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Philosophy
편집자주
사상가와 예술가들의 공유점을 포착해 철학사상을 감각적인 예술적 형상으로 풀어내온 박영욱 교수가 DBR에 ‘Art & Philosophy’ 코너를 연재합니다. 철학은 추상적이고 난해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만큼 연주에 대한 호(好)와 불호(不好)가 분명하게 나눠지는 경우도 드물다. 그의 연주는 지나치게 개성적이고 독특하다 못해서 규칙을 ‘위반’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베토벤 소나타 같은 고전주의 시대의 곡은 악보의 지시 사항을 엄격히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낭만주의 곡처럼 자신의 느낌대로 연주했다. 낭만주의자인 쇼팽의 곡은 엄격하게 박자를 지킬 경우 마치 행진곡처럼 딱딱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루바토(rubato), 즉 연주자가 임의대로 박자를 만들어서 연주해야 한다. 이에 반해서 고전주의의 곡은 정박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베토벤을 루바토로 연주한 굴드의 연주는 전통적인 기준에 보자면 베토벤의 곡이 아닌 셈이다.
고전주의 음악은 왜 이토록 악보에 충실해야만 할까? 그것은 악보의 위상과 관련이 있다. 고전주의자들에게 악보란 작곡가의 머릿속에 있는 악상을 모두 담아낸 완전체로 간주됐다. 바로크 시대만 하더라도 악보는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으뜸화음, 딸림화음, 버금딸림화음 등의 화음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던 바로크 시기만 하더라도 저음부의 경우 연주자가 화음을 구성하는 음을 임의로 결정할 수 있었다.
바로크 음악과 달리 고전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화음의 규칙을 엄격하게 체계화하고 그것을 악보에 담을 수 있다고 봤다. 이는 악보가 곡의 모든 정보를 담을 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뻗어 나갔다. 고전주의자들에게 음악의 모든 정보는 악보에 담을 수 있는 것이며 기록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악보가 작곡가의 머릿속에 있는 악상을 재현한 것으로 봤으며 악보의 모든 지시사항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야말로 곧 작곡가의 악상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는 마치 소설속의 여주인공을 묘사한 구절을 충실하게 읽으면 소설가의 머릿속에 있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똑같이 재현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과도 같다.
기록 체계와 기록 체계의 산물인 ‘텍스트’의 발견은 학문 분야뿐만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도 분명히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은 예술의 방향이나 역량을 바꿔 놓기도 했다. 텍스트의 발전이 곧 예술의 발전은 아니다. 이런 사정이 예술의 분야에만 한정되지도 않을 것이다.
박영욱 숙명여대 교양학부 교수 [email protected]
필자는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현대음악과 미술, 미디어아트, 건축디자인 등 구체화된 예술 형식에 주목해 철학 사상을 풀어내는 데 주력해왔다. 저서로는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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