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 통신
편집자주 DBR은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명문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사이드경영대학원(Saïd Business School)은 1996년 설립됐다. 영미권 최고(最古) 대학인 옥스퍼드대 소속이나 경영대학원으로는 젊은 편이다. 옥스퍼드대가 가진 인문학적 자산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경영학적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적 문제와 글로벌 이슈를 경영학과 연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세계적 사회적 기업 연구 기관인 Skoll Centre for Social Entrepreneurship와 전 세계 기업 평판 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Oxford University Centre for Corporate Reputation을 운영 중에 있다. 또한 금융에도 강점을 보이고 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영학은 서구의 관점, 그중에서도 미국과 영국의 주주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이윤극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 전략 역시 이런 관점에 맞춰 발전한 모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개인의 경험을 돌아보면 이윤극대화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일을 했을 때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다. 삼성엔지니어링에서 내가 한 일은 중동, 남미 지역의 에너지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거대 주요 기관 시설 프로젝트의 수주였다. 그런데 회사의 최대 이윤 추구를 목표로 만든 프로젝트는 나쁜 결과가 나오고 오히려 회사가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사업주의 요구에 맞춰 프로젝트를 만들었을 때 뜻하지 않게 우리 회사도 이익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한 예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영 에너지 회사 프로젝트 입찰과 관련해서 사업주의 관심사항을 분석했더니 그들이 가장 관심을 쏟는 건 이윤 추구가 아니라 자국민의 취업률이었다. 일반적인 프로젝트라면 사업주가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최저가 입찰과 짧은 공기를 제안했겠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업주의 관심사항을 뚫어본 우리는 단기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지만 현지에 엔지니어링 센터를 지어 사우디 엔지니어를 교육시키고 취업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 결과 입찰가격이 최저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자들을 제치고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됐다. 또 사업주의 신뢰를 얻어 다른 프로젝트들까지 연계수주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런 경험은 단순 이윤극대화에 기반을 둔 기존 경영전략들이 현실에서는 잘 맞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들게 했다.
자유경쟁시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옥스퍼드 사이드경영대학원의 리처드 위팅턴(Richard Whittington) 교수의 수업은 이런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위팅턴 교수는 기존 전략이 탄생했던 시점의 경영환경과 현재의 경영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핵심 아이디어로 삼고 이를 다시 ‘정부 소유의 거대 기업 출현’과 ‘거대 독점기업의 시장 장악’으로 세부적으로 분류해 경영환경을 분석했다. 먼저 주류 경영전략이 태동했던 시점의 경영환경과 현재의 경영환경을 살펴보자. 경영전략이라는 분야가 중요한 학문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시점은 1950년대 후반으로 알프레드 챈들러(Alfred Chandler), 필립 셀즈닉(Philip Selznick), 이고르 안소프(Igor Ansoff),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와 같은 대가들에 의해 발전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주주자본주의를 바탕으로 CEO 중심의 경영이 자리잡고 있던 시점이었다. 자연스럽게 전략의 초점이 주주의 이윤극대화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재의 글로벌 경영 환경은 주주중심의 경영 유효성에 의문을 표하게 된다. <이코노미스트> 자료에 따르면 중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80%가 국영기업이며 러시아에서는 시가총액의 62%, 브라질에선 38%가 국영기업이다. 또 아시아에서는 상장된 회사의 과반수가 가족 소유 회사로 집계됐다. 개발도상국가만의 현상도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 다수의 서구 은행과 금융 투자 회사들 역시 넓은 범위에서 볼때 정부 소유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번엔 시장 독점 상황을 살펴보자. 위팅턴 교수는 많은 시장을 소수의 거대 기업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은 우리가 굳건히 믿고 있는 자유시장경쟁 체제가 아니라 독과점 시장 체제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인터넷 검색 시장과 SNS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회계 시장은 4개의 거대 글로벌 기업들이 수십 년째 지배하고 있다. 또 주요 투자은행들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광물채석 회사들, 그리고 미국 e커머스 시장의 아마존 역시 그들 시장에서 독점적 시장을 구축하고 있다. 이런 독점적 시장 상황에 과거의 자유시장경쟁 체제에 만들어진 경영전략의 개념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런 시장에서 경쟁우위 전략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큰 전략과 작은 전략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전략의 방향은 무엇이 될까? 이에 대해 위팅턴 교수는 현재의 전략 방향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기 위해선 ‘큰 전략(Big Strategy)’과 ‘작은 전략(Small Strategy)’ 두 개의 형태로 다르게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는 큰 전략은 회사 경영 성과 이상을 본다. 단순히 이윤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이익 혹은 사회적 이익을 고려하는 전략을 말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나의 경험과 일치하는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은 전략은 자유경쟁시장 상황의 일반적인 재무 성과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인 전략경영을 말한다. 그리고 큰 전략과 작은 전략 적용에 대한 조건으로 ‘기존 전략의 성과 측정에 대한 재정의’ ‘경쟁력 개념 재정의’ ‘새로운 시장환경으로부터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경영 전략 프레임워크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위팅턴 교수는 이윤 외의 새로운 측정 지표가 필요하며 큰 전략과 상통하는 사회적 안전 장치의 마련과 국가 경제 개발이라는 새로운 측정 지표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말한다.
둘째, 경쟁력이라는 개념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국가의 이해관계가 큰 전략 관점에서 고려돼야 하는 시점에 시장 중심의 이익추구 전략(작은 전략)이 적용된다면 실패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내 경험에 비춰볼 때 개발도상국가에서 경쟁력이란 이윤 창출 능력이기보다는 그 지역에서 좋은 사회적 평판을 유지하면서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이다. 국가 소유의 주요 기업들의 경영 목표가 이윤극대화보다 국가적 관심사와 얽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가의 관심사항과 일치하는 능력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기업에 많은 기회가 돌아온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최대 기업이자 세계 최대 규모 에너지업체 중 하나인 Eni는 이탈리아 정부가 대주주다. 이 회사의 북아프리카 진출은 지역 사회 균형 발전이라는 목적하에 기업의 단기적 이익이 아닌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맞춰 이뤄졌다. 엑손모빌과 셰브런, BP 등 주주자본주의에 의해 움직이는 경쟁사들이 대주주들의 관심사인 단기적 이익극대화 때문에 북아프리카 진출에 주저할 때 Eni가 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이유다.
셋째,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전략적 사고 방법은 과거 주주자본주의에 의해 움직이는 회사들, 특히 미국 기업들로부터 얻은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이제는 독과점 시장 상황과 거대 정부 소유의 기업 형태를 제대로 반영하고 여기서 나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구가 선행돼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기존 전략 툴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위팅튼 교수의 제안이 주는 시사점이 크기는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으로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 과연 위팅튼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큰 전략과 작은 전략을 구분하는 것만으로 현재의 경영 환경을 반영하는 전략이 될 수 있을까? 또 과연 기업의 주요 주주인 재무적 투자자들이 단기적 이익을 포기하고 장기적 이익을 위해 위팅턴 교수가 주장하는 큰 전략을 받아들일 것인가?
큰 전략을 고려하기 위한 방법
기업이 재무투자자들의 단기 이익에 반하는 큰 전략을 세우고 이에 맞게 경영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사이드경영대학원 전 학장이자 재무학 교수인 콜린 메이어 교수와 글로벌 전략 담당인 에릭 선(Eric Thun) 교수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안한다.
메이어 교수는 기업지배구조의 변화 없이 단순히 전략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경영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고 말하며 이를 위해 연기금의 적극적 주주 권리 행사와 공정 거래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선 교수는 제도적 공백(institutional voids)을 언급하고 있다. 제도적 공백이란 해외 진출 고려 대상 기업의 국가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경영환경적 인프라 요소다. 제도적 공백과 같은 비파이낸스적 요소를 고려함으로써 큰 전략의 구체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런 분석은 앞서 말한 나 자신의 경험과도 일치한다.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기업들 다수가 정부 소유이고 이머징마켓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기존의 작은 전략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위팅턴 교수의 주장은 다소 개념적이고 메이어 교수가 이야기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변경은 법적인 문제까지 얽혀 있어 현 상황에서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관점에 기반을 둔 전략의 프레임워크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위팅턴 교수의 주장처럼 큰 전략으로 사고를 확대한 기업만이 미래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승엽 옥스퍼드 사이드경영대학원 [email protected]
필자는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에너지 관련 업무를 했다. 현재 회사 지원으로 영국 옥스퍼드대(University of Oxford) 사이드경영대학원 (Saïd Business School) MBA 과정에서 수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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