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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과 제국

용맹·잔혹한 로물루스 울타리 밖 세상을 탐해 제국 틀 닦다

임용한 | 212호 (2016년 11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로물루스의 로마는 사비니족과 공동 통치를 시작했다. 두 개의 다른 언덕에서 국가적인 제사를 별도로 지내고 별도의 신전을 갖고 있었다. 로물루스는 5년간의 공동 통치 기간 동안 사비니족의 수장 타티우스와 의견 충돌조차 일으키지 않았다. 타티우스가 현명했다면 분쟁이 일절 없었다는 사실에 더 긴장했어야 마땅하다. 두 마리의 맹수가 다툼 없이 지낸다는 것은 한 쪽이 완전히 겁을 먹었거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인데 로물루스가 전자일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비니족을 복속시킨 로물루스의 로마는 경쟁도시들과 달리 ‘울타리 밖’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 호기심과 관심이 놀라운 발전을 이끈다. 지금 우리의 조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편집자주

그리스·로마 문명은 르네상스의 모태였고 서구 문명과 현대사회를 만든 힘입니다. 로마제국과 르네상스의 이야기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생생한 교훈을 던져주는 이유는 서구 문명과 현대사회가 지닌 공통성 때문입니다. 그리스 문명과 로마제국을 만든 사람들과 그들 세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키워나가시기 바랍니다.




로마의 팔라티노 언덕에 오르면 정상이 의외로 넓고 평탄하다. 로마의 황제들이 이곳에 멋진 궁전과 부대시설을 구축했던 덕분이다. 현재 팔라티노에는 2개의 옥상 전망대가 있다. 서쪽 전망대에 서면 발 아래로 전차경주가 벌어졌던 대운동장과 레무스의 근거지 아벤티노 언덕이 보이고, 동쪽 전망대에 서면 포로 로마노의 폐허들과 카피톨리노 언덕이 눈 아래 펼쳐진다.

로물루스는 사비니족을 동맹자로 받아들이면서 명실상부하게 로마의 일곱 언덕의 주인이 됐다. 그는 정복욕과 투지가 차고 넘치는 타고난 전사였지만 로마의 지도자가 된 후에는 의외로 영화에 등장하는 마법사의 지팡이처럼 끝이 구부러진 지팡이들 들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를 장군이나 대장이 아니라 예언자로 대우했다.

예언자와 지팡이는 정복자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혹은 고대의 지도자는 통치자와 샤먼을 겸했다는 진부한 지식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로물루스의 예언자 행세는 리더십에 대한 교훈집이 있다면 제1장 1절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리더란 조직과 구성원을 미래로 이끄는 사람이다. 예언의 권위를 점성술과 마법에서 얻든, 통찰과 성과로 얻든 미래라는 동굴 속으로 구성원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어야 리더다.

이런 지팡이를 들고 팔라티노 언덕을 어슬렁거리며 장년의 로물루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벤티노 언덕을 건너다보면서 형제 같았던 레무스(로마 신화처럼 둘은 절대 쌍둥이 형제가 아니다)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거나 레무스의 죽음을 초래한 권력다툼이 주는 허망함을 되씹었을까? 아니면 성벽으로 감싼 6언덕의 평화롭고 절제된 일상을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얻고 이룩한 것에 대한 포만감을 만끽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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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로 만든 지팡이 끝 장식, 고대 예언자의 지팡이는 중세 가톨릭에서
교황이나 주교가 사용하는 장식 달린 지팡이로 변했다.


분명히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묘하게도 사람들은 폐허에서 곧잘 안정감을 느낀다. 참혹한 폭발현장의 폐허라면 그럴 수는 없겠지만 포로 로마노 같은 천년 고도에서는 인생무상, 화무십일홍이란 단어가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로물루스 시대의 포로 로마노는 폐허가 아니라 아직 인간의 경작조차 허용하지 않는 미개척지였다. 사람들은 가능한 단단한 지반을 찾거나 바위틈에 달라붙어 토굴을 파고, 움집을 짓고 살았다. 지배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나무 기동을 박고 나무와 풀로 간신히 지붕을 엮어 올린 집에서 살았다.

로물루스같이 힘의 가치를 알고, 미래를 예단하고, 힘은 미래를 향해 사용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에게 이런 정경은 불안하고 불안정한 것이었다. 현재의 언덕들은 수천 년간의 건설공사로 깎여나가거나 윤곽이 희미해진 것이다. 로물루스 시대에 언덕들은 지금보다 훨씬 또렷하게 구분됐고, 언덕마다 최소한의 자기 방어, 혹은 영역표시가 가능하도록 소박하게 요새화돼 있었다.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의하면 로물루스의 땅에는 정착경로가 다른 세 개의 부족이 있었다. 이들은 상위의 부족들로 실제로는 더 많은 부족이 있었을 것이다. 각 부족 안에는 혈연과 지연이 섞인 것으로 추정되는 ‘형제단’ 같은 10개 이상의 공동체로 구분됐다. 주민들은 어떤 형식이든 거주지역, 종족과 지위에 따라 서로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식을 하고 다녔다. 그것은 이 세계가 아직 섞이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로물루스는 불안했다. 언덕 밖의 세계는 정복과 약탈이 더욱 왕성해지고 있었다. 눈 아래 보이는 세계는 자신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허술하고 불안했다. 이런 세계에서 지배는 명령에 의한 지배와 협박에 의한 지배 두 종류가 있다. 명령에 의한 지배는 명령에 복종하고, 지배자를 자신의 리더로 인정하는 영역이다. 협박에 의한 지배는 상대의 무력에 대한 두려움에 적당히 굴종하는 단계다. 명령복종자를 단합시키려면 공동의 목표를 제공해야 한다. 협박굴종자에게 충성심을 알게 하려면 자신들의 리더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을 던져주고, 야심가와 과대망상자(로물루스의 기준에서)를 제거해서 그 이익이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최대치임을 수긍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의 땅에 있는 군중들은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카피톨리노 언덕 우측 너머로 육중하게 누워 있는 퀴리날레 언덕은 더욱 모호했다. 지금은 대통령궁이 위치한 이 언덕은 로마인들이 약탈한 아내들의 아버지와 오빠들이 사는 사비니족의 거주지였다. ‘아버지와 오빠’들은 로물루스와 극적인 타협을 했지만 그런 타협이 가능했다는 것은 이들이 야심덩어리라는 의미였다. 애초에 그들이 쳐들어 온 것은 여인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복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예지와 로마가 지닌 잠재력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로물루스에게 복종한 것이 아니라 공동 통치에 동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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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용한

    임용한[email protected]

    - (현)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의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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