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조항신 LG전자 수석연구원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소연(서강대 사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아이폰 혁명’ 이후 휴대폰은 인간이 눌러서(Press) 실행시키는 물건에서 만져서(Touch) 반응하도록 하는 물건으로 속성이 변했다. 속성이 변하자 가치가 달라졌다. 온갖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 구현하는 대부분의 기능은 어찌 보면 본질이 아니다. 내게 ‘반응하는 물건’에 대한 애착심과 교감은 내가 그저 ‘작동시키는 물건’에 대한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사실 큰 불편이 느껴지지도 않는 미묘한 ‘터치감’에 대한 소비자들의 광적인 집착은 ‘애착심’의 다른 면이라는 얘기다.
가장 까다로운 사용자들의 요구와 치열한 시장경쟁 상황에서도 묵묵히 ‘터치’기술을 연구하고 혁신을 이뤄가는 사람들. 바로 ‘개발자’들이다. 최근 반응이 뜨거운 스마트폰 G2를 내놓자마자 ‘다음 혁신’을 위해 뛰는 LG전자의 조항신 수석연구원을 만나 ‘터치 기술’의 발전방향을 물었다.
어떤 전자제품이든 ‘터치’를 중심으로 구동이 이뤄지는 시대가 됐다. 개발자로서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나?
두 가지 방향성이 있다. 첫 번째는 현재 ‘터치 베이스’폰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다. 스마트폰, 터치폰의 궁극적인 터치감을 어떻게 향상시켜서 정말 제대로 된 최고의 터치스크린 폰을 만들 것이냐는 문제다. 일상적이고 단기적인 과제이자 업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트랙은 ‘스크린이 형태가 바뀐다면’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나오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소재가 바뀐다든지, 플랫폼이 바뀐다든지 하는 좀 더 근본적인 변화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트랙에 대한 얘기가 우리의 주제가 될 것 같다.
예전에는 삼성전자 것이든, LG전자 것이든 아이폰의 터치감을 못 따라간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이제는 많이 개선돼 큰 차이가 없는데 어떤 걸 더 연구하고 개발해야 하는가?
예전에는 소비자가 화면의 아이콘을 터치했을 때 재빠르게 반응해주는 것에 주로 신경 썼다. 이건 다 해결됐다. 기분 좋은 감각과 속도를 구현할 수 있다. 나머지는 개인차라서 사실 일일이 맞춰주기도 어렵다. 더 중요한 건 소비자의 ‘터치 의도’를 기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느냐다. 터치스크린상의 버튼을 하나 생각해보자. ‘확인’ 혹은 ‘OK’라는 버튼이 있는데 다른 생각을 하다 실수로 그 버튼에 손을 댔다. ‘빠른 반응’을 최우선에 둔다면 당장 실행이 되는 게 맞다. 하지만 사용자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터치스크린은 다른 반응을 보여야 한다. 다시 말해 사용자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혹은 마음을 바꿔서 그 버튼에서 손을 슬슬 떼는 행동을 할 때에는 ‘OK’를 누르지 않은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사용자에게 반응하는 수준을 넘어서 ‘의도를 알아채는’ 터치 기술을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물론 최신 폰에는 이런 기능들을 넣었다. 한번 해보라. 휴대폰이 내 마음을 읽는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손등을 잘못 댔는데 폰이 반응하는 그런 상황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터치는 결국 전체적인 사용자 경험(UX)을 구성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가 연구하는 것들은 대부분 다른 기능과 연동된 것들이다. 얼마 전 G2 발표회에서 보여줬던 ‘스마트 링크’ 기능 역시 사용자의 의도나 마음을 읽어내려는 것이다. 문자 내용을 분석해 ‘00야 내일 9시30분에 커피 마시자’라는 내용이 있다면 그걸 자동으로 스케줄링 하도록 도와주는 거다. 완벽하게 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런 시도들을 해야 사용자들은 감동한다. 그런데 이런 걸 고려하면서 또 반응이 자꾸만 느려지는 것도 사용자들은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렵다.
그래도 의도를 읽어내는 기술적인 원리는 무엇인가.
UX 자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 경험이라는 게 처음 시작부터 완전히 일을 끝냈다라는 상황까지 가는 전체를 의미하는데 사용자가 어떤 방식으로 손을 대고, 어떤 방식으로 일을 수행하고, 또 어떻게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지를 하나의 그림으로 보는 것이다. 애플 같은 경우 어떤 아이템을 누르려고 손을 댄 건지, 아니면 스크롤을 하려고 손을 댄 건지 구분을 하게 만들었다. 또 주머니 속에서 실수로 잘못 눌린 것인지, 정말 사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한 것인지도 알 수 있게 디자인됐다. 소비자의 패턴을 연구해서 몇 밀리미터 초 동안 손을 댔다가 떼면 그건 이동 스크롤이고 몇 밀리미터 초 이상이면 패턴상 ‘실행’이다 뭐 이런 식이다.
결국 ‘터치’가 중심에 있지만 그 역시 전체적인 UX 구성 안에 존재해야 할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애플 보고 자꾸 인간 중심이니 어쩌고 하는데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기들을 잘 관찰해보면 주의 집중할 때 움직임이랑 전환할 때 움직임이랑 다르다. 애플은 똑같이 터치하더라도 앱이나 기능의 속성이 주의 집중이라면 그에 맞게 화면 전개가 이뤄지고 주의 전환용이라면 또 그에 맞게 이뤄지게 만들었다.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한 거다. 예전에 LG전자 스마트폰은 사실 노키아를 많이 따라갔다. 노키아의 핵심은 효율이었다. 폴더를 누르면 그게 어떤 특성의 폴더냐에 상관없이 무조건 ‘휙’ 하고 눈앞에 나타나는 거였다. 근데 아이폰에서는 폴더의 모양이 퍼지면서 내용물이 보인다든지 하는 그런 그래픽, 애니메이션을 구현했다. 결국 스마트폰의 ‘터치’라는 건 그저 빠르게 반응하고 좋은 감도를 유지하는 것 이상의 ‘사용자 경험’을 장악해야 한다는 교훈을 많이 얻었다.
‘사람 마음을 읽는 기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목표 같은데, 가능한가?
열심히 연구개발 중이다. 생활 패턴을 관찰하고 사용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패턴이 아닌 돌발 상황은 골라내고 패턴 중에 가장 확실한 게 무엇인지 정리하고. ‘관찰의 힘’이랄까. 예를 들어 키패드를 터치할 때 I를 입력하면 그 다음에 알파벳 X가 올 확률이 높은지, A나 N이 올 확률이 높은지도 다 분석한다는 거다. 예를 들면 그렇다는 것이고 이처럼 단순한 터치감에 대한 기술을 넘어 터치와 연관된 UX에서 연구해야 할 부분은 무궁무진하다.
UX 혁신은 생각처럼 아주 먼 곳에 있거나 엄청난 기술력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폰을 두드리면 폰이 깨어난다든지 하는 것도 혁신일 수 있다. 또 예전에는 인터넷 웹페이지를 캡처해 보내려면 여러 차례 나눠서 해야 하는 걸 기술적으로 한 번에 해서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지만 소비자들에게는 아주 유용하고, 개발자들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런 것들을 찾아내는 것에서 UX 혁신의 상당 부분을 이룰 수 있다.
‘진동’에 대한 부분은 어떤가. 다시 말해 사람이 어떤 촉감을 가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려면 이게 또 진동과 연결돼야 할 텐데.
진동 부분은 여러 학회에서도 연구결과가 많이 나오고, 또 이를 ‘실제처럼 느끼는 가상의 촉감’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근데 그냥 ‘기술이 이 정도까지 발전했다’고 보여주는 용도로는 얼마든지 많은 걸 첨가해 낼 수 있는데 실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냐의 문제에서 많이 걸린다. 진동은 특히 어려운데 사람은 자연스러운 진동이 아니면 무조건 불쾌감을 느끼게 돼 있다. 인간의 예상 범주 안에 있는 특정한 진동만 편안함을 주고 나머지는 다 불편해한다는 거다. 시각과 청각의 결합은 어렵지 않은데 진동과 연관된 촉각은 굉장히 어렵다. 아예 디바이스가 바뀌거나 홀로그램식으로 우리가 자주 유튜브에서 ‘미래의 기술’ 같은 동영상에서 보듯이 획기적인 혁신이 나타나기 전까진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처음에 말씀드린 ‘두 번째 트랙’, 다시 말해 플랫폼과 기계, 구현 형태가 바뀌는 또 다른 의미의 완전한 혁신과 연결된 과제가 아닐까 싶다.
휴대폰의 ‘터치’라는 관점에서 ‘그립감’ 같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일 것 같은데.
역시나 아이폰 얘기를 안 할 수 없는데 아이폰 3GS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아이폰이) 한 손에 탁 들어오는 그 느낌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재질이 몽블랑 만년필 플라스틱 재료와 거의 유사했다. 그런데 아이폰 4로 넘어가니까 ‘메탈릭’한 느낌을 강조하면서 묵직하게 만들더라. 그립감은 이전 모델에 비해서 떨어졌는데 적절한 무게감을 주면서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는 인상을 만들어줬다. 사람들이 잡는 방법이 바뀌었다. 편하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는 아니니까. 애플은 ‘큰 화면’보다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것을 여전히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 같기는 하다. 즉 애플은 가로의 크기가 5.8∼6㎝ 정도가 인간이 편한 그립의 한계라고 보는 것 같은데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넓은 화면’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또 다른 니즈와 맞추려다 보면 또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혁신이 나오고 그러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개발한 G2의 뒷면 버튼도 상당히 재미있는 아이디어인데 어떻게 나오게 됐나? 그리고 과연 실용적인가?
‘관찰의 힘’이다. 스마트폰 뒷면에 음량조절이 가능한 장치를 달아 달라는 소비자 요구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많지는 않았다. 스마트폰 화면이 커진 이후 사람들의 ‘그립’을 연구하던 중 대부분의 사진에서 공통점을 찾았다. 화면이 커진 스마트폰을 쥘 때 사람들의 검지가 대부분 뒷면 상단 중앙부에 가 있다. 우리도 놀란 발견이었다. 심지어 광고하는 모델도 그렇게 쥔다. 그런데 다들 사이드에 이것저것 버튼을 늘려놓기만 했다. 지갑형 케이스부터 다양한 케이스가 나오는데 이래저래 불편요소가 많고 실수로 자꾸 눌려지기도 하고… 그런데도 그걸 수정할 생각을 다들 못했던 것이다.출시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반응은 좀 봐야 되겠지만 자신감은 갖고 있다. 그 밖에도 사이드 ‘베젤’1 을 줄이고 화면을 크게 하면서 휴대폰을 쥐거나, 쥐려고 하는 상태에서 터치 오작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많은 신경을 썼다.
예쁘게 디자인하고 작게 만들고, 새로운 기능 넣고… 피처폰 시절에는 그냥 이런 게 신제품이었는데 정말 어려워진 것 같다.
스마트폰이 퍼지면서 휴대폰은 인간에게 ‘object’가 됐다. 중의적인 단어 의미 전부다. 하나의 도구이자 물체이면서 욕망이고 욕구라는 것이다. 석기시대 돌도끼 이후로 이런 건 흔치 않았다. 항상 들고 다니고 만지작거리고 또 만지면 반응도 한다. 다른 가전제품들이나 전자기기들은 대부분 갖다놓고 쓰는 것이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개념인데 이건 완전히 다르다. 그 부분을 이해한 상태에서 연구하고 사용자 의견을 듣고 개발에 임해야 혁신도 나오고 아이디어도 나오는 것 같다.
‘터치기술’의 미래랄까, 처음 말씀하신 ‘디바이스’와 ‘플랫폼’이 바뀌는 혁신의 모습이랄까.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전망을 부탁한다.
지금까지 터치는 물체를 만져서 반응하도록 하는 상호작용, 인터랙션(Interaction)이 핵심이었다. 이 분야의 최고는 역시나 애플이었다. 이 길이 바로 ‘애플의 길’이라면 앞으로는 좀 더 구글스러운 방향으로 혁신이 전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인간을 최대한 이해해서 쉽게 만드는 애플의 방향은 이미 구글 계열 안드로이드에서도 많이 진보가 됐다. 근데 구글은 엄청난 데이터를 갖고 있다. 구글은 어떤 사용자가 쓰고 있는 상황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고 ‘클라우드’를 통해 다른 기기, 다른 정보, 다른 사람과의 인터랙션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 이를 ‘object interaction(물체 간 상호작용 및 소통)’을 넘어선 ‘environment interaction(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 및 소통)’이라고 하는데 이게 앞으로 터치 기술, UX의 미래로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고승연 기자 [email protected]
조항신 LG전자 MC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고려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컴퓨터 그래픽스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LG전자에 입사해 소프트웨어, 3D 그래픽 등을 연구하다 2006년부터 휴대폰 사업부에서 ‘영상통화’ 기술개발, ‘터치기술 혁신’ 작업 등에 매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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