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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작가와 상생 파트너십 구축한

판매하는 ‘딜러’ 아닌 지원하는 ‘매니저’전속작가제 도입해 ‘윈윈’ 모델 구현

이방실 | 236호 (2017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아라리오갤러리 성공 요인

1) 공간 브랜딩 통해 중소도시 갤러리라는 지역적 한계 극복

: 세계적인 스타 작가들의 전시회를 잇달아 개최하고 수십억 원대 조각품들로 구성된 야외 조각공원을 운영하며 공간에 파워와 권위를 더함. 그 결과 천안이라는 중소도시에 근거지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갤러리로 자리매김에 성공.

2) 화랑 역할 재정의 통해 작가와 갤러리 간 상생 파트너십 구축

: 단순히 작품을 판매하는 ‘딜러’가 아니라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 관리해주는 ‘매니저’ 역할로 갤러리 역할 재정의. 전속작가제 도입해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모델 구축.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정하영(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경영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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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수도는 서울이지만 충남 천안이야말로 예술적으로 가장 ‘핫(hot)’한 도시다. 데미안 허스트의 ‘찬가(Hymm)’와 ‘채러티(Charity)’ 등 7m짜리 대형 조각들이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광장에 놓여 있다. 전 세계 미술지도에 꼭 표기돼야 할, 믿을 수 없는 광장이다.”

― 독일 미술잡지 아트(Art), 2013년.

 

보통 지방 버스터미널 하면 허름한 건물에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분위기를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아라리오가 운영하는 천안종합버스터미널은 다르다. 버스에서 내려 출구를 빠져나오면 곧바로 눈앞에 ‘야외 갤러리’가 펼쳐진다. 영국의 도발적 설치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물론 미국의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줄리아(Julia)’, 일본 조각가 코헤이 나와의 ‘매니폴드(Manifold)’, 프랑스 출신 미국 조각가 아르망 페르난데스의 ‘수백만 마일(Millions of Miles)’,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통제선(Line of Control)’ 등 평소 접하기 힘든 세계적인 조각과 설치미술 작품들이 터미널 옆 광장에 즐비하게 놓여 있다. 독일의 저명한 예술잡지 『아트』가 한국에 들르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아라리오 조각광장을 꼽는 이유다.

아라리오 조각광장은 국내 조각공원 중 단위면적당 작품 수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 작품가 총액으로 따져도 국내 톱이다. 작품 하나에 수십억 원이 넘는 진품 작품들이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버스터미널 옆 길거리에 놓여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현재 ㈜아라리오에선 조각광장이 있는 천안을 비롯해 서울과 상하이 등 총 3곳에서 아라리오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엔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를 종전보다 3배나 넓은 규모로 확장 이전했다. 한때 중국 시장에 무더기로 진출했던 국내 갤러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최근 잇달아 사업을 철수하는 것과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국내외로 존재감을 확대해가고 있는 아라리오갤러리에 대해 DBR이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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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전시회 잇단 개최로 ‘아라리오’ 브랜드 각인

㈜아라리오가 갤러리를 운영하기 시작한 건 1989년부터다. 천안역 앞 버스터미널 사업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은 1980년 ‘아라리오 스몰시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버스터미널 위치를 천안역 앞에서 현재의 신부동으로 옮기며 백화점, 영화관, 식당, 갤러리 등 다양한 소비문화 시설까지 함께 갖춘 복합 단지 구축을 목표로 삼았다. 김창일 회장은 “당시 돈으로 250억 원을 투자해 2만 평이 넘는 공간에 터미널을 세우겠다고 하니 다들 미쳤다며 뜯어말렸다”고 회상했다.

1989년 터미널 이전과 함께 개관한 아라리오화랑(현 아라리오갤러리)은 아라리오 스몰시티의 일환으로 터미널 옆에 함께 건축한 야우리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충청점) 내 작은 공간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2002년 독립적인 전시 공간을 마련하며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백화점 옆에 신축한 5층짜리 단독 건물 중 2개 층(약 350평)을 전부 전시 공간으로 확보한 것. 미술관이 아닌 갤러리로는 전시 공간 측면에선 국내 최대 규모라는 게 아라리오갤러리의 설명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최상의 전시 인프라만 구축해 놓는다고 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통 어지간한 갤러리들은 서울, 그것도 종로구 인사동 등 일부 지역에 밀집해 있다. 반면 아라리오갤러리는 수도권도 아닌 지방 중소도시가 근거지였다. 지역적으로 상당한 ‘핸디캡’이었다. 국내외 화랑계에 아라리오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해선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아라리오갤러리는 2002년 개관 후 초기 2∼3년 동안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데만 집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주로 한국 작가들 위주로 전시회를 기획했던 아라리오화랑 시절의 전략과는 정반대 접근을 취한 것. 그 첫 번째로 독일의 스타 작가인 안젤름 키퍼와 키스 해링 작품전을 개관전(2002년 12월∼2003년 2월)으로 기획했다. 특히 그래피티(graffiti) 아티스트로 유명한 해링은 뉴욕의 거리 문화에 영향을 받은 미국의 미술가이자 사회운동가로 일반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작품 세계를 지향한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사람, 강아지, 피라미드 등 다양한 이미지를 만화적 캐릭터로 표현한 초기 작품부터 정치사회적 이슈를 포함한 후기 작품에 이르기까지 해링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전시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영국 현대미술(British Contemporary)’ 전시회(2003년 10월∼2004년 4월)를 개최했다. ‘현대 미술계의 악동’ ‘악마의 아들’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물론 그와 함께 YBA(Young British Artists)1 의 또 다른 대표 주자인 마크 퀸 등 내로라하는 영국 작가 12명의 작품을 전시했다. 이 중에는 자신의 얼굴을 직접 석고로 떠서 두상을 만든 뒤 그 속에 4리터나 되는 자신의 피를 넣어 만든 마크 퀸의 엽기적인 조각 ‘자화상(Self)’ 등 충격적인 작품도 포함돼 있었다. 세기말적 고뇌와 사회 비판적 시각,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작품들로 국내 미술계에 큰 자극이 됐다. 이어 2004년엔 떠오르는 독일 작가인 지그마 폴케의 개인전, 2005년엔 독일 신표현주의의 대표 화가인 요르그 임멘도르프 개인전 등을 연이어 개최했다.

한국이라는 미술계의 변방국, 그것도 수도 서울도 아닌 중소도시 천안에 있는 아라리오갤러리가 이처럼 엄청난 전시회를 기획하고 고품격 조각공원까지 운영할 수 있었던 데에는 김창일 회장의 개인적 역량이 주효했다. ‘씨 킴(Ci Kim)’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이기도 한 김창일 회장은 세계적 권위를 가진 미술 매체인 아트넷(Artnet)이 선정한 세계 100대 컬렉터에 들어가는 미술계의 ‘큰손’이다. 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케링(Kering)그룹의 프랑수아 피노 명예 회장, 러시아 석유 재벌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할리우드 배우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이 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세계 미술계에서 김창일 회장이 갖는 영향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현재 김창일 회장이 소장한 현대미술 작품 수는 3700여 점에 달한다. 아라리오 조각광장에 상설 전시돼 있는 작품들 역시 김창일 회장의 컬렉션이다. 주연화 아라리오갤러리 총괄 디렉터는 “컬렉션의 양과 질이 워낙 훌륭한데다 해외 미술시장에서 ‘씨 킴’이라는 이름의 브랜드 파워가 있기 때문에 아라리오갤러리 개관 초기 굵직굵직한 해외 전시회를 기획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아라리오갤러리는 전시회를 개최할 때마다 최고급 탈부착식 조명을 써가며 최적의 관람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주연화 디렉터는 “같은 작품이라도 어떤 조명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며 “완성 작품의 최종 상품 가치를 결정하는 게 조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큰 작품의 경우 작품 한 개당 15개 이상의 조명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며 “어떤 전시회는 조명 값으로만 수억 원이 들어갈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품격 있는 전시회를 한 번도 아니고 해마다 계속해서 개최하자 아라리오갤러리는 단기간에 국내외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갤러리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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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작가제 도입으로 유망 작가 발굴 및 양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세계적인 전시회를 잇달아 개최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아라리오갤러리는 2005년에 또 한 번 일을 냈다. 국제 무대에서도 통용되는 스타 작가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그해 2월 권오상, 이동욱 등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작가 8명과 1인당 연간 수천만 원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전속계약을 맺은 것. ‘아라리오갤러리의 사전 허락 없이는 아라리오 외 다른 곳에서 전시를 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지만 아티스트들이 생계 걱정 없이 오직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소속 작가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전시를 앞두고 수천만 원의 제작비를 작가에게 지급하고 생활비 명목으로도 매달 수백만 원씩 지원해 줌으로써 작가가 작품 판매나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파격적인 계약 조건에 국내 화랑 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물론 아라리오갤러리가 작가에게 지원하는 돈이 아무 대가 없는 돈은 아니다. 일종의 선지급금으로, 작가가 작품을 완성해 판매되면 갤러리에서 그동안 작가에게 지원해 준 금액만큼을 먼저 회수하고 나머지 수익을 작가와 나누는 식이었다. 만약 작품이 끝까지 판매되지 않으면 작품 소유권을 갤러리에 이전하는 방식으로 투자금을 회수한다. 하지만 수천만 원이나 되는 거액을 작가에게 미리 투자해 본 적이 거의 없던 국내 화랑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같은 선진 시장에선 갤러리와 작가 간 독점 계약을 맺고 특정 갤리리가 특정 작가의 작품을 일괄 관리하는 경우가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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