‘레드랜드(red land)’로 나눠 설명하고 싶다. ‘레드오션’은 경쟁이 치열하지만 뻗어나갈 기회가 많은 시장이다. 반면에 레드랜드는 레드오션의 극한, 즉 경쟁도 치열하면서 뻗어나갈 기회도 없는 시장을 의미한다.
국내 차 음료 시장은 대표적 레드랜드다. 식품업체·제약업체·유통업체 등 여기저기서 넘보지 않는 업체가 없다. 많은 회사가 한 가지씩 히트 상품을 보유하고 있지만 산업 전체의 수익률은 1% 정도에 불과하고 수출도 전무하다. 성장 가능성과 뻗어나갈 기회가 모두 없는 셈이다.
국내 영화나 음악 산업은 레드오션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해외 진출이라는 돌파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류 붐이 꺼지면 이 시장 역시 언제 레드오션에서 레드랜드로 돌변할 지 모른다.
콘텐츠 저작권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낮은 인식 또한 이 시장이 레드랜드로 변할 위험성을 높인다. 드림웍스를 이끌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한국 파트너인 CJ그룹 관계자에게 “그 누구도 공짜와는 싸울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1000원짜리 복사품이 돌아다니지만 한국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다. 공짜에 당할 장사는 없다. 국내 문화산업이 레드랜드로 변하기 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 음료 시장이 레드랜드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 번째, 다른 기업이 공들여 개발한 제품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 유사한 컨셉트의 제품을 만들어 파는 소위 ‘카피 프로덕트’나 ‘미투(Me Too)’ 제품이 가장 극성스러운 곳이 바로 차 음료 업계다. 남양유업의 ‘니어워터’가 나오니까 롯데의 ‘2% 부족할 때’가 생겨났고, 이후 비슷한 류의 제품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우유·발효유 시장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수 없이 많다.
두 번째, ‘커스터머 라이프사이클’이 정말 짧다. 한때 음료 시장에서 식혜를 재료로 한 상품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요즘 식혜를 먹는다면 원시인 취급을 받지 않나. 그만큼 소비자들의 기호와 취향이 빨리 변한다.
세 번째, 시장 진입장벽이 너무 낮다. 반도체 생산처럼 수 조 원의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 아니다 보니 새로운 진입자들이 생산비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네 번째, 유통구조가 열악하다. 기업형 유통채널이 확보돼 있지 않다 보니 절대강자도 절대약자도 없이 고만고만한 업체들이 난립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