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콘서트홀의 하나로 꼽히며 개관 당시 지휘자 카라얀이 “소리의 보석상자”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일본의 ‘산토리홀’. 이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은 1986년 회사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주류회사 산토리가 건립했다. 기업들이 아직 ‘문화 기부활동’에 미처 눈을 돌리지 못했던 1960년대부터 ‘메세나 활동’을 통해 사회와 소통해온 산토리는 ‘이익 삼분주의(이익의 3분의
1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를 주창하며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메세나 활동을 지속한다. 상장도 하지 않고 폐쇄적인 가족기업 형태를 유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모기업이 적자인 상황에서조차도 문화지원사업을 축소하지 않아 ‘산토리는 술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기업’이라는 강한 인상을 남기자 일본 사회는 산토리에 대해서는 늘 호의적이다.
프랑스 보르도(Bordeaux) 지역의 와이너리(포도주를 만드는 양조장)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와인은 문화”라고 주장하며 와이너리 콘서트, 와이너리 투어, 와이너리 패션쇼 등 와인과 문화 프로그램을 연계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데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왔다. 이제 누구도 와인은 문화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와인 저장 오크통 앞에서 열리는 실내악 콘서트, 샤토(Chateau, 보르도 지방에서 일정 면적 이상의 포도밭이 있는 곳으로 와인을 제조,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와이너리 이름에 붙는 명칭)에서 열리는 야외 음악회 등에 동참하는 프로그램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오른 지 오래다.
올해 초 독일 함부르크 엘베 강변에 솟아 오르는 파도 혹은 왕관모양의 비대칭 유리 건물, 세계 최대 규모와 그에 걸맞은 최상의 음향을 자랑하는 콘서트홀 ‘엘프 필하모니’가 10년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그 자태를 드러냈다. 지금까지 세계 7대 콘서트홀에 추가돼 세계 8대 콘서트홀 중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한 이 엘프 필하모니는 버려진 창고 건축물을 개조해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는 점 외에도 도시 건축물에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입히자 건축물뿐 아니라 도시의 격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유럽의 오래된 공장도시에 버려진 공터나 창고 등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사례는 많지만 함부르크처럼 도시의 격까지 끌어올린 사례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500유로(약 60만 원)에 달하는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온라인이나 모바일 관람객에게는 클릭 한 번으로 콘서트홀 구석구석을 원하는 각도에서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을 도입한 것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소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사치가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는 사회적 공공재라는 인식을 심어준 모범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잘 기획된 한 편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주류 회사가 ‘술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기업’으로, 와인이 그저 술이 아니라 하나의 고급문화로, 도시 랜드마크에서 건축물이 끝나는 게 아니라 도시의 품격까지 바꾸는 일종의 ‘마법’이다. 격의 전제조건으로 숙성시간이 있듯이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한결같은 관심과 열정, 즉 숙성시간이 필요하다. 산토리는 1960년대부터 문화지원사업을 벌여왔고, 와인을 하나의 고급문화로 만든 것은 반 세기 이상의 노력에 따른 것이다. 또 엘프 필하모니가 재탄생하기까지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바로 ‘숙성시간’ 때문이었다.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숙성시간을 거치면서 그것을 담고 있는 기업이나 도시의 격을 달라지게 만든다.
김진영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1989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삼성중공업 기획실, 삼성 회장비서실 인력개발원, 삼성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 삼성전자, 호텔신라 등에서 인사교육전략수립과 현장 적용을 총괄한 HR 전문가다. 호텔신라 서비스 드림팀을 창단해 호텔 품격 서비스의 원형을 보여줬고, 차병원그룹 차움의 최고운영총괄을 맡아 의료서비스 분야에도 품격 서비스를 도입했다. 현재는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려대를 졸업했고 연세대에서 경영학 석사, 경희대에서 국제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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