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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dom for CEO

사지(死地)에서 싸워야 이긴다

박재희 | 111호 (2012년 8월 Issue 2)



한국의 김재범 선수가 런던 올림픽에서 유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자신의 금메달을 빼앗아 갔던 독일의 올레 비쇼프와의 결승전에서 4년 전 패배를 깨끗하게 설욕해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줬다. 경기가 끝난 후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김재범 선수는 죽기로 싸웠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죽기 살기로 싸워서 졌고, 런던 올림픽에서는 죽기로 싸워서 이겼다는 김 선수의 일갈(一喝)에 우리 국민들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손자병법> 구지(九地) 편에 보면 전쟁 중에 당면하는 9가지 지형의 상황이 나온다. 어떤 처지(處地)에 처하든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자세히 적고 있다. 첫째 지형은 흩어져 도망가기 좋은 지형, 산지(散地·dispersive ground)를 만났을 때다. 흩어지기 좋은 지형이라 병사들은 늘 집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는 지형이다. 회사로 말하면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원들의 소속감이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지형을 만나면 전체 조직원의 뜻을 하나로 뭉쳐야 한다(一其志). 두 번째 지형은 적진으로 조금 들어간 경계 지형, 경지(輕地·frontier ground). 여전히 병사들의 전투의지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소속감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使之屬). 세 번째는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전략적 요충지, 쟁지(爭地·key ground)를 만났을 때다. 만약 누군가 그곳을 먼저 점령하고 있다면 전면전을 피하고 적의 후방을 공격(擊其後)해 그들을 끌어낸 후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네 번째 지형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열린 지형, 교지(交地·open ground).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지형이기에 수비를 강화(謹其守)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다섯 번째 지형은 다른 나라들과 인접해 있는 지형, 구지(衢地·focal ground). 이런 지형에 처하면 주변 나라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결속을 다져야 한다(固其結). 여섯 번째 지형은 적진 깊숙이 들어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지형, 중지(重地·serious ground). 어차피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에 버틸 수 있는 식량과 물자를 확보하는 데 힘써야 한다(繼其食). 일곱 번째는 각종 늪지 같은 장애물이 있는 힘든 지형, 비지(·difficult ground). 어렵고 힘든 지형이기 때문에 무조건 진격해 그 길을 빠져 나가야 한다(進其途). 여덟 번째 지형은 적들에게 포위된 지형, 위지(圍地·encircled ground). 포위된 지형에서는 병사들이 도망 갈 수 있는 탈출구를 미리 차단해 무분별한 탈출행렬을 막아야 한다(塞其闕). 마지막 아홉 번째 지형이 죽을 수밖에 없는 지형, 사지(死地·desperate ground). 이런 상황을 만나면 모든 구성원들에게 더 이상 살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示之以不活). 그러면 죽기를 각오하게 싸우게 되고 오히려 사지(死地)가 생지(生地)가 돼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손자병법>은 아홉 가지 지형상황을 통해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결국 가장 승리할 확률이 높은 상황이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지형 사지(死地). 죽음을 각오할 수밖에 없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게 돼 결국 이기게 된다는 것이다. 전쟁의 원리는 포위된 상황이 되면 방어할 수밖에 없고(圍則御),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싸울 수밖에 없고(不得已則斗),이미 적진 깊숙이 들어가면 장수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過則從).그래서 장군은 병사들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뜨려 그들의 전투의지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기에 이겼다는 런던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범 선수를 보면서 <손자병법>의 구절이 떠오른다. ‘망할 수밖에 없는 곳에 던져지면 결국 생존하게 된다(投之亡地然后存). 죽을 수밖에 없는 사지에 들어가면 결국 살아날 수 있다(陷之死地然后生).’ 매번 그럴 것은 아니지만 인생에 단 한번은 죽기 살기로 살 것이 아니라 죽기 아니면 죽기로 살아야 할 때도 있어야 할 것 같다.

 

 

 

박재희 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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