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세계관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용어 가운데 서양의 언어로 적절하게 번역할 수 없는 사례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기(氣)’입니다. 한때 energy 같은 단어로 기를 번역하곤 했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결국 영어로 Ki나 Chi를 쓰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기를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만물의 본질 가운데 하나로 생각합니다. ‘공기(空氣)’는 비어 있지만 기로 가득한 곳을 뜻하고 우리가 생존하는 공간도 ‘대기(大氣)’로 표현합니다. 기는 느낄 수 있는 실체입니다. ‘감기(感氣)’나 ‘열기(熱氣)’ ‘냉기(冷氣)’ ‘한기(寒氣)’ ‘온기(溫氣)’ 같은 표현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기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형제나 자매를 ‘동기(同氣)’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유전의 핵심을 기로 보는 세계관에 근거한 것입니다. 또 사람은 ‘곡기(穀氣)’를 섭취하면 ‘활기(活氣)’를 얻고 ‘혈기(血氣)’가 왕성해지지만 기력(氣力)이 쇠해 병에 걸리면 ‘기진맥진(氣盡脈盡)’하거나 ‘기절(氣絶)’하기도 합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기업의 제품이나 브랜드 모두 사람들이 보내는 ‘인기(人氣)’를 누리며 ‘기고만장(氣高萬丈)’하다가 시간이 지나 인기가 없어지면 ‘기운(氣運)’이 쇠해집니다.
이처럼 동양적 세계관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기는 경영에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기(士氣)’입니다. 현실에서 투입한 자원에 따라 성과가 그대로 결정되는 분야는 거의 없습니다. 스포츠 구단에서 선수들의 연봉 총액과 성적이 전혀 다른 사례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축구는 일본에 비해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지만 역대 한일전에서는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막강한 전력에다 홈 어드밴티지까지 갖고 있었던 브라질은 충격적 패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업계에서도 이번 호 DBR Case Study(p.26)에 소개된 사례처럼 거대 기업에 비해 자원이나 역량이 턱없이 부족한 기업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사례가 잦습니다.
사실 투입한 자원의 양만큼 결과가 나온다면 모두가 훌륭한 경영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훌륭한 리더, 탁월한 기업은 현실에서 드물게 발견됩니다. 조직의 사기와 같이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성과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잘 통제하는 경영자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흔히 조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당근과 채찍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영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수(下手)’입니다. 둘 다 치명적 한계가 있습니다. 당근은 당장 효과가 있겠지만 당근을 더 확보하기 위해 매출을 부풀리거나 미래의 장기 이익을 희생해 단기 이익을 높이려는 인센티브를 강화합니다. 쥐를 없애려고 쥐를 잡은 사람에게 포상하면 쥐를 사육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무엇보다 당근 중심 문화에 익숙해진 조직원들은 더 큰 당근을 제시하는 조직으로 미련 없이 떠납니다. 채찍도 마찬가지입니다. 채찍으로 공포 분위기를 유도하면 실패를 하지 않는 게 최고의 생존 전략이 됩니다. 당연히 창의성은 발현될 수 없습니다. 특히 사소한 잘못도 보고하지 않아 나중에 조직 전체의 존망을 위협하는 큰 사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책임 회피 문화도 확산됩니다.
조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은 당근과 채찍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사고를 요합니다. 우선 공통의 목적의식, 가치의 공유 등 철학적 성찰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때로 사소한 경제적 이익에 집착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의를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목적의식과 가치를 공유하면 사기가 높아지고 기적을 낳을 수 있습니다. 또 인간은 자유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깁니다. 위계적 질서하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조직 문화에서 사기는 낮아집니다. 직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 역시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취급받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이런 본원적인 인간의 욕구를 감안한다면 상대평가에 기초한 서구식 성과주의는 재검토해야 합니다. 이미 GE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성과주의의 본산격인 기업에서 기존 성과주의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로 DBR은 조직의 사기 앙양 방안을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조직의 본질은 사람이며, 조직원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무한한 잠재력을 끌어내는 기업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저성장이 고착화하면서 많은 조직들이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시점에 직원들의 강력한 ‘사기’를 토대로 재도약하는 기업이 많아지기를 기원합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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