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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오션 전략

똑똑함보다 엉뚱함으로, 블루오션에선 사고방식의 틀을 깨야

김현정 | 233호 (2017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에어컨 시장에서 시원한 바람은 핵심 경쟁 가치였다. 하지만 작년 출시된 ‘무풍’에어컨은 에어컨의 생명인 바람을 과감하게 제거했다. 소비자들이 낮은 온도를 원하면서도 바람은 불편해하는 현상에 착안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바람이 나오지 않는데도 시원한 에어컨에 열광했다. 블루오션의 차별화 전략이 통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레드오션의 피비린내 나는 경쟁에 익숙해지다 보면 경쟁 없는 블루오션은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특히 개인의 개성보다 집단의 규칙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권에서 블루오션 전략은 평가절하 돼왔다. 하지만 무풍에어컨처럼 차별화를 추구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블루오션 전략은 혁신적 인재와 아이디어 중심의 조직을 구성하는 데서 출발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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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카카오가 국내 최초로 모바일 콜택시 애플리케이션(앱) 카카오택시를 내놓자 후발주자들이 줄줄이 비슷한 앱을 출시했다. 당시 국내 최고 지도 앱을 보유한 A사도 뒤질세라 비슷한 택시 앱을 출시하고, 대대적인 광고를 집행하며 서비스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현재까지 택시 앱 시장은 여전히 카카오가 장악하고 있다. A사가 탄탄한 지도 앱 인프라를 갖추고도 택시 앱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을 선점한 막강한 경쟁자가 있는 가운데 많은 비용을 투자하면서도 차별적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택시 앱 시장에서는 당시 카카오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A사는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경쟁 시장에 뛰어들면서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도 내놓지 않았다. 전형적인 레드오션 전략의 실패 사례다.


경쟁사와 유사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었다가 고전하는 사례는 A사만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A사처럼 ‘핏빛 바다(red ocean)’에서 허우적대는 기업들은 ‘무경쟁 시장(blue ocean)’의 존재를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필자가 기업 현장에서 교육하거나 컨설팅을 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블루오션 전략의 기본 개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지적 차원의 이해를 말하는 게 아니다. 개념 자체에 공감하지 못한다.


특히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엘리트들이 모인 대기업이나 이미 투자를 많이 받은 창업자들에게서 이런 모습이 자주 관찰된다. 이미 기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 굳이 왜 경쟁 없는 시장을 창출해야 하는지부터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이들은 저비용과 차별화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명제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블루오션은 계속해서 열리고 있다. 테슬라의 전기차, 아마존의 드론 배달 서비스, 카카오뱅크 같은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가 출시돼 시장을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블루오션 전략을 평가 절하하는 곳도 드물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지금도 블루오션 전략을 유효하고 실용적인 경영 이론으로 공부하고 실천하고 있다. 2005년 블루오션 전략을 제안한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경영전략가로 꼽힌다. 이들은 9월 말 신간 <경쟁을 뛰어넘는 블루오션 시프트(Blue Ocean Shift beyond Competing)>를 출시할 예정이다.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적으로 착수한 블루오션 프로젝트들의 성패와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담았다고 한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창업자나 기업의 신사업팀 리더, 컨설턴트들이 블루오션 전략을 간과하는 이유를 한국인 특유의 문화심리적인 특성에서 찾고 있다. 한국적 맥락에서 블루오션 전략의 핵심 가치를 고찰해본다.



블루오션에 대한 문화적 오해

블루오션 아이디어는 아이디어 상태일 때 상대를 설득하기가 어렵다. 참고할 만한 성공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 실무자나 창업자들은 상사나 투자자에게 블루오션 아이디어보다 기존 사례를 참고해 이해하기 쉬운, 익숙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려면 서구, 특히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를 알아야 한다. 미국은 개성을 존중한다. 200년이 넘는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다원화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독창적 아이디어를 내면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집단주의 사회로 차별화보다는 통일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크다.


미국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남과 다른 독창성을 이끌어내는 교육을 한다. 아이디어는 그 자체가 훌륭해서라기보다는 독창적이기 때문에 칭찬받는다. 하지만 한국의 조직은 아이디어의 독창성보다 프로세스의 정확성을 더 따진다. 아이들의 창의적인 생각보다 맞춤법을 평가하는 학교 교육 현장과 비슷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구성원은 차별화를 굉장히 불편하고 어려운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창업자들 중에도 이미 외국에서 성공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한국에 이식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차별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미 성공적인 서비스인데 굳이 왜 차별화를 해야 하냐?”는 반문이 돌아온다.


우리는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선호한다. 아이폰, 카카오톡, 싸이, 갤럭시 노트, 스타벅스, 포켓몬고 등등. 우리는 소비자로서 이런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사랑하고 있다. 일례로 부산어묵에서 변신한 삼진어묵은 ‘어묵의 베이커리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기존 빵집과 같은 형태의 어묵 유통을 시작해 3년간 3000%의 성장을 이뤄내기도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정상급 스타, 화려한 볼거리나 해외 로케이션 없이 캐릭터와 스토리만으로 비용 대비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기존 드라마 작가들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예능 PD들의 흥미로운 상황 설정이 차별화 요소였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에서 블루오션 전략의 성공 스토리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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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풍 에어컨이 히트친 비결은?

블루오션은 남들이 가지 않는 ‘마이 웨이(My way)’를 찾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려움, 외로움 같은 심리적 압박이 뒤따른다. 이런 압박 때문에 사람들은 요식업이 3년 내 폐업하는 비율이 90%에 가깝다는 통계가 나와도 요식업 창업을 하고, 동네 치킨집이 망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치킨집을 차린다.


블루오션 전략을 수립할 때 많은 회사들이 뿌리치지 못하는 유혹이 바로 ‘소비자 조사’다. 소비자의 니즈를 맞추는 길이 곧 승리하는 길이라고 여겨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고객의 니즈를 좌표로 삼으면 확신을 갖고 일을 추진하기가 쉬워진다. 하지만 블루오션 전략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반응하지 않는다. 대신 소비자에게 이전에 없던 매력적인 가치를 제공한다. 개와 고양이에 비유하자면 고양이 전략에 가깝다. 개는 주인이 오면 반갑다고 달려가서 꼬리를 흔들고 애교를 부린다면, 고양이는 털을 고르고 최상의 모습으로 주인이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유도한다. 블루오션 전략은 소비자의 니즈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니즈를 만들어 고객이 따라오게 한다. 고객 반응 데이터는 시제품이나 사업의 윤곽이 나올 때까지는 무시하는 게 오히려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블루오션 전략을 짤 때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제품의 핵심 가치마저도 포기해야 할 수 있다. 유난히 더웠던 작년 여름, 두 회사가 출시한 에어컨 신제품의 희비가 엇갈렸다. A사는 여름 열기를 식히기 위해 에어컨 두 대를 붙여 놓은 듯한 모델을 출시했다. 시원한 바람을 더 많이 구석구석 보내주는 기능이라고 어필했다. 반면 B회사는 에어컨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바람을 없앤 에어컨을 내놨다. 그전 해까지만 해도 톱모델을 기용해 “씽씽 불어라” 멘트를 유행시키며 강력한 에어컨 바람을 어필했던 회사였다.


두 회사 중에서 B사의 전략이 블루오션이다. 업계 전체가 중점을 뒀던, 고객들이 가장 원한다고 생각하던 핵심적인 가치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무풍 에어컨을 개발하기 전에 소비자들은 더 시원한 에어컨을 싸게 공급해달라고만 요구했다. 하지만 무풍 에어컨이 나오자 소비자들은 “내가 진짜 원하던 제품”이라고 열광했다. 기업이 소비자 스스로도 생각지 못했던 니즈를 찾아서 채워준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가 가능하려면 개발자들 스스로 ‘에어컨은 시원한 바람이 생명’이라는 기존 통념을 깨고 ‘그런데 꼭 바람이 필요해?’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당시 소비자 의견에 귀 기울여 바람이 2배나 강력한 에어컨을 출시한 A사 개발자들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소비자 좌표를 무시한다면 과연 다른 무엇을 근거로 블루오션 전략을 세울 수 있을까? 책 <블루오션 전략>은 6가지 통로 체계(표 2)를 이용해 관찰하고, 인터뷰나 우회적 설문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굴하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관찰과 인터뷰는 과거 식민주의 인류학의 기초가 됐던 ‘질적 연구’를 의미한다. IKEA는 새로운 국가에 진출할 때 통계청 자료와 더불어 현지인들의 삶을 관찰한 내용을 전략 수립을 위한 기본 자료로 쓴다고 한다. A사도 사람들이 에어컨 바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충분히 관찰했다면 사람들이 온도가 낮은 것은 원하지만 바람을 직접 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6가지 통로를 통해 고정관념과 익숙함 때문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가치를 발견했다면 그다음에 시제품이나 사업 모델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면 된다. 이 같은 수정 보완 과정을 거쳐서 블루오션 전략이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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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정

    김현정[email protected]

    aSSIST 글로벌 리더십 센터장

    필자는 미 컬럼비아대에서 조직과 리더십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미네소타대에서 상담심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숭실대 경영학부 조교수, INSEAD 글로벌리더십센터 방문연구원으로 재직했고 삼성전자 리더십 개발센터 등에서 근무했다. 심리학과 경영학, 성인교육학을 기반으로 한 효과적인 리더십을 연구하며 상담 및 코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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