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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어질지 않다” - 천지불인(天地不仁)

박재희 | 47호 (2009년 12월 Issue 2)
사랑이 지나치면 간섭이요, 간섭이 도를 넘으면 폭력이 된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은 때론 인간관계와 조직을 파멸로 이끈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도 위대한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다. 타율이 아닌 자율로 성장한 조직은 상상할 수 없는 성과를 내곤 한다. 물론 타율과 강압이 조직에 일시적인 성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을 망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은 자율의 리더십과 높은 성과를 연결해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라고 정의하고 있다.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었을 때(無爲), 어떤 일도 되지 않음이 없는(無不爲)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노자가 꿈꾸었던 자율의 리더십이오, 섬김의 리더십이오, 역발상의 리더십이다.
 
이런 자율 리더십의 근거로 천지불인(天地不仁) 정신을 들 수 있다. 우주(天地)는 어떤 대상물에 대해 사랑과 의도로 대하지 않는다(不仁)는 것이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계절이 바뀌는 모든 과정이 어떤 의도와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돌아가는 우주의 원리다.
 
노자는 지도자의 인(仁), 이른 바 배려와 사랑을 의도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공자가 꿈꾸었던 군자(君子)의 리더십은 바로 ‘인(仁)의 철학’이었다. 리더는 백성들을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해야 하기에 누구보다도 인(仁)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이런 공자의 철학에 반기를 들었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간섭하고 자신의 의도를 강요하지 마라! 저 하늘과 땅을 보라! 천지는 어떤 의도도 가지지 않고 만물을 대한다(天地不仁). 조직의 리더 역시 이런 무위(無爲)의 리더십으로 조직원을 대해야 한다. 그러면 조직은 자율의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리더가 지켜볼 때는 잘하다가도 조금만 섭섭하고 마음에 안 들면 오히려 방종(放縱)하는 조직보다는, 누구의 간섭도 없이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조직을 노자는 꿈꾸었다. 리더(聖人)는 친절하지 않다(聖人不仁). 그저 백성들을 강아지풀처럼 그대로 내버려둘 뿐이다(以百姓爲芻狗). 리더의 사랑과 배려가 잘못 이행되면 인간의 존엄을 짓밟기도 한다.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에게는 그것이 간섭이었고, 족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이 자율의 리더십을 계곡(谷)이나 물(水)에 비교하기도 한다.
 
“가뭄이 들어 세상이 모두 타들어가더라도 마르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계곡입니다. 계곡은 세상 모든 것이 말라도 마르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유는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계곡의 정신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계곡의 정신은 죽지 않는다’는 노자의 곡신불사(谷神不死)라는 화두다. 이 계곡의 정신을 노자 도덕경에서는 곡신(谷神)이라고 한다. 곡신의 의미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남성적이고 위협적인 강함보다는 여성의 부드러움이 강조된다. 강하고 딱딱한 모습보다는 부드럽고 유연한 모습이 중요하며, 나이 들어 경직된 모습보다는 어리고 순진한 모습이 바로 곡신이 담고 있는 다양한 의미다.
 
노자는 천지불인의 리더십을 물에 비유하기도 한다. “가장 위대한 것은 물처럼 하는 것이다(上善若水). 물은 모든 만물을 이롭게 해주지만 자신을 과시하려 하지 않는다(利萬物而不爭). 오히려 사람들이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니(處衆人之所惡), 이런 정신이야말로 무위의 도(道)에 가장 가깝다.”
 
노자가 꿈꾸었던 가장 위대한 리더십은 근엄하고, 군림하며, 강압적인 존재가 아니라 부드럽고, 낮추고, 따뜻한 계곡의 정신이었다. 강요하고, 군림하고, 간섭하는 것이 오로지 경쟁력이란 생각이 팽배하고 있는 요즘, 천지불인의 자율과 곡신불사의 낮춤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한다. 또 다른 효율과 성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진정한 마지막 승자는 세월이 지나가봐야 드러나는 법이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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