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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배우는 생존 전략

“한 조각의 햇빛이라도 더…” 식물의 치열한 경쟁이 던지는 교훈

유재우 | 223호 (2017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너그럽지 않은 자연환경 속에서 숲의 식물들은 제각기 삶에 유리한 방식으로 성장을 꾀한다. 특히 나무는 경쟁 환경에 따라 성장속도를 달리한다. 울창한 숲에서 자라는 나무가 부피보다 길이를 키우는 데 주력하는 반면 듬성듬성한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가지를 넓게 뻗는 것도 이 같은 원리다. 심지어 식물이 동물과의 차별점이라고 배운 ‘움직일 수 없다’는 고유의 본성을 어겨가며 움직이며 생존하는 국수나무 같은 사례도 있다. 식물들의 생존 전략을 보면 경쟁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추구하진 않는다. 생존을 위한 기회를 스스로 확보할 수 있다면 모두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은 우리에게 몸소 가르쳐주고 있다.



자연은 너그럽지 않다.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종(種)에게만 생존과 성장의 기회가 허락된다. 그 과정은 결코 공평하지 않으며 제한된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구글 검색창에서 경쟁(競爭)의 생물학적 정의를 검색해보면 ‘생물의 개체 수 또는 전체 양이 공간이나 먹이의 양에 비해 많아진 결과 생기는 증식 및 성장에의 마이너스적 영향’이라고 소개된다. ‘마이너스적 영향’이라니? 경쟁은 본질적으로 번영이나 성장을 방해하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말인가? 나무의 이야기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자.



나무의 키 높이 경쟁

나무는 느리게 자란다. 늦어도 너무 늦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생장을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어떻게 하면 나무를 빨리 성장시킬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이 고민을 아주 심각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전국의 산이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다. 포화에 불타고, 땔감으로 잘려나가고, 심지어 먹을 것이 없어 나무껍질이며 뿌리까지 파버리니 나무 한 그루 남아 있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렇게 붉은 흙과 바위투성이였던 산을 불과 60년 만에 울창한 숲으로 변신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나무의 느린 성장 속도를 고려해보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워 보인다.

과거 식목일에는 온 국민이 산에 가서 나무를 심었다. 식목일 하루 동안 워낙 많은 사람이 모여 좁은 공간에 나무를 심다 보니 ‘촘촘히’ 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무를 밀식(密植)하면 나무는 일단 키부터 키운다. 주변 나무보다 더 빨리 하늘 공간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부피 생장은 잠시 미뤄두고 높이 성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숲에 가보면 회초리 같은 나무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경쟁을 부추겨 빠른 성장을 촉진시키는 방법을 나무에까지 써먹다니 우리나라 사람들 참 영특하다 아니할 수 없다. 덕분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조림(造林) 선진국이 됐으니 말이다.

나무는 서로 눈치를 보며 경쟁을 한다. 다시 말해 경쟁 환경에 따라 성장 속도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일본의 수학자 이와사 요는 ‘게임 이론(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의사결정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수학적 논리)’으로 설명했다. 이 수학자는 나무의 높이에 따른 이득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봤는데 나무가 ‘광합성으로 얻은 에너지양’에서 ‘성장에 사용한 에너지양’을 빼는 방법으로 나무의 득실을 비교했다. 그 결과 울창한 숲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부피 성장보다 길이 성장에 에너지를 많이 투자해 나무의 키가 더 큰 반면 나무가 듬성듬성한 숲에서는 나무줄기가 굵고 키가 작은 대신 가지를 넓게 뻗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나무가 광합성으로 얻는 에너지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데 유리한 방향으로 성장 에너지의 투자를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치열한 경쟁은 나무의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한다.



움직이는 나무, 국수나무

하늘 공간을 놓고 나무들이 벌이는 불꽃 튀는 키 높이 경쟁의 결과로 숲에는 지붕이 생긴다. 키 큰 나무의 수관(樹冠, 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려 있는 부분으로 가운데 줄기의 상층부)이 울창해지면 그 아래는 캄캄한 어둠에 덮인다. 그러면 키가 작은 나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울창한 숲에서 키 큰 나무의 잎사귀 사이로 떨어지는 부스러기 햇빛의 비율은 겨우 3%에 불과하다고 한다.1 3%의 햇빛으로는 겨우 목숨을 부지할 에너지를 만들 정도다. 키 작은 나무 중에 ‘국수나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나무가 있다. 등산길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다. 키도 작고, 가지도 가늘고, 잎도 작지만 엄연한 나무다. 숲은 매우 불공평하다. 선천적으로 작은 키로 태어났지만 주변의 큰 키 나무와 햇빛 경쟁을 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경쟁 조건에서 국수나무는 어떻게 생존과 성장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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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등학교 때 식물과 동물의 차이를 ‘움직일 수 있다’와 ‘움직일 수 없다’로 배웠다. 나무는 움직일 수 없다. 뿌리를 내린 그 자리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상식을 국수나무는 가볍게 무시한다. 이 나무의 줄기 속에는 말랑말랑한 하얀 물질이 채워져 있다. 이것을 송곳 같은 것으로 밀어내면 국수가락같이 뽑아져 나온다. 속이 단단한 목재로 차 있는 큰 키 나무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 스펀지같이 말랑한 물질 때문에 국수나무의 줄기는 유연하게 구부러진다. 줄기가 단단하고 꼿꼿이 위로 성장해야 하늘공간의 끝자락이라도 잡아볼 수 있을 텐데 키도 작은데다 늘어지기까지 하니 설상가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국수나무는 자신만의 독특한 경쟁전략을 발전시켰다. 바로 ‘움직이는’ 것이다. 국수나무는 어느 정도 키가 자라면 가지가 활처럼 휘면서 늘어져 땅에 닿게 된다. 그러면 그곳에 가지를 처박고 뿌리를 내려 또 다른 줄기를 올린다. 새로운 줄기가 어느 정도 자라면 다시 구부러져 땅에 닿고 또 그곳에 뿌리를 내린다. 마치 스프링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으로 국수나무는 햇빛을 따라 자리를 이동하면서 성장에 필요한 햇빛 에너지를 쟁취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키 큰 나무가 따라 할 수 없는 놀라운 경쟁 전략이다. 태생적으로는 햇빛 경쟁에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고유의 특성’을 활용해 차별적 경쟁력을 발전시켰다는 점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개발하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주는 고마운 나무다.



시간 차 전략, 로제트 식물

햇빛을 차지하기 위한 나무들의 높이 경쟁으로 인해 하늘 공간이 닫히면 땅 위에 붙어사는 풀은 암흑 세계에서 살아야만 한다. 빛이 없는 세상에 갇혀버린 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부스러기 햇빛이라도 허락되는 공간에 풀들은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풀 중에도 유독 키가 작은 ‘난쟁이 풀’이 있다. 봄이 되면 쉽게 볼 수 있는 민들레나 달맞이꽃, 망초나 냉이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산다. 이들은 햇빛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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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풀들은 다른 식물들이 잠자고 있을 때를 공략한다. 다시 말해 다른 식물들의 활동이 극도로 위축되는 겨울에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비축한다. 이른바 시간 차 공격을 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풀에게 땅이 얼고, 차가운 북풍이 부는 겨울을 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겨울은 햇빛 에너지를 충분히 모으기에 하루해가 너무 짧다. 이렇게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난쟁이 풀은 독특한 모양으로 진화했다. 땅 표면과 높이가 같을 정도로 짧은 줄기에서 360도로 펼쳐난 잎을 땅 위에 넓게 펼친 듯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마치 둥그렇고 납작한 방석 같은 모양과 같다. 위에서 보면 활짝 핀 장미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로제트(rosette) 식물이라고도 하고, 납작하고 둥근 방석 같아서 ‘방석 식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는 짧은 겨울 햇빛을 모으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잎이 방사형으로 펼쳐져 있으니 거의 온몸으로 햇빛을 받아들일 수 있다. 짧은 낮이 지나고 차갑고 긴 밤이 찾아오면 방사형의 잎은 이불의 기능을 한다. 낮 동안 햇빛을 받아 따뜻해진 땅의 열기가 밤이 되면 대기로 올라오는데 넓은 잎으로 땅을 덮고 있으므로 대지의 복사열을 이용해 밤의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낮은 키 때문에 겨울의 칼바람에 온몸이 얼어버리는 것도 피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로제트 식물에는 보상이 찾아온다. 언 땅이 녹고 바람이 따뜻해지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꽃대를 일으켜 꽃을 피울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다른 식물이 활동을 멈추는 겨울을 훌륭하게 이겨낸 보상으로서 충분히 가치 있는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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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재우

    유재우[email protected]

    - 인터브랜드에서 브랜드 경영 컨설턴트, 인컴브로더에서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역임
    - 2006년 국내 최초로 숲에서 배우는 인재개발 교육전문기관인 ㈜수피아에코라이프를 설립하고 조직개발 및 리더십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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