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으로 다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1970년대 이순신 장군은 국가에 대한 충성의 화신으로, 충무공 이순신, 성웅 이순신 등으로 그려졌지만 이번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은 정부나 국가 주도가 아닌 국민들이 진정한 지도자의 출현을 바라는 갈망이라는 점에서 명확히 다르다. 진정 이 시대는 영웅을 필요로 하고 있고,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물들지 않은 순수하고 고결한 불멸의 지도자를 바라고 있음이 분명하다.
숭례문이 불길에 싸여 무너지는 상황에서 어느 지도자도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때 국보 1호가 타오르는 것을 그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바라봐야만 했던 국민들은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자기들만 살겠다고 승객들을 뒤로 한 채 구조선에 오르는 승무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번 이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를 생각하게 됐다. 병영의 어두운 곳에서는 병사들의 집단 구타와 따돌림이 만연한데 오로지 자신의 자리와 진급에 영향을 줄까봐 쉬쉬하며 덮어 버리기에 급급한 책임자들의 작태는 이제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더 이상 책임과 공익을 위한 지도자의 출현은 요원하다는 탄식까지 자아내고 있다. 이순신은 이제 우리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진정한 지도자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기본부터 다시 묻고 있는 것이다.
‘장군은 진격을 명령함에 칭찬과 명예를 구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進不求名)! 후퇴를 명령함에 문책과 죄를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退不避罪)! 진격과 후퇴의 판단 기준은 오로지 백성들을 보호하는 데 있으며(惟民是保), 그 결과가 조국의 이익에 부합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利合於主). 이렇게 진퇴를 결정하는 장군이 진정 국가의 보배다(國之寶也).’ <손자병법>에 적혀 있는 장군의 소명의식이다. 인사권자의 눈치나 보면서 어떻게든 진급이나 바라고, 세상의 공명심에 사로잡혀 오로지 자신의 이름 석 자 알리는 것이 성공인 줄 착각하는 사람은 애초부터 지도자의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이다. 스펙이나 잘 쌓아서 남보다 먼저 진급하는 것이 공직의 최선 목표고 나중에 문제 생길 일은 직접 결정하지 않아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기에 급급한 지도자라면 반드시 수백 번 고쳐 읽어야 할 구절이다.
‘전쟁은 국가의 가장 큰 일이다(兵者 國之大事). 백성들이 죽고 사는 땅이다.(死生之地).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는 길이다(存亡之道). 그러니 신중히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不可不察也).’ 공직에 나서기 전에 국가의 대리자로서,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생존에 책임을 진 사람으로서 공직 선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이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하려고 있는 사람인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려 하는가? 이에 대한 기본 질문 없이 그저 자리나 보존하고 남보다 위에 서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됐을 때는 조직이 무너지고 조직원의 생존이 위태롭게 됨은 너무나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 시대 새삼 영웅 이순신이 다시 각광받고 조명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대는 스펙보다는 기본을 갖춘 지도자를 요구하고 있고 불굴의 의지로 위기를 돌파해 낼 능력 있는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다. ‘신에게는 아직 전선이 열두 척이 있나이다(今臣戰船尙有十二)!’ 참으로 든든하고 믿음직한 국민에게 충성하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두려움을 용기로 전환시키고 사람을 하늘처럼 받들 수 있는 지도자를 우리는 간절히 원하고 있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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