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avioral Economics
행복을 유산으로 남기려면
무엇을, 왜 연구했나?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재무관리를 전공하는 학자의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건 소득, 고용, 경제성장이다. 경제가 튼튼한 나라에서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높은 소득을 올리면 삶에 대한 만족도도 높을 것이란 예상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행복 관련 연구를 종합해보면 행복은 경제적 안정과 풍요로만 얻어지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중요하고 종교의 영향도 무시 못하며 문화와 교육도 빼놓을 수 없는 행복의 결정요인이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이 행복과 직결돼 있다는 것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더불어 요즘 주목받고 있는 분야가 행복의 유전적 측면이다. 돈, 인간관계, 종교, 문화, 교육, 심신건강 등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요인 외에도 조상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유산도 행복의 조건이라는 시각이다. 여기서 행복이 타고난 운명에 의해 좌우된다는 논리의 비약은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행복이 유전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왜 행복해야 하는지, 또는 왜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철학적 논리를 동시에 제공한다.
무엇을 발견했나?덴마크와 네덜란드는 매년 UN의 행복지수 랭킹에서 최상위권에 속한다. 반면 같은 경제 공동체에 속해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행복지수는 눈에 띄게 뒤처져 있다. 경제나 문화 측면에서 공유하는 부분이 상당한 나라들의 행복지수가 왜 이렇게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경제나 문화적 이유 외에 다른 요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영국 워윅대(University of Warwick) 연구팀은 집단 또는 국가마다 평균적인 유전자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행복지수에서도 차이가 생기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했다.
연구팀은 먼저 140여 개국의 유전정보를 이용해 유전적 특성과 행복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최근 몇 년간 갤럽세계여론조사(Gallup World Poll)의 행복지수 랭킹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덴마크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나라(스위스, 네덜란드, 노르웨이)에 사는 사람들은 덴마크와 유전적 유사성이 희박한 나라(한국, 중국, 일본)에 사는 사람들보다 삶의 만족도는 높고 불만과 고통은 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는 아시아와 유럽뿐만 아니라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 대륙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한발 더 나아가 국가별 행복수준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불행을 느끼는 감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S5-HTT’라는 유전자의 국가별 보유율을 비교했다. 소위 ‘불행유전자’라 불리는 S5-HTT를 가진 사람들은 동일 유전자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 삶에 대한 만족도가 눈에 띄게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예상대로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국민의 불행유전자 보유율이 행복지수가 낮은 국가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불행유전자의 존재와 중요성은 다양한 이민 배경을 가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부터 이민 온 부모나 조상을 둔 미국인들이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로부터 이민 온 부모나 조상을 가진 미국인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행복한 삶을 누렸다.
연구 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행복한 삶은 모든 이의 궁극적 소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에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이나 이유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행복의 유전학적 측면을 연구하는 이유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UN과 갤럽세계여론조사의 자료에 의하면 행복의 정도는 비슷한 문화 및 경제 환경을 가진 나라들 사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그 원인으로 주목받는 요인이 유전적 특성이다. 재산, 문화, 인간관계, 종교, 건강과 더불어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역시 행복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인이며 삶 속에서의 비중과 의미도 작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자식이나 후손이 행복하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라. 그래야 자식과 후손에게 행복유전자를 유산으로 남길 수 있다. 자손에게 가난을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으려고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고, 단합된 역량으로 여러 위기를 이겨냈다. 세계 10대 무역대국의 반열에도 올랐다. 그러나 세계 10대 행복대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해 보인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리 열심히 일했던가? 우리가 경제성장 못지않게 애지중지 보살피고 키워온 것이 분노, 폭력, 무치, 부정부패다. 과연 우리가 남길 유전적 유산은 어떤 모습일까?
곽승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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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와 텍사스공과대에서 정치학 석사와 경영통계학 석사, 테네시대(The University of Tennessee, Knoxville)에서 재무관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타주립대 재무관리 교수로 11년간 재직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행동재무학/경제학, 기업가치평가, 투자, 금융시장과 규제 등이다.
Based on “National Happiness and Genetic Distance: A Cautious Exploration” by E. Proto and A. J. Oswald (2016, The Economic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