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History Highlight
편집자주
기업의 역사에는 그 기업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사건이나 순간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이때의 결단이나 사건의 이면을 살펴보는 과정은 다른 기업에도 큰 교훈을 줍니다. 단순히 ‘어떤 일이 있었다’고 기억하는 것보다 그 일의 원인과 맥락을 정확하게 분석해 지식의 형태로 만드는 ‘암묵지의 지식화’ 작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국내 유수 기업의 기업역사(社史)를 집필해 온 유귀훈 작가가 ‘Business History Highlight’를 연재합니다.
“왜 늦느냐? 빨리 해라.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
“내일 착공해라. 내가 직접 착공식에 참석하겠다.”
1987년 8월8일. 비가 왔다. 1메가 D램 양산을 위한 삼성의 반도체 공장 3라인이 착공된 날이다. 임원진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직 미래 반도체 산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던 故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거듭된 재촉 때문이었다. 그날의 착공식은 이병철 회장이 참석한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3개월 후, 이 회장은 마치 유언처럼 3라인을 남기고 1987년 11월19일 향년 77세로 타계했다. 그리고 삼성의 역사가 바뀌었다.
“우리 민족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반도체 산업을 추진한다.”
1983년 3월15일 이병철(1910∼1987년) 삼성그룹 회장의 ‘도쿄 선언’과 함께 삼성전자는 1984년 1라인(64K D램 양산라인), 1985년 2라인(256K D램 양산라인)을 준공하고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의 기초 기술과 경제 규모로 반도체사업에서 성공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실제 현실도 암담했다. 1984년 8월 삼성이 64K D램을 출하하자 미국 마이크론 등이 256K D램을 출시하고 64K D램의 가격을 크게 내렸다. 후발업체를 견제하는 흔한 전략이다. 1986년 256K D램이 본격적으로 출하됐을 때도 똑같은 상황이 전개됐다. 도저히 게임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1985년 시작된 세계적 불황으로 반도체사업 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늘어갔다. “반도체사업 때문에 삼성그룹이 위험하다”는 말이 삼성 내외부에서 흘러나왔다. 임원들은 2라인을 너무 빨리 지었다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3라인(1M D램 양산라인) 건설을 지시했다. 1987년 2월이다.
그러자 임원들 사이에 “누가 회장을 말려 반도체사업을 포기하게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도쿄에 있던 이병철 회장이 계속 3라인 건설을 재촉하자 처음으로 거짓말까지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을 걸고 삼성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8월에 3라인 착공식이 끝나고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던 즈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1987년 말 반도체 경기가 호황 국면으로 진입하며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급등했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에 질린 일본과 미국 반도체 업체들이 투자를 미루고 일부는 메모리사업에서 손을 떼면서(인텔이 그때 메모리사업을 접었다)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삼성은 1, 2, 3라인(1988년 10월 준공)을 풀 가동하고도 주문량을 다 소화하지 못했다. “왜 늦느냐? 빨리 해라.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며 3라인을 독촉하던 이병철 회장의 전망 그대로였다. 삼성전자는 1988년에 그동안의 적자를 모두 상쇄하고 흑자로 전환했다.
혹자는 이를 이병철 선대 회장의 ‘감(感)의 경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결코 자신의 감과 경험에 의존하지 않았다. 노련했지만 노련함만을 믿고 비즈니스에 뛰어들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이병철 회장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모두가 주저하던 3라인 투자를 재촉했을까.
미·일 간 반도체 부문 무역수지 불균형이 심화되던 1980년대 초 ‘잠수함 사건’이 발생했다. 소련 잠수함의 움직임이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자 미국은 1984년 말부터 소련 잠수함의 저소음화 이유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2년 2월에서 1984년 3월 사이, 도시바 기계가 잠수함과 항공모함 스크루 평면 가공 컴퓨터 프로그램 및 공작기계를 러시아(당시 소련)에 수출한 사실을 알아냈다. 일본은 그 사실을 비밀로 했다. 도시바 사장이 사임하고 미국에 공개 사과하는 등 악화된 미국 여론을 달랬으나 미국의 대일 감정은 급격히 악화됐다. 1970년대 후반부터 미·일 간 반도체 무역마찰은 심화되고 있었고 ‘잠수함 사건’은 미국 업체들의 일본 업체에 대한 보복의 계기가 됐다. 이때 이병철 회장은 세계 반도체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과 갈등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세계의 움직임을 읽었다. 1985년 6월 미국 마이크론이 일본 7개 반도체 회사를 ITC에 제소하고 미 정부가 일본에 대한 경제 제재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1986년 7월31일 ‘미·일 반도체 협정’이 체결됐고, 일본은 반도체 출고가격을 올리며 대미 수출 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산 반도체가 미국 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커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병철 회장은 3라인 투자에 대한 본격적인 타당성 조사를 지시했다. 보고서가 올라가면 또 다른 각도에서 보고서를 요청했다. 그 결과가 바로 ‘즉각적인 반도체 3라인 투자 지시’였다.
이병철 회장은 언제나 엄청난 자료를 요구하고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만났으나 누가 색연필로 특정 부분을 강조해 주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3라인 투자 결정 전에 요구한 보고서는 어른 키 높이만큼 쌓일 정도였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결해 자료를 전체적으로 분석하면서 추론적 해석을 끌어냈다.
이 회장은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실천하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하나는 어떤 일이든 인과관계를 따지고 그로 인한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원칙은 여러 부문에서 많은 사람들을 폭넓게 만나 그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었다. 3라인 투자는 확률에 의존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치밀하게 연결되고 계산된 ‘기록’에 의한 자신감이었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너무 적게 관찰하고 너무 쉽게 판단한다. 단편적 사실들의 조각을 유의미한 정보나 지식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이병철 선대 회장이 보여준 ‘역사적 결단’의 과정에는 관련된 모든 자료를 검토하고 이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기나 긴 작업이 존재했다. 심지어 경영과 무관해 보이는 미·소 냉전의 흐름과 관련 뉴스를 챙겨보면서 시장을 전망했다. 이 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감의 경영’이라고 불렀겠지만 실제는 철저한 분석경영이었던 셈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3라인 착공’ 같은 역사적 순간, 이를 위한 리더의 결단 등과 같은 결정적 사건은 어떤 기업의 역사에서나 존재한다. 기업들은 이 같이 중대한 의사결정과 중요한 사건들을 치르면서 교훈을 얻는다. 그러나 그런 교훈들을 곧 망각하기 일쑤다. 성공과 실패의 경험들이 단지 말로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실수는 반복되고 세련된 의사결정은 반복되지 못하면 똑같은 위기를 겪을 확률이 높아진다. 암묵지 개념을 창안한 마이클 폴라니(1891∼1976) 교수는 경험적 지식을 반드시 문서화해 부문 간, 계열사 간 공유하는 일본 기업들의 꼼꼼한 기록문화에 주목했다. 그리고 학습을 통한 경험과 지식의 공유, 이른바 ‘암묵지의 지식화’를 일본 기업의 장수요인에 포함시켰다. 스티브 잡스가 Apple University를 만든 것 역시 ‘암묵지의 지식화’를 위해서였다. 앞으로 ‘Business History Highlight’ 코너에서는 기업의 운명을 가른 사건과 역사를 살펴보고, 이를 재구성해 하나의 ‘문서화된 암묵지’로 제공하고자 한다.
유귀훈 기록작가 겸 컨설턴트 [email protected]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노루페인트, 신성, 삼부토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삼성SDI, 제일모직, 포스코, 아모레퍼시픽, 태창철강, 종근당 등의 기업사를 집필한 기록작가다. <사사(社史)제작법> <최신사사기획제작법> <유귀훈의 기록노트> <마라톤> <장수기업입문서 社史> <기록입문> <유귀훈의 기록노트2> 등의 저자이기도 한다. 현재 프리랜서 기록작가 겸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각 기업 역사에서 배우는 비즈니스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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