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준비 목적으로 창업한 ‘목동카페’가 생각보다 잘되면서 철수는 2호점을 오픈하기로 마음먹었다. 2호점은 내년 3월 완공을 목표로 6월에 공사를 시작했다. 낡은 건물을 허물고 그곳에 새로운 건물을 올리는 일부터 시작하다 보니 생각보다 작업이 커졌다.
12월 말, 공사가 예정보다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공사업체 담당자의 말에 철수의 기분은 한결 좋아졌다. 그런데 12월 말에 공사 업체로부터 날아온 세금계산서를 보고 의아했다. 철수와 업체는 공사 계약을 맺을 때 총 공사대금은 1억 원으로 정했다. 계약 당시 착수금으로 3000만 원, 12월 말에 4000만 원의 중도금을 지급하고 공사 완료 후에 3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런데 공사 업체는 계약서와는 달리 12월 말 중도금으로 5000만 원을 청구해 온 것이다.
철수는 혹시 공사 대금이 1억 원 이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닌지 해서 공사 업체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전화를 받은 업체 측 담당자는 회계 담당자의 실수로 인해 계약서상 금액이 아니고 회계상 기표된 ‘공사 수익’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곧 수정된 세금계산서를 재발행하기로 철수와 약속했다.
담당자의 실수라는 말에 안심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철수는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공사 수익은 계약서상 정해진 날에 지급받는 금액을 인식하거나 공사기간으로 안분하면 되는 게 아닐까? 철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공사업체가 왜 계약서와는 달리 본인에게 4000만 원이 아닌 5000만 원을 청구하려 했는지, 회계상 수익을 왜 그렇게 잡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사 기간에 따라 대금을 청구한다고 하면 6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총 공사 기간 10개월 중 현재 7개월이 지났으므로(70%), 누적 공사 대금은 총 공사 대금 1억 원의 70%인 7000만 원이 된다. 이 중 이미 지급한 착수금 3000만 원을 제외하면 철수가 12월 말에 지급할 돈은 계약서 그대로 4000만 원인 것이라는 것이 철수가 이해했던 바였다. 일반적으로 재무회계에서는 발생주의에 따라 수익 과 비용을 인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목동카페 1호점을 운영하며 회계에 대한 기본 지식을 쌓은 철수는 ‘계약기간에 따라 공사 업체가 공사 수익을 인식하겠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만 철수가 몰랐던 것이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수주 산업의 경우에는 재무회계상 ‘(공사) 진행률’에 따라 수익을 인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주 산업은 건설, 조선 등 수요자의 주문에 의해 생산한다. 수요량이 적고 거래가격이 거액이기 마련이다. 문제는, 수주 산업에 있어서 공사 진행률은 기간이 아니라 금액을 바탕으로 산출한다는 것이다. 회계기간 중에 실제로 투입한 원가금액을 총 공사 예정 원가로 나눠 계산한다. 또한 해당 공사 진행률은 누적 기준으로 산출된다. (공사 예정 원가는 결산 시마다 변경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누적 진행률을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철수가 발주한 목동카페 2호점 신축 공사의 경우 공사 업체가 생각한 총 공사 예정 원가가 8000만 원이었는데 12월 말 현재 6400만 원의 누적 공사 원가가 발생했다면 현재까지의 공사 진행률은 6400만 원/8000만 원 = 80%로 계산된다. 이에 따라 공사 업체의 담당자는 12월 말까지의 누적 공사 수익으로 8000만 원(총 공사 대금 1억 원 x 80%)을 인식할 수 있다. 착수금으로 받은 3000만 원을 제외하면 5000만 원을 추가 공사 수익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철수도 애초의 계약조건과 상관없이 공급 업체의 공사 진행률에 따라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걸까? 아니다. 공사 업체가 인식한 공사 수익은 재무회계 관점에서 수익을 인식하는 기준에 국한된다. 즉, 공급 업체와 철수 간의 대금지급 권리와 의무는 이들이 처음 합의했던 계약조건에 따라 발생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원래 계약 조건에 따라 12월 말 현재 철수는 5000만 원이 아닌 40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할 의무가 발생했고, 공급업체는 4000만 원을 받을 권리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재무회계 기준에 따라 발생한 공사 수익 5000만 원과 계약서에 따라 발생한 4000만 원의 차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재무회계에서는 공급업체가 진행률에 따라 인식된 공사 수익과 실제 계약관계에 따라 발생한 차이를 ‘미청구공사 ’라는 자산 계정과목으로 인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청구공사는 주로 발주처가 건설업체의 공정률이나 사업비용 을 인정하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은 공사업체 측의 입장이다. 철수의 입장에서는 공급업체에서 계산한 진행률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철수는 공급업체에 지급하기로 한 4000만 원을 미지급채무로 인식하면 된다. 업체 측의 회계에 기록된 미청구공사는 별도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인식 기준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무회계에서 수주 산업에 대해 진행률에 따른 수익 인식을 권고하는 이유는 이것이 ‘수익 비용 대응의 원칙’에도 부합하고 재무제표의 기간별 비교 가능성을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공사 진행률 추정의 신뢰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재무회계에서는 진행률을 적용할 수 있는 공사계약 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기업 경영자 혹은 회계담당자는 회계 기준을 면밀히 살펴보고 자사의 사업이 이 기준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DBR mini box : 경영실무 Tip 신문기사에서는 조선업 등 수주산업의 회계처리 방식과 관련된 이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사 진행률을 조작하면 당기손익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공사 진행률은 ‘실제(누적) 발생 원가’를 ‘총 공사 예정 원가’로 나눈 것이다. 이 중 실제 발생원가는 세금계산서 등이 발행돼 이미 금액이 확정됐으므로 상대적으로 신뢰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총 공사 예정 원가는 공사업체에서 어떻게 예측하는지에 따라, 전문가의 성향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
필자소개김범석 회계사 [email protected]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이수했다. 삼일회계법인 및 PWC컨설팅에서 13여 년간 외부 감사, 재무전략, 연결경영관리 및 리스크 매니지먼트 등 CEO 어젠다 위주의 프로젝트성 업무를 맡았다. 연결 결산, 자금 관리 및 회계실무 등에 대한 다수의 강의를 진행했고 현재 글로벌 패션회사의 그룹 어카운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