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호 태풍 볼라벤은 남해 바닷가 양식장을 폐허로 만들고 수확기를 앞둔 과수 농가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태풍이 닥칠 것이란 예보에 집집마다 창문에 신문지를 붙이는 등 미리 조치를 취해 피해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는 태풍의 위험성을 빠른 시간에 퍼나르고 각종 미디어는 태풍의 심각성을 과장한다 싶을 정도로 연일 보도함에 따라 모든 국민들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한 덕분에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위기를 위기로 느끼고 대비하는 순간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우리가 위기라고 느끼지 않았을 때 찾아오는 것이 진정 무서운 위기다. 위기를 인식하고 준비하고 대비한다면 어쩌면 위기는 더 이상 큰 위기로 발전되지는 않는다.
금융위기며 경제 위기라는 말이 이제 낯설지가 않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최악의 경제 상황이 우리에게 닥칠 것이란 전문가의 전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장기적 불황이 계속되는 L자형 위기. 남부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에 기인한 세계경제의 위기 등은 경제 주체들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들이다. 그런데 정말 경제위기가 우리 앞에 있다면 어쩌면 그 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있다. 15호 태풍 볼라벤처럼 위기를 느끼는 순간 어떤 방식으로든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무경칠서(武經七書) 중에 하나인 <사마병법(司馬兵法)>에 보면 ‘천하가 태평하고 평화로울 때 전쟁을 잊고 준비를 하지 않으면 결국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구절이 있다. ‘천하수안(天下雖安)이나 망전필위(忘戰必危)니라!’ 너무나 잘 알려진 이 말 속에는 위기의식을 갖지 않고 있을 때 위기가 찾아온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준비를 철저히 하고 대비하면 결국 위기는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역(周易)>에서 정의하는 위기는 새로운 국면의 기회를 얻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한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窮)이 다가오면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의 변화(變)가 일어난다.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답(通)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일명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의 철학이다. 어려운 상황이 다가오면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는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국면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위기는 간파되고 인지되고만 있다면 반드시 해결책이 생긴다는 낙관적 위기론이 성립된다. ‘안이불망위(安而不忘危)’ 편안할 때 위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존이불망망(存而不忘亡)’ 생존할 때 멸망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치이불망란(治而不忘亂)’ 안정될 때 혼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역>에 연속적으로 나오는 이 구절들은 위기와 소멸, 혼란을 잊지 않고 있으면 결국 편안하고(安), 생존하고(存), 질서(治)가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를 잘 모르는 학생들도 경제가 위기라고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위기는 위기인 것 같다. 일반인들도 위기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어서인지 마트에서 장바구니에 생필품을 담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다. 부동산은 관망하는 수요자들로 인해 맥을 못 추고 소비정신은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있다. 아픈 사람이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더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아픈 만큼 더욱 조심하고 경계하며 자신의 건강을 돌보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든 위기의 시대를 견뎌나가면서 우리가 충분히 대비하고 준비한다면 어쩌면 이 위기는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박재희 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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