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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떠오른 블록체인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개방과 소통을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거래내역을 무조건 감추고 숨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개방해 오히려 해킹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원리다. 일찍이 장자는 “천하는 천하에 간직한다”는 뜻의 ‘장천하어천하((藏天下於天下)’를 통해 오늘날 최첨단 기술의 핵심을 관통하는 원리를 간파한 바 있다. 활짝 열고 모든 것을 공개하며 다 함께 공유할 수밖에 없는 시대,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 이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빅데이터(Big Data),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 지금까지 4차 산업혁명 흐름을 주도해 왔던 기술들을 제치고 선두로 나서는 모양새다. 발 빠른 일부 기업에서는 기존의 비즈니스에 블록체인 기술을 직접 접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블록체인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등장한 배경에는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있다. 비트코인 때문에 블록체인의 기술적 의미와 미래 산업에 미칠 파괴력이 널리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트코인은 싸이월드나 네이버, 카카오톡 등에서 거래되고 있는 가상화폐와는 플랫폼이 다르다. 이들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다. 비트코인은 네트워크에 암호 형태로 흐르고 있는 신규 거래내역을 가장 먼저 낚아채는(해독하는) 사람에게 화폐를 생성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이 사람을 채굴자(miner)라 부르며 채굴자가 푼 문제가 정답이라고 과반수의 참여자가 동의하면 신규 거래내역은 타임스탬프 방식으로 승인되고, 기존의 블록에 연결(체인)된다. 그래서 이름이 블록체인이다. 비트코인 플랫폼이 설계되고 작동되는 기술적 기반이 블록체인이므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비트코인의 개발자 나카모토 사토시의 정체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미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일각에서는 나카모토 사토시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유무형의 조직이며 개발자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일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심지어는 특정 국가의 정부나 기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이름을 뜯어보면 이런 주장에 공감이 간다. 나카모토 사토시를 한자로 쓰면 중본철사(中本哲史)가 된다. 중국의 중(中)자와 일본의 본(本), 철학의 철(哲)자와 역사의 사(史)를 합성한 형태다. 자연인이 이런 이름을 쓰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실제로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언론의 추적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 없는 인물로 밝혀졌다. 중본철사(中本哲史)에 담긴 문자적 의미에 주목하면 개발자그룹이 자신들의 명분을 드러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런 이름을 취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양문화권의 인문학적 가치에 비트코인의 개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 의도를 톺아보자.
대표적인 동양고전의 하나인 『장자』 ‘대종사’ 편에는 ‘장천하어천하(藏天下於天下)’라는 구절이 나온다. “천하는 천하에 간직한다”는 뜻이다. 장자는 우화를 통해 그 속뜻을 깨우쳐준다. 어느 마을에 억만금을 가진 부자가 있었다. 이 사람은 자나 깨나 도둑 걱정이었다. 도둑이 들어서 자신의 재산을 훔쳐갈까 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생각다 못해 예리한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튼튼한 궤짝 하나를 구입해서 현금과 보석 등 전 재산을 거기에 숨겨뒀다. 그것으로도 안심이 되지 않아 궤짝을 밧줄로 꽁꽁 묶어 두었다. 그런데 다음날 난리가 났다. 간밤에 도둑이 들어와서 궤짝을 통째로 메고 달아나버린 것이다.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산골짜기에 배를 숨겨두고, 연못 속에 산을 숨겨두고 단단히 숨겨뒀다고 말한다. 그러나 밤중에 힘이 센 자가 그것을 등에 지고 도망치면 잠자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사물은 크고 작건 간에 각기 숨겨둘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래서 도둑이 그것을 훔쳐서 도주할 곳이 있다. 하지만 천하를 천하에 숨겨두면 훔쳐서 도주할 곳이 없게 된다.” 그리고 『장자』 ‘경상초’ 편에는 ‘이천하위지롱 작무소도(以天下爲之籠 雀無所逃)’라는 구절이 나온다. “천하를 새장으로 삼으면 참새가 도망칠 곳이 없어진다”는 뜻인데 ‘장천하어천하’와 같은 맥락이다.
1차 인터넷 혁명의 대표적인 미완성 과제 중 하나가 바로 보안 문제다.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라는 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현재의 사회 시스템은 아무리 보안을 강화해도 뚫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보안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에 비례해서 해킹 기술도 발전하기 때문에 해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선보였다.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개방과 소통이다. 숨기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공개한다. 거래원장(Ledger)을 특정한 금고나 파일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블록의 연결(체인)로 이뤄진 네트워크(World Wide Ledger)에 보관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보관이 아니라 전시다.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와서 보라는 것이다. 전시된 물건을 훔쳐가는 것은 자유다. 그렇지만 훔친 물건을 들키지 않고 완벽하게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의 눈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열 사람이 도둑 하나 지키지 못한다는 속담도 있지만 지켜보는 사람의 수가 열 명이 아니라 1만 명, 10만 명, 100만 명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는 도둑이라 해도 그들 모두의 눈을 피해서 훔친 물건을 숨길 수는 없다. 게다가 암호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거래내역을 승인받기 위해서는 참여자들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알고리즘 때문에 해킹으로부터 매우 안전하다. 거래내역을 기록한 블록의 수가 천하를 덮을 정도로 많아지면 해킹 가능성은 이론적으로 제로에 접근한다. 일본을 비롯한 각처에서 발생한 해킹 사건은 보석함에 담긴 보석이 아니라 보석함이 뚫린 경우다. 블록체인 기술의 허점이 아니라 거래소라는 울타리가 허술했다는 의미다.
박영규 인문학자 [email protected]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교수, 중부대 초빙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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