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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트렌드

리스크 줄이고 성공 가능성 높이는 대기업-컴퍼니빌더 협업이 뜬다

이기대 | 244호 (2018년 3월 Issue 1호)
Article at a Glance
페이스북, 구글 등 스타트업 출신 기업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국내 대기업들의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려는 움직임도 많아졌다. 신사업 아이디어와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일부 대기업은 자신의 사업 방향과 맞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육성 및 성장에도 직접 참여하는 컴퍼니빌더(company builder)와 협업해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은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스타트업은 안정적인 투자와 자문으로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컴퍼니빌더도 양질의 스타트업을 발굴해 낼 수 있다. 그야말로 1석3조의 효과다. 이는 실리콘밸리에 비해 투자 규모가 작고, 중국에 비해 시장이 작은 국내 상황에서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스타트업 성장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스타트업의 전성시대다.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스타트업 출신 기업들이 2017년 미국 주식시장 시가총액 상위 5위를 모두 차지했다. 스타트업의 영향력이 거대해지자 스타트업이 추구하는 혁신을 배우겠다고 조바심을 내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대기업들도 여럿이다. 이들은 앞 다퉈 오픈이노베이션 담당 부서를 만들고, 스타트업을 물색하는 등 열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만을 생각하고 함부로 덤볐다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감한 투자로 덩치를 키우는 실리콘밸리 모델은 중국 정도의 거대한 내수시장이 받쳐주지 않는 한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촘촘한 규제 그물이 버티고 있어 새로운 사업을 자유롭게 시도하기도 힘들다. 실리콘밸리에서 보는 대박의 꿈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국내 대기업은 어떻게 혁신할 수 있으며, 스타트업들은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잘 알고 성장시킬 수 있는 전문기관과 협업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바로 ‘컴퍼니빌더’나 ‘액셀러레이터’다. 컴퍼니빌더란 아이디어 개발, 창업자 팀 구성, 사업모델의 구체화 및 초기 운영 자금 투입까지 주도하는 회사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면 분사시킨 뒤 지주회사로 남는다. 컴퍼니빌더와 유사한 듯 다른 역할을 하는 액셀러레이터도 있다. 액셀러레이터는 이미 설립된 스타트업들을 기수(batch)별로 모집해 몇천만 원에서 몇억 원 정도의 적은 금액을 투자한다. 몇 개월 동안 이 기업들을 집중 훈련한 후 데모데이(Demo Day)를 통해 벤처캐피털(VC) 투자를 유치한다. 일종의 스타트업 훈련소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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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대기업들이 외부 액셀러레이터와 협업하는 것이 이미 활성화돼 있다. 실리콘밸리의 대표 액셀러레이터인 ‘플러그앤플레이’는 450여 개의 스타트업을 입주시켜 멘토링 프로그램, 투자 유치 기회 등을 제공한다. 130개가 넘는 대기업과 파트너를 맺고 연결해주고 있다. 디즈니, 바클레이스, 마이크로소프트 등 50여 개 대기업은 기술 스타트업을 전문으로 육성하는 미국의 ‘테크스타’라는 글로벌 액셀러레이터와 제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액셀러레이터와의 협업이 많은 미국과 달리 한국은 컴퍼니빌더와 대기업이 협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애초에 대기업들이 원하는 기능이나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기획하고, 이 기준에 적합한 인재들을 육성해 스타트업으로 키우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2016년 기준 매출 순위로 글로벌 화장품 업계 7위를 기록한 아모레퍼시픽이 대표적인 예다. 사실 아모레퍼시픽에 스타트업은 낯선 존재가 아니다. 이미 2011년에 CVC(corporate venture capital)를 설립해서 스타트업 투자에 뛰어들었고, 2016년에는 직원 대상의 사내벤처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다. 아예 초기부터 자사의 목적에 부합하는 스타트업을 육성해 전략적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모레퍼시픽은 국내에서 컴퍼니빌더 겸 액셀러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퓨처플레이를 찾았다.

퓨처플레이는 류중희 대표가 이끄는 대표 테크 전문 컴퍼니빌더다. 퓨처플레이에서 일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이미 창업을 시도하고 졸업을 경험한 이들이다. 카이스트 공학박사 출신인 류 대표도 이미지 인식 기술을 가진 올라웍스를 창업한 뒤 2012년 약 350억 원을 받고 인텔에 매각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17년 2월 퓨처플레이와 협력 모델 ‘테크업플러스’ 1기를 출범시켰다. 뷰티와 헬스케어라는 제한된 영역이었지만 1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지원했고 5개 회사가 선발됐다. 퓨처플레이는 이들에게 5000만 원의 초기 투자금을 내줬다. 24주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 끝나자 아모레퍼시픽이 1억 원씩을 추가 투자해줬다. 액셀러레이팅의 중심은 창업 전문가인 퓨처플레이가 잡고 가지만 아모레퍼시픽은 경험에 기초한 자문을 해주고 프로그램 운영 비용을 부담했다.

앞서 소개한 테크업플러스에 선발된 스타트업은 1억5000만 원의 종잣돈과 함께 국내 최고의 팀으로부터 회사 운영과 서비스 개발 조언을 받았다. 2017년에 진행했던 1기 팀들은 정부로부터 5억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팁스(TIPS, 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도 선정됐다. 이런 조건에서 출발한다면 스타트업이 망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 망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것이 스타트업 업계의 불문율이다. 테크업플러스 시즌2는 1월 말 선발을 마쳤고 곧 운영을 시작한다.

이 프로그램은 각 참여자에게 어떤 기대효과를 제공할 수 있을까? 아모레퍼시픽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신사업 아이디어와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초기부터 자사에 특화된 스타트업을 육성해 전략적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미보유 기술에 대한 테스트베드 역할도 기대하며 1차 팀들을 선발했다. 몇 년 지나면 이들 가운데 아모레퍼시픽이 인수할 수 있는 기업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만약 이 스타트업들이 너무 빨리 성장해서 인수 기회를 못 잡는다면, 대신 초기 투자자로서 IPO(주식상장)를 통한 상당한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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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맡은 퓨처플레이에게는 어떤 이익이 돌아올까. 가장 큰 혜택은 좋은 스타트업의 발굴, 즉 이 동네 용어로 ‘딜소싱’ 기회다. 2017년, 12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2조3000억 원의 투자를 받았지만 이는 벤처투자금으로 조성된 4조4000억 원의 53%에 지나지 않았다. 2015년의 79%, 2016년의 62%에 비해 현저히 낮아진 추세다. 펀드를 만들어도 투자할 만한 스타트업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 탓이다.

또한 스타트업 투자란 성공 확률은 낮지만 보상률이 높은 사업이다. 액셀러레이터는 지분을 4∼8% 취하고, 컴퍼니빌더들은 그의 수배에 달하는 지분을 갖는다. 좋은 스타트업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누구나 눈독을 들이는 우수한 스타트업은 투자금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컴퍼니빌더의 경우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우수한 스타트업을 유인할 수 있다. 대기업의 전략적 투자가 포함된 액셀러레이팅 카드는 에이스 스타트업들에도 솔깃할 것이다. 전략투자자는 스타트업 서비스의 고객이 돼줄 수 있고, M&A를 해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업 초기에 대기업을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면 스타트업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전략투자자가 M&A를 해준다면 창업자와 초기 투자자들, 초기 직원들이 주식을 팔아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솔깃할 수밖에 없다.

일부 대기업들은 외부 액셀러레이터와 함께 공동으로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소프트뱅크미디어에서 전략기획을 담당하고 십수 년간 국내 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사 대상으로 자문을 해온 김진영 대표가 이끄는 ‘로아인벤션랩’이 대표적이다. 로아인벤션랩은 지난 몇 년 동안 소규모로 액셀러레이팅을 해왔다. 로아인벤션랩은 스타트업 전문 액셀러레이터로 초기 단계 스타트업만 선발해 12개월 기수로 육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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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내에서 액셀러레이팅 자체만으로는 스타트업을 성공시키기 어려운 구조였다. 김진영 대표는 새로운 방법을 기획했다. 스타트업 수요가 높은 대기업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새로운 상품을 설계한 것이다. 김 대표는 자신이 기획한 스타트업 육성 계획이 담긴 시안을 들고 대기업을 직접 찾아갔다. 대기업의 목소리를 처음부터 반영한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 첫 모델이 바로 KB국민카드와 협업한 프로그램 ‘퓨처나인’이다.

퓨처나인은 총 5개월 프로그램으로, 그중 3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개념 검증 단계가 핵심이다. 이때 사업 모델과 수행 역량 확인을 위해 로아인벤션랩과 KB국민카드 현업 부서와의 토론이 집중된다. 나머지 2개월은 투자 유치를 위한 피칭 준비와 외부 협력사들과의 연계 작업을 진행한다. 스타트업들은 KB국민카드로부터 3000만 원의 기본 투자를 받았고, 1기의 경우 두 개 회사가 추가 투자를 받았다.

로아인벤션랩은 프로그램 주관사로 참여했으나 지원금은 실비 보전 수준이었다. 대신 KB국민카드가 투자할 때 동일 조건으로 투자하는 매칭 권리를 얻었고 실제로 행사하기도 했다. 퓨처나인의 성공에 힘입어 로아인벤션랩은 최근 현대모비스와 M.Start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다른 몇 곳의 대기업과도 준비 중이다.

같은 컴퍼니빌더 영역이라지만 앞에 설명했던 퓨처플레이에 비해 로아인벤션랩은 투자 액수가 적다. 창업자 출신인 퓨처플레이의 류중희 대표가 “첫 스타트업이 자신감을 잃기 때문에 절대 망하면 안 된다”고 믿는다면, 로아인벤션의 김진영 대표는 여러 주체가 협업하는 컴퍼니 빌딩의 속성상 특정 주체가 “과도한 부담을 지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기업의 오픈이노베이션 방법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롯데와 한화는 액셀러레이터 계열사를 만들었고, GS홈쇼핑은 380여 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직접 나서는 경우도 많아졌다. 앞서 소개한 것과 같이 컴퍼니빌더와 협업하는 아모레퍼시픽이나 현대모비스 같은 기업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컴퍼니빌딩은 참여 주체의 리스크는 줄이고 성공률은 높이는 일종의 ‘절충적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편집자주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가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6회에 거쳐 DBR에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주목할 만한 흐름과 변화, 그리고 그 주역들을 소개합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 [email protected]

이기대 이사는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버팔로 캠퍼스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피치트리컨설팅, 드림서치 대표를 역임했고, IGAWorks에서 COO와 HR담당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네이버 등 인터넷 선도기업들이 함께 만든 민관협력네트워크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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