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경영자라 일컬어지는 어느 회장님은 그 기업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용어와 그것의 의미 해석만 들어봐도 그 기업이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현재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한 기업 내에서 용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전 직원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 때 의사소통이 그만큼 빨라지고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된다고 믿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조직에서의 리더십은 용어의 통일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존경받는 기업이나 장수기업들은 자기 나름의 경영철학을 녹여낸 용어에 그들만의 독특한 해석을 입힌다. 전 직원들은 이 용어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공유한다.
존경받는 기업들은 일단 기업에 대한 정의부터 새로 내린다. 이들에게 기업은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다. 기업은 사회에 공헌하고 인간성을 향상시키는 집단이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자기 책임하에 서로 도우면서 비전을 추구하는 장이다.
따라서 기업의 성장이라는 것은 결국 사회공헌도를 높이는 것이다. 즉 사회에 보다 큰 가치와 감동을 제공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인 존재가치가 높아지게 된다고 믿는다. 단순히 규모의 확대나 매출의 증가 또는 직원 수가 늘어나는 것이 성장이 아니다. 기업 성장은 사회에 가치와 감동을 제공하고 고객과 직원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매출은 단순히 기업의 성과가 아니다. 사회공헌도가 수치화된 결과다. 그렇기 때문이 매출 향상이 어떻게 이뤄지게 됐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직원에 대한 강제적 기준이나 영업외수익 등으로 매출이 늘어났다면 그 기업의 사회적 존재가치가 높아졌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사회에 가치와 감동을 제공하지 않고 매출만 늘어난 게 문제가 될 수 있다.
서비스 현장에서도 용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놀라운 결과로 이어진다. 어떠한 서비스 현장이든 VOC(Voice of Customer, 고객의 소리)는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기업들은 이 고객의 소리를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존경받는 장수 기업은 고객의 목소리가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기업이 이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령 아무리 괴로운 VOC라 하더라도 기업이 어떤 자세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국 그러한 VOC를 남긴 고객이 다시 충성고객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그런데 VOC 자체를 없애버리면 그럴 기회가 사라져 버린다.
보통 영업현장에서 업셀링(Up-selling, 구매 유도)을 더 비싼 상품을 구매하게 유도하는 판매방식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업셀링의 진짜 정의는 오늘 온 고객을 내일 또 오게 하는 것이다. 설령 고객이 영업직원의 얼굴을 봐서 오늘 하나를 사줬다 하더라도 이것은 업셀링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강매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돼 고객은 발걸음을 끊을지도 모른다. 오늘 온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어떤 형태로든 ‘제대로 대접받고 본전 뽑았다’는 생각을 들게 해서 고객이 내일 또 오게 해야 한다.
용어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공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에 대해 절실했을 것이고 그 누구보다도 깊이 고민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존경받는 기업이나 장수기업들은 대부분 그 특정 용어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정의를 갖고 있다. 그리고 전 조직원이 그 용어의 의미를 공유한다. 격(格)은 분수(제자리, Knows his Place)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용어는 그 기업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훌륭한 척도다.
김진영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 [email protected]필자는 1989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삼성중공업 기획실, 삼성 회장비서실 인력개발원, 삼성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 삼성전자, 호텔신라 등에서 인사교육, 전략수립과 현장 적용을 총괄한 HR 전문가다. 호텔신라 서비스 드림팀을 창단해 호텔 품격 서비스의 원형을 보여줬고 차병원그룹 차움의 최고운영총괄을 맡아 의료서비스 분야에도 품격 서비스를 도입했다. 현재는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려대를 졸업했고, 연세대에서 경영학 석사, 경희대에서 국제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